‘2019 MLB 올스타전’ 내셔널리그 올스타 선발투수로 나선 류현진. 사진=이영미 기자
[일요신문] 7월 10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2019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성대하게 펼쳐졌다. 9일 미디어 데이, 홈런 더비를 시작으로 10일 레드 카펫 쇼와 내셔널리그 팀과 아메리칸리그 팀의 올스타 경기 등이 이어지면서 화려했던 ‘빅 이벤트’가 막을 내렸다.
이번 올스타전은 ‘몬스터’ 류현진(32·LA 다저스)의 생애 첫 올스타 선발 등판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류현진 또한 메이저리그 데뷔 7시즌 만에 처음 경험하는 올스타전이 특별했고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클리블랜드에서 보낸 류현진의 ‘화려한 외출’을 밀착 취재했다.
다저스 선수들이 건넨 조언
올스타전 현장에서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는 류현진. 사진=이영미 기자
“아마 클럽하우스에 도착하면 너를 기다리는 수많은 야구공과 유니폼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들에 사인해야 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 빨리 끝내고 즐기길 바란다.”-코디 벨린저(외야수)
“그냥 즐기면 된다. 물론 류현진이 선발 투수라 어떨지 모르겠지만 즐기고 받아들이면 된다. 한 가지 힘든 점이 있다는 걸 기억해라. (올스타에 뽑힌 선수들은) 테이블 위에 있는 모든 물품에 사인을 해야 한다.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는 게 좋다. 왜냐하면 그게 가장 힘든 시간이기 때문이다.”-켄리 잰슨(마무리 투수)
클리블랜드로 떠나기 전 다저스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다저스 선수들 중 이미 올스타 경험이 있는 선수들에게 류현진에게 전할 조언을 부탁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사인’ 이야기를 꺼냈다. 올스타전을 치르는 선수들은 클럽하우스에 쌓여 있는 유니폼과 야구공에 사인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양이 엄청나다. 올스타 경험자들은 류현진이 곧 접하게 될 상황에 대해 언급하며 빨리 ‘해치우고’ 즐기라고 귀띔했다.
실제 류현진은 다저스 선수들의 예상대로 손이 아플 정도로 사인을 반복했다는 후문이다.
MLB 올스타전, 류현진 VS 저스틴 벌렌더
‘2019 MLB 올스타전’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데이브 로버츠 감독과 류현진. 오른쪽은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 선발투수 저스틴 벌렌더와 알렉스 코라 감독. 사진=이영미 기자
올스타전이 열리기 전 MLB 사무국은 클리블랜드 홈구장인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헌팅턴 컨벤션센터에서 미디어데이를 진행했다. 그 자리에는 올스타전에 선발 등판할 양 팀 투수와 감독이 참석한다. 내셔널리그 올스타팀에서는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과 류현진이,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은 보스턴 레드삭스 알렉스 코라 감독과 저스틴 벌렌더(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올스타 감독은 전년도 월드시리즈에서 맞붙었던 두 팀의 감독이 맡는다).
올스타전 미디어데이에 내셔널리그 올스타팀을 대표해 한국의 류현진이 등장한 장면은 한국 취재진한테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오랫동안 메이저리그를 취재한 모 기자도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흐뭇한 표정으로 류현진을 지켜봤다.
류현진은 올스타전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것과 관련해서 “굉장한 영광이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 그리고 한국에 있는 팬들한테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다저스와 계약했을 때만 해도 세계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과 경쟁하는데 우선순위를 뒀다. 올스타를 목표로 둔 적이 없었는데 지금 이렇게 꿈같은 상황에 와 있다.”
한 기자는 로버츠 감독에게 류현진을 선발 투수로 내세운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로버츠 감독은 “꾸준함”을 꼽았다.
“류현진은 퍼포먼스가 훌륭하다. 그 퍼포먼스를 창출해내기 위해 헌신적이고 성실했으며 꾸준함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뛰어난 퍼포먼스가 나왔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류현진을 자신 있게 (선발 투수로)선택했다.”
류현진과 아레나도, 그리고 트라웃
류현진과 그의 아내 배지현 씨. 사진=이영미 기자
내셔널리그 올스타팀에 합류한 선수들 중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류현진의 천적으로 꼽히는 놀란 아레나도(콜로라도 로키스)였다. 아레나도는 류현진을 상대로 통산 23타수 14안타 4홈런 0.609의 타율을 기록 중이다.
놀란 아레나도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왜 류현진에게 강한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투수 류현진의 진가를 높이 평가했다.
