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전 DB그룹 회장이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해 피소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일요신문 DB
김준기 DB그룹(전 동부그룹) 회장이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한 혐의로 2018년 피소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사건은 2016년 김 전 회장의 남양주 별장에서 발생했다. 김 전 회장은 선친 묘소 인근에 있는 남양주 별장에서 자주 머물렀다. 가사도우미 A 씨는 이 별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 씨의 자녀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내용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일본의 음란물 비디오와 책을 구해와 이를 대놓고 시청했다. 피해여성에게 음란물 내용을 설명하며 “재미있었다. 좋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이 주로 봤던 음란물 중에는 A 씨 또래의 중년배우가 나오는 것도 있어 피해 여성의 불안감이 더욱 증폭됐다고 알려졌다. A 씨 가족 측은 수사당국이 김 전 회장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김 전 회장이 현직에 있었을 때 벌어진 사건임에도 DB그룹은 관계가 없는 일이라며 발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사도우미 A 씨는 7월 17일 ‘김현정의 뉴스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 저 회장의 육성이 담긴 녹취 파일을 폭로했다. 녹취 파일에는 김 전 회장이 A 씨에게 “나 안 늙었지”, “나이 먹었으면 부드럽게 굴 줄 알아야지” 등의 말을 한 내용이 담겼다.
DB그룹은 공식적으로 회사에 적을 두고 있지 않는 김 전 회장에 대해 회사가 입장을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DB그룹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불법체류 상태인 것은 아니고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간, 신장, 심장, 방광 등이 총체적으로 악화돼 치료를 받고 있다”며 “현재 미국 법이 허용하는 절차에 따라 체류 중이며 향후 주치의 허락이 나는 대로 조사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김 전 회장은 변호인을 통해 DB그룹에 입장을 알려왔다. 김 전 회장 측은 “성관계는 있었으나 성폭행은 사실이 아니다. 2017년 1월 A 씨가 외부에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돈을 받아갔다. 모든 사실은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의 성폭행 의혹이 특히 비난을 받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가사도우미 성폭행 혐의 피소에 앞서 김 전 회장은 비서를 성추행한 사건으로 피소된 바 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경찰수사에 불응한 채 사실상 해외 도피를 이어가고 있다.
김 전 회장 비서로 근무하던 B 씨는 2017년 김 전 회장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했다. B 씨는 김 전 회장이 자신의 신체를 만지는 영상과 녹취 등을 제출했는데 여기에는 위계를 이용해 수치심을 주는 발언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회장 측은 “만진 것은 맞지만 합의하에 이뤄졌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김 전 회장은 피소 사실이 알려지고 이틀 뒤 회장직을 내려놓고 그룹에서 물러났다. 고소에 앞서 미국으로 출국했던 김 전 회장은 그 후로 잠적했다. 경찰은 2017년 세 차례 출석요구를 했지만 김 전 회장은 이에 불응했다. 경찰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공조수사를 의뢰하고 외교부를 통해 김 전 회장 여권 무효 신청을 했다.
당시 DB그룹은 잠적한 김 전 회장을 대신해 대응했다. 여권 무효 조치에 대한 행정소송을 했으나 패했고, 언론을 통해 피해를 주장한 전 비서 B 씨가 100억 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꽃뱀 프레임을 통해 사건이 진실공방으로 흘렀지만 김 전 회장은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대신 잠적했다. 심지어 DB그룹은 “B 씨가 브로커를 통해 돈을 달라고 협박했다”며 2018년 공갈미수 혐의로 마포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경찰은 법무부를 통해 김 전 회장에 대해 미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17일 밝혔다. 김 전 회장을 국내로 송환하기 위해서는 범죄인 인도를 요청해야 한다. 그간 수사당국은 인터폴 적색수배만 의뢰해 강제구인에 어려움이 있었다.
두 건의 성범죄 혐의로 피소된 김 전 회장에 대해 여론은 싸늘하다. 건강악화로 수사를 회피하면서도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회사 및 측근들과 소통을 하는 등 전 그룹 총수로서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가정이 있는 김 전 회장이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부도덕적인 일을 저지르고도 “합의에 의해 이뤄졌다”는 해명을 반복해 비난을 받고 있다. 누리꾼들은 DB그룹 제품을 불매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