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올산업이 빗썸을 인수 중인 SG BK그룹을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보유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에서 무리하게 자본을 조달해가면서까지 SG BK그룹을 인수하려는 두올산업의 속내에 업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코스닥 상장 자동차 부품사인 두올산업은 SG BK그룹이 발행하는 신주 57.41%를 2357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지난 9일 공시했다. 신주 취득이 마무리되면 두올산업은 SG BK그룹의 최대 주주가 된다. 시장에서는 두올산업의 SG BK그룹 인수를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인수 시도로 보고 있다.
SG BK그룹은 싱가포르에 있는 회사로, 김병건 BK그룹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다. SG BK그룹은 BK SG의 최대주주인데, BK SG는 ‘빗썸(BTC코리아닷컴)의 최대주주’ BTC홀딩컴퍼니를 인수 중인 BK컨소시엄(BTHMB홀딩스) 지분을 전량 보유하고 있다. 즉 ‘SG BK그룹→BK SG→BK컨소시엄→BTC홀딩컴퍼니’로 이어지는 복잡한 지배구조의 정점에 김 회장이 서 있고, 그의 자회사 SG BK그룹을 인수하겠다고 두올산업이 뛰어든 상황이다.
문제는 두올산업의 재정상태다. SG BK그룹을 2357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했지만 두올산업의 지난 3월 말 기준 전체 자산은 691억 원에, 이 중 유동자산은 327억 원에 불과하다. 두올 측은 자산보다 7배나 큰 규모의 인수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지난 9일 공시를 통해 17일부터 9월 19일까지 발해컨소시엄, 제이디알에셋, 비지에스조합, 아이티다임, 큐빅스홀딩스, 케이클라비스신기술조합 등 투자자들로부터 제3자배정유상증자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전환사채(CB) 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각종 BW, CB에 따른 이자는 매년 72억 원가량이다. 두올산업은 유동자산뿐 아니라 순이익도 올해 1분기 600만 원에 그치는 등, 이자를 감당하기엔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
뿐만 아니라 두올산업에 자금을 조달할 공급사들도 대부분 규모가 작고 업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신생회사들로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증자가 완료되면 두올산업 최대주주로 올라설 발해컨소시엄은 두올산업의 이창현 대표이사가 대표로 있다. 또 다른 자금 공급사 제이디알에셋도 신재호 두올산업 사내이사가 대표이사로 활동 중이다. BW·CB 등의 발행기업과 대표이사가 동일한 곳을 통한 자금 조달은 자금 공정성과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다 보니 두올산업의 SG BK그룹 인수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빗썸의 지배구조가 돈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도록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점과 자동차 부품사인 두올산업이 갑자기 블록체인 사업에 뛰어들려 한다는 점, 자금조달 방안이 부실한 점 등을 두고 여러 추측과 우려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김병건 SG BK그룹 회장. 두올산업이 SG BK그룹 인수에 나선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김병건 BK그룹 회장이 모자란 빗썸 인수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두올산업과 손을 잡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연합뉴스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SG BK그룹이 부족한 빗썸 인수자금을 두올산업 측으로부터 조달하려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병건 회장이 이끄는 BK컨소시엄은 지난해 10월 빗썸 운영사 BTC코리아닷컴의 최대주주 BTC홀딩컴퍼니 주식 50%+1주를 약 4000억 원에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해 1000억 원의 계약금을 지불했다. 하지만 이후 빗썸 대주주 지분 인수 기한을 2차례 연기했다. 본래 나머지 금액을 지난 2월 말까지 납입하기로 했지만 3월 말로 지연했고, 인수 지분을 기존 50%+1주에서 70%로 늘리면서 납입기한을 오는 9월 말로 다시 미뤘다. BK컨소시엄이 납입기한을 거듭 연장하는 이유는 인수자금을 조달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부족한 자금을 두올산업을 통해 충당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럼에도 두올산업이 자본을 댈 만큼 재정상황이 탄탄하지 않다는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업계 안팎에서 빗썸이 두올산업을 통해 코스닥에 우회상장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두올산업에 투자하는 회사들의 자금줄이 상장사 지분을 확보하려는 빗썸 주주들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실제 BTC홀딩컴퍼니가 올해초 신발제조업체 아티스를 인수하며 빗썸을 우회상장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티스 인수 시도 당시 인수자였던 빗썸이 지금은 피인수자로 바뀌긴 했지만, 만약 빗썸의 지주사에서 파이낸싱을 한다고 하면 사실상 그때와 같은 구조”라며 “아직 두올 측 투자자들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두올 측이 내놓은 자본조달 방안이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합리적 의심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올산업의 개입을 통해 복잡한 지분구조를 구축함으로써, 빗썸 내부 실세가 적은 돈만을 가지고 돌리는 등 자금 출처를 추적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실제 빗썸은 BTC홀딩컴퍼니, 비트갤럭시아 1호 투자조합, 비덴트, 옴니텔 등 여러 회사들의 지분이 복잡하게 얽혀 빗썸의 실제 주인을 알기 힘들다.