“올 시즌 류현진은 환상적인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 사이영상을 받을 수도 있는 그와 경쟁하는 건 마치 전투에 임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나도 류현진을 상대로 왜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류현진이 경기에 임할 때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걸 쏟아 붓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나 또한 비슷한 마음으로 류현진을 상대한다. 그러나 류현진을 투수로 상대하는 게 마냥 기쁜 일만은 아니다.”
반면에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에 속한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은 류현진에게 통산 10타수 무안타를 기록 중이다. 트라웃은 전반기 87경기에서 타율 0.301 28홈런 67타점 등을 기록하며 MVP 후보 0순위에 꼽힐 정도의 최고 실력을 자랑한다. 그런 그가 유독 류현진 앞에서 힘을 못 쓰고 있는 것.
자신도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지 미디어데이 중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내일(올스타전) 류현진 상태로 안타 1개만 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러나 트라웃은 올스타 무대에서 만난 류현진을 상태로 내야 땅볼 아웃을 기록하고 말았다.
레드카펫 쇼, 류현진도, 가족들도 가슴 뭉클
MLB 올스타전 레드카펫 쇼에 참석한 류현진과 그의 가족들. 사진=이영미 기자
올스타전이 열리는 날인 8일 오후 1시경, 클리블랜드 홈구장인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는 올스타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레드 카펫 쇼가 펼쳐졌다. 선수단 숙소에서 올스타 선수들과 가족들을 태운 트럭이 경기장까지 향하는 동안 카퍼레이드를 펼치고, 경기장 앞에 도착해서는 말 그대로 레드 카펫을 밟으며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류현진도 아내 배지현 씨, 부모님, 형과 함께 흰색 트럭을 타고 경기장에 도착해서는 레드카펫을 밟았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레드카펫 무대에 들어선 류현진의 표정은 한층 밝았다. 자신의 인생 중 카퍼레이드를 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며 생전 처음으로 트럭을 타고 퍼레이드에 참가한 부분이 그의 기분을 한껏 고조시킨 듯했다.
류현진은 레드카펫에 서기 위해 LA에서 급히 양복 정장을 구입했다. 양복과 관련된 질문을 건네자 “레드 카펫에 서려면 이 정도의 준비는 해야 하지 않느냐”며 익살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다.
아내 배지현 씨도 남편과 함께 레드카펫에 선 상황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동안 팬들의 환호를 받았는데 이런 팬들이 있기에 선수가 존재한다는 걸 실감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의미가 큰 자리에 나도 함께하게 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류현진의 부모님도 아들의 올스타전 참가를 감격스러워 했다. 아버지 류재천 씨는 “현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덕분에 이런 영광을 누리는 것 같다”면서 “그동안 힘든 재활 과정을 모두 이겨내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많은 사람이 현진이에게 응원과 성원을 보내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머니 박승순 씨는 아들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다. “현진이가 수술 후 2, 3년 동안 정말 고생 많이 했다. 그 어려운 과정들을 잘 극복해낸 덕분에 당당히 이 자리에 서게 됐다. 아들 잘 둔 덕분에 나도 이런 자리에도 서 보는 것 같다.”
첫 선발 등판, 1이닝 무실점 깔끔하게 마무리
올스타전 선발투수로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류현진. 사진=연합뉴스
류현진은 데뷔 7년 만의 첫 올스타전 선발 등판에서 1이닝 무실점 역투로 새 이정표를 세웠다.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한국인 투수들의 올스타 성적 중 가장 빼어난 성적이었다. 2001년 올스타에 선발된 박찬호는 1이닝 동안 피홈런으로 1실점을, 2002년 올스타에 뽑힌 김병현은 ⅓이닝 동안 안타 3개를 헌납한 뒤 2실점으로 블론세이브를 남긴 바 있다.
류현진은 상대팀 선발 투수인 저스틴 벌렌더가 강속구로 타자들을 윽박지르는 모습을 지켜봤지만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정교한 제구와 위기관리 능력으로 타자들을 요리했다. 올스타전에서도 자신만의 투구법으로 ‘별’들을 상대한 것이다.
류현진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올스타전을) 처음 해봤는데, 자주 해봤으면 좋겠다”면서 “벌렌더와는 반대의 투수라 (상대 투수의) 구속에 신경 쓰지 않았고, 내가 할 것만 하자고 생각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올스타전에서의 1이닝을 끝으로 2019시즌 류현진의 올스타도 마무리됐다. 경기 후 류현진은 다저스에서 마련한 전세기를 타고 보스턴으로 향했다. 그 전세기에는 올스타에 뽑힌 다저스 선수들과 가족들 외에 아내 배지현 씨도 동승했다. 결혼 후 모든 면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몬스터’ 류현진이 아닐 수 없다.
미국 클리블랜드=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