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민정수석. 박은숙 기자
문재인 정부 3기 개각은 ‘총선용’이다. 더 나아가 차기 대선까지 내다 본 ‘장기 포석’도 깔렸다. 현재 개각 대상 9명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박상기 법무·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박능후 보건복지·진선미 여성가족·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피우진 보훈처장(차관급), 공석인 공정거래위원장 등이다. ‘군 기강 해이’ 등의 돌출 변수에 유탄을 맞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놓고도 장고에 들어갔다. 이 경우 물갈이 숫자는 두 자릿수에 달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 들어 최대 폭 인사다.
가장 뜨거운 감자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거취다. 애초 여권에선 조 수석과 이 총리의 퍼즐을 놓고 3기 개각 맞추기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조조(조국·조현옥 전 인사수석) 라인’ 보호 때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기·승·전·조국’이라는 얘기다. 전략가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조국 법무부 장관’ 카드에 대해 “대권을 내다본 것”이라고 밝혔다. 조 수석은 정기국회 전, 이 총리는 정기국회 후 개각으로 정리했다.
조국 카드는 여권으로선 금상첨화다. 조 수석은 여권이 총선 승부처로 낙점한 PK(부산·울산·경남) 인사다. 조 수석을 전진 배치하면, ‘도로 호남당’ 비판을 상쇄할 수 있다. 이미 임명을 재가한 윤석열 검찰총장과 함께 적폐청산을 총지휘할 수도 있다. 조국 카드 하나로 총·대선과 집권 후반기 국정동력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1석 3조’ 효과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야권 전직 의원은 “법무부 장관은 힘이 별로 없다”며 “조 수석보다는 윤 총장이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랬다. 역대 법무부 장관 중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는 인사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63대) 정도다. 참여정부 시절 당시 여권에서 키웠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55대)은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참패했다.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57대)은 친노(친노무현)계와 부딪히면서 ‘호남 지역 정치인’ 굴레에 갇혔다. 김기춘(40대)·박희태(42대)·박상천(47대) 전 장관 등도 2인자에 머물렀다.
문 대통령의 친정 체제 강화는 조국 카드에서 끝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장관에는 ‘왕실장’으로 불린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단수 후보로 검증을 마쳤다. 경기 하방 우려에 7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한 김 전 실장이 다시 신임을 받는 셈이다. 야권에서 “돌고 도는 회전문 인사냐”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차기 공정거래위원장에는 여성인 조성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애초 선순위로 거론된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다른 자리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김 차관은 정부 출범 직후부터 문 대통령이 기용할 전천후 후보 중 한 명으로 불렸다. 여성가족부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총선 불출마를 전제로 민주당 현역 의원을 대상으로 물색하고 있다. 교육부 장관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금융위원장 등 일부 부처 장관 인선에 난항을 겪고 있지만, 청와대는 정기국회 전 개각 인선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낙연 총리를 비롯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아직 역할이 남았다는 이유 등으로 정기국회 이후에 교체할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이 총리는 서울 종로 출마자로 거론된다. 김 장관은 현역 지역구(경기 일산 고양정)를 포기했다는 말도 들린다. 차기 국무총리로 깜짝 발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 부총리도 여권 총선 차출자 중 한 명이다.
“참여정부의 학습효과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캠·코·더(문재인 캠프·코드 인사·더불어민주당) 인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자기 사람 심기’에 나선 이유에 대해 대통령 신념과 함께 참여정부 학습효과 얘기를 많이 꺼냈다.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이듬해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를 제외한 대다수 선거에서 완패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대표적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중 1곳(전북 김완주)에서만 이겼다. 광주와 전남도 민주당에 빼앗겼다. 한나라당은 12곳을 휩쓸었다. 제주는 무소속(김태환) 후보가 당선됐다. 이후 재·보궐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은 참패를 거듭했다.
17대 총선도 탄핵 역풍이란 메가톤급 변수가 없었다면, 열린우리당(152석)의 제1당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반면 잇따른 대선 패배와 대선 자금으로 직격탄을 맞았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의 천막당사를 앞세워 121석을 건지면서 ‘지고도 이긴 선거’를 만들어버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 앞에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이 따라다닌 것도 이쯤이다.
당시 열린우리당과 현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큰 차이는 여권 내부의 ‘극한 권력암투’ 여부다. 열린우리당은 태생부터 분열한 채 태동했다.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후 친노계를 전면에 내세워 전국 정당화와 수평적 당·청 문화 등을 명분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선 ‘난닝구(실용주의파)’와 ‘백바지(개혁파)’ 간 갈등이 사사건건 발생했다. 한때 당 정풍 운동을 주도했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이 지금껏 친노·친문계로부터 배척당한 것도 당시 ‘노무현 등에 칼을 꽂았다’는 인식과 무관치 않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참여정부 당시 당·청 관계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자기 체제 강화에 구멍이 난 것”이라며 “열린우리당 내분이 선거 경쟁력을 약화한 것은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달랐다. 민주정부 3기인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열린우리당이 시도했던 ‘수평적 당·청 관계’에 선을 그었다. 입만 열면 ‘우리는 한 몸’이라며 운명공동체론을 설파했다. 야권과 지식인 사이에선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여권은 당·청 일체론으로 맞섰다. 참여정부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인사 등에선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평행이론으로 이어지지만, 선거만큼은 두 대통령 간의 평행이론의 끈을 잘라내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앞서 조국 법무부 장관설이 흘러나왔을 당시 정치권 안팎에선 ‘참여정부의 문재인’과 ‘문재인 정부의 조국’을 두고 평행이론을 제기했다. 두 민정수석은 13년 시간을 두고 법무부 장관 후보자 하마평에 올랐다. 참여정부 당시 민정수석을 지냈던 문 대통령은 2006년 8월 신임 법무부 장관의 유력한 후보자였다. 열린우리당 내부는 발칵 뒤집혔다. 김근태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청와대 오찬 당시 노 전 대통령 면전에서 “개인적으로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본다”면서도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코드 인사를 하지 말라고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노무현·문재인 평행이론은 이뿐만이 아니다. 두 대통령은 정권 출범 직후 ‘호남 총리’를 각각 기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행정의 달인’ 고건 전 국무총리를, 문 대통령은 이낙연 국무총리를 각각 지명했다. 선거만 끝나면 팽한다는 이른바 ‘호남 홀대론’을 불식하려는 의도가 깔렸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철저히 약점을 극복하는 데 활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합리적 리더십 소유자인 문희상 국회의장을, 문 대통령은 ‘포스트 문재인’ 카드로 86(80년 학번·60년대 생)그룹 리더인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내세웠다. 참여정부 마지막 경호실장인 주영훈 실장은 문재인 정부 초대 경호실장에 임명했다. 적어도 인사 분야에선 ‘노무현·문재인’의 평행이론이 성립하는 셈이다.
청와대 전·현직 참모진도 친정 체제 강화를 위해 출전 채비를 마쳤다. 임 전 실장을 비롯해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박수현 전 비서실장, 권혁기 전 춘추관장 등 1기 참모진은 여의도로 복귀했다. 정태호 일자리수석·이용선 시민사회수석 등도 총선 출마자로 꼽힌다. 비서관 중에선 조한기 제1부속비서관과 복기왕 정무·김영배 민정·김우영 자치발전·민형배 사회정책 비서관 등이 원내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친문의 전성시대’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