두올산업 임원진이 과거 ‘홈캐스트 주가조작’ 사건과 관계돼 있다는 점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두올산업의 이창현 대표와 신재호 사내이사, 한도 감사는 지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홈캐스트에서 본부장과 대표이사,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이들 3명 모두 두올산업 임원진이 교체된 지난 3월 나란히 주요 임원진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BK컨소시엄이 빗썸 인수자금 지불을 미룬 시기와도 겹치는 데다, 이창현 대표와 신재호 사내이사는 두올산업의 자금 공급사로 나선 상황이다. 홈캐스트 주가조작이란 2014년 황우석 박사가 대표로 있는 비상장 바이오업체와 손잡고 줄기세포 관련 사업을 함께하기로 했다는 허위 정보를 퍼뜨려 홈캐스트 주가를 끌어올리는 수법으로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건이다. 신재호 사내이사(당시 홈캐스트 대표)는 이 사건으로 지난해 2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물론 지금까지 나오는 말들은 뚜렷한 물증이 나오지 않은 심증이다. 이에 핵심은 두올산업 자금을 조달하는 투자자들의 실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두올 측에 투자하는 주체들은 대부분 실체가 없는 신생회사로 2000억 원이 넘는 돈을 조달하기는 힘들어 보인다”며 “실제로 자금을 대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빗썸 인수전 시나리오는 확 달라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두올산업 측은 SG BK그룹, 빗썸과의 관계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에 대해 사실관계를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두올산업 관계자는 “투자와 관련해서는 NDA(비밀유지계약)를 맺고 진행하고 있고, 경영진에서 진행하는 일이기에 알지도 못한다”고 말을 아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이창현 두올산업 대표이사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SG BK그룹 지분 인수는 사실이나, 빗썸의 경우 지분을 직접 인수한 건 아니고 두올산업이 투자한 SG BK그룹이 BTHMB홀딩스에 지분 투자 제안을 하고 협의를 진행 중인 상태”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빗썸 관계자는 “주주들 간 오간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BTHMB홀딩스는 최근 홈페이지에 공식 입장문을 띄워 “두올산업 및 SG BK그룹과 재무적 투자 및 인수와 관련해 체결된 계약이 없다“며 ”두올산업을 포함한 몇몇 기업이 BTHMB홀딩스에 재무적 투자 의사를 밝힌 것은 사실이나 어떠한 계약도 체결된 바 없고, SG BK그룹은 BTHMB홀딩스 펀딩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두올산업과 SG BK그룹은 어떤 회사? 최근 빗썸 인수전에 이름을 올린 두올산업은 자동차 카펫 제조전문업체로 현대기아차에 주로 납품하는 회사다. 1993년 설립 이래 자동차 내장 카펫 및 소재만을 개발, 생산하고 있는 전문기업이었는데, 최근 사업다각화를 위해 SG BK그룹 지분을 확보하겠다고 공시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 국적의 SG BK그룹은 김병건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다. 빗썸을 인수하고 있는 BK컨소시엄(BTHMB홀딩스)의 지분 대부분을 소유한 BK SG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성형외과 의사 출신으로 싱가포르에 BK메디컬그룹 병원도 운영하고 있다. 과거 비트컴퓨터와 휴젤 등에 투자해 수천억 원의 자산을 모았다. 최근 BK컨소시엄을 이끌며 빗썸 인수에 나서고 있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