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유네스코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7개 산중 사찰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했다. 사진은 마곡사 극락교로 자연친화적인 산사의 공간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연합뉴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산사’는 통도사(경남 양산), 부석사(경북 영주), 봉정사(경북 안동), 법주사(충북 보은), 마곡사(충남 공주), 선암사(전남 순천), 대흥사(전남 해남) 등 7개 사찰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모두가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로 대한민국 전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특히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어 ‘불보사찰’로 불리며, 부석사는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선암사는 태고종의 총본산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옛 이름이 ‘대둔사’인 대흥사의 경우엔 조선시대에 승장으로 활약한 서산대사가 자신의 의발을 전한 승원이기도 하다. 또한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국보 제15호)을, 법주사는 국내 최고의 오층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마곡사는 대대로 수많은 화승(畵僧)을 배출한 사찰로 유명하다.
산사는 승가공동체의 신앙·수행·일상생활의 중심지이자 승원으로서 기능을 오랜 기간 유지해오며 한국 불교의 개방성을 대표하고 있다. 사실, 산사가 천혜의 자연 속에서 출가자와 신도의 신앙공동체로서 기능과 영역을 확장하게 된 데엔 시대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우리나라에는 7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중국으로부터 대승불교의 다양한 종파를 수용하면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찰이 창건됐다. 하지만 14세기 이후인 조선왕조(1392~1910) 기간 동안에는 불교에 대한 억압 정책으로 인해 도시 사찰의 대부분이 강제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7개 사찰을 포함한 일부 산사 등은 폐사되지 않고 살아남아 일반 신자들을 위한 신앙처로서의 기능이 확대되었으며, 수행을 위한 시설과 공간을 갖추기 시작했다.
통도사 금강계단. 연합뉴스
산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무형의 문화적 전통을 이어온 살아있는 불교 유산이다. 산사는 불교 신앙을 바탕으로 종교 활동, 의례, 강학, 수행을 지속적으로 이어왔으며, 다양한 토착 신앙을 포용하고 있다. 산사의 승가공동체는 선수행의 전통을 신앙적으로 계승해 동안거와 하안거를 수행하고, 승가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한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일함)을 수행의 한 부분으로 여겨 오늘날까지도 차밭과 채소밭을 경영하고 있다.
또한 산사는 산기슭에 계류를 끼고 입지하여 주변 자연을 경계로 삼는 개방형 구조를 나타낸다. 가장 큰 공간적 특징은 자연친화적이라는 점이다. 사찰의 건물들은 대체로 비대칭적으로 배치되고, 비정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는 최소 규모로 축대를 쌓는 등 자연 지세에 순응하고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연과 인간의 지혜로운 공존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산사다.
산사는 한국 불교역사의 전 과정을 유·무형으로 담고 있는 복합적인 공간이다. 또한 창건부터 지금까지 중창과 중건을 통해 시대별 문화·사회상이 잘 반영돼 있는 살아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신라, 고려 시대에 꽃을 피웠던 불교가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다시 신앙과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낼 수 있었는지를 산사의 역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한 예로 대흥사에 건립된 표충사(서산대사의 위국충정과 은덕을 기리는 사당)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승군의 활약상과 함께 한국의 불교가 다시 조용한 중흥기를 맞게 된 배경을 읽어낼 수 있다.
산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는 2011년 처음 등재를 추진한 이래 약 8년간의 각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정작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등재 이후’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유산 보존의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자료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