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생명은 자산기준 생명보험업계 13위의 보험회사다. 2009년 말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호생명을 산은이 6500억 원에 사들여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산은은 당초 5년 내 매각을 목표로 경영정상화를 위해 1조 원 가량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2014년 두 차례, 2016년 한 차례 등 총 세 차례의 매각 작업이 모두 무산됐다.
첫 매각 실패 이후 KDB생명 실적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2014년 655억 원이던 회사 당기순이익은 2015년 273억 원으로 줄었고, 2016년과 2017년엔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자금 회수가 번번이 실패한데다 실적마저 쪼그라들자 투자자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왔다. 산은의 KDB생명 인수 당시 조성된 펀드는 매년 1년씩 연장돼 왔는데, 올해 초 투자자들 사이에선 재연장에 대한 의견이 크게 엇갈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KDB생명보험 본사 전경. 최근 산업은행이 KDB생명 매각을 본격화 하기로 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번 KDB생명 매각 작업은 이동걸 산은 회장이 올해 초부터 여러 차례 공식화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산은은 연내에, 늦어도 내년 3월까지는 매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논란이 불거졌다. 매각 속도를 높이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문제가 됐다.
산은은 지난 8일 백인균 산업은행 경영관리부문 부행장을 KDB생명 수석 부사장에 내정했다. KDB생명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백 부행장의 부사장 선임을 공식화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의 KDB생명 매각에 대한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관측되지만, 금융권 안팎에선 백 부행장의 정식 취임 전부터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KDB생명이 ‘인사’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어서다. 산은이 KDB생명을 인수한 이후 일부 산은 임원들이 회사의 사장과 부사장을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앞서의 KDB생명 실적이 곤두박질 친 시점과 맞물린다. 특히 이번처럼 산은 부행장 출신이 KDB생명 고위 임원을 맡았던 2017년엔 KDB생명의 지급여력(RBC) 비율이 108%까지 떨어졌다. 이는 금융당국의 권고치인 150%를 밑도는 수치로, RBC비율이 100% 아래면 보험금을 제대로 줄 수 없다는 뜻이다. 당시 회사의 순손실도 767억 원을 기록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10여 년 간 산은의 KDB생명에 대한 인사 실패가 결과적으로 경영실패로 이어졌는데, 매각 성공이 절실한 타이밍에 또 다시 ‘낙하산 인사’가 이뤄지는 모양새가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산은이 꺼내든 또 다른 카드가 논란을 더욱 키웠다. KDB생명은 최근 이사회에서 매각에 성공할 경우 사장에게 최대 30억 원, 수석부사장에게 최대 15억 원의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안건을 통과시켰다. KDB생명의 매각 가격에 따라 사장에게는 5억~30억 원을, 수석부사장에게는 사장의 50%(2억 5000만~15억 원)를 성과보수로 지급된다.
매각이 성공하면 이번에 선임된 백 부행장이 거액의 성과급을 가져가게 된다. 여기에 현재 KDB생명의 정재욱 사장도 산은 출신은 아니지만 이동걸 회장의 측근으로 통한다. 2018년 초 이 회장이 금융연구원 동료이던 정 사장을 직접 여러 차례 설득한 끝에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 업계에서는 인수나 매각 작업 성과에 따라 기존 경영진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산은은 물론 공공기관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에 이정도 규모의 인센티브가 걸린 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 여기에 이미 막대한 공적자금이 들어간 회사인데, 경영진에게 주는 성과급도 사실상 혈세인 만큼 이번 조치가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경영진의 일반 보수가 적은 대신 성과급을 높였고, 매각이 성공할 경우라는 조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산은의 이번 조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실제 KDB생명은 정재욱 사장이 취임한 이후 3044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216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 1728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하면서 회사 건전성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올해 3월 말 RBC비율은 212.8%로 안정적 수준을 유지했다. 지난해 흑자전환 이후 올해 상반기엔 300억 원대 순이익도 냈다. 다른 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당초 산은은 경영정상화까지 2년을 예상했지만, 이보다 빠르게 성과가 나왔다”며 “산은이 매각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인균 산은 부행장의 KDB생명 수석 부사장 인사 역시 속도가 붙은 매각 작업에 힘을 싣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백 부행장은 그동안 산업은행에서 벤처캐피탈, 인수합병, 투자금융, 사모펀드 등 여러 직무를 경험했다. KDB생명 매각 작업 과정에서 이동걸 회장의 의지를 충분히 반영할 수있고, 정재욱 사장과도 시너지가 클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매각 성공 여부 자체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KDB생명의 ‘몸값’이 문제다.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한 산은으로선 투자금과 비슷한 수준을 기대할 수밖에 없지만 시장에서 평가하는 KDB생명의 가격은 이보다 낮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KDB생명의 자본총계는 약 9000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 따라 새 주인이 추가 증자를 해야할 가능성도 높아 매각 가격은 더 낮아질 수 있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가 길어지고 있고, 평균 수명이 크게 늘면서 생명보험 사업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점도 걸림돌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