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화당(민평당)이 창당 1년 5개월 만에 분당 수순을 밟고 있다. 민평당은 7월 16일 당 진로를 두고 ‘자강파’와 ‘제3지대파’로 나뉘어 끝장토론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지난 2017년 12월 22일 박지원 의원과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국회 복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제3지대 통합을 주장하는 김종회 박지원 유성엽 윤영일 이용주 장병완 장정숙(바른미래당 비례대표) 정인화 천정배 최경환 의원 등 10명은 신당 창당을 위한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대안정치)’를 결성했다. 현재 민평당 소속이거나 뜻을 같이하는 국회의원은 바른미래당 비례대표 3인을 포함해 총 17명이다.
이에 대해 정동영 민평당 대표 측 관계자는 “언론 대부분이 이번 사태를 자강파 대 제3지대파의 충돌로 보는데 틀린 시각이다. 우리가 제3지대 신당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로드맵을 제시해달라고 했다. 누가 참여하기로 했는지, 가능성은 있는 것인지 보고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쪽(제3지대파)은 아무 것도 제시하지 못했다. 무작정 당 대표 먼저 물러나라고 하는 것이다. 제3지대론은 정 대표를 물러나게 하기 위한 핑계”라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이번 사태 배후에 박지원 의원이 있다고 본다. 정 대표는 끝장토론 다음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원로 정치인이 당의 단합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뒤에서 들쑤시고 분열을 선동하고 있다. 그 원로 정치인은 단 한 번도 정동영 대표를 대표로 인정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가 언급한 원로 정치인이 박지원 의원이다.
정 대표 측 관계자는 “이번에 저쪽(제3지대파)이 만들려는 것은 사실상 ‘박지원 신당’이라고 본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출마하는 걸 박 의원이 강하게 반대했었다. 이후 갈등이 많았다. 제 생각에는 박 의원이 상왕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정 대표가 고분고분하게 말을 안 들으니까 찍어내려는 거 같다. 총선을 앞두고 박 의원이 공천권, 비례대표 선정권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정 대표가 이를 거절하니 이러는 거 아닌가”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제3지대 신당을 만든다는데 박지원 의원이 (제3지대 합류설이 도는) 바른미래당 박주선, 주승용 의원과 사이가 나쁜 것으로 알고 있다. 박 의원이 당을 장악하려고 (걸림돌이 될)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받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도 돈다. 제3지대 신당이 제대로 되겠느냐”면서 “저들의 목표는 제3지대 신당이 아니라 박 의원이 상왕 노릇할 ‘박지원 신당’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3지대파 인사들은 황당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한 제3지대파 관계자는 “정 대표가 이제야 제3지대에 찬성하겠다고 하는데 궁지에 몰리니 입장을 바꾼 거다. 우리는 진정성이 없다고 본다. 자꾸 로드맵을 제시하라고 하는데 일단 우리가 외부인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놔야 로드맵이 구체화되는 거 아닌가. 우리가 그대로 있으면 지지율 1%대 정당에 누가 오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 측 관계자도 “박 의원이 1%대 지지율 정당 공천권에 왜 욕심을 내겠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을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하고 외부에서 비대위원장을 모셔오려고 한다. 좋은 분을 모셔오려면 권한을 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천권 이야기를 한 것이지 개인적인 욕심을 낸 게 아니다”라고 했다. 박지원 신당을 만들려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대안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의원 개개인을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정 대표 측은 “지난 보궐선거에서 우리 당 후보가 호남에서 승리했다. 당 지지율이 낮지만 호남에서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 그러니 공천권에 욕심을 내는 것 아니겠나”라고 주장했다.
제3지대파 인사들은 이번 사태가 촉발된 배경에 정동영 체제에 대한 불만도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한 인사는 “정 대표가 취임하면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취임 후 어떻게 됐나. 지지율이 더 떨어졌다. 취임 후 우리 당 노선이 정의당보다 더 좌측으로 갔다. 당내 인사들이 여러 경로로 우려를 전달했지만 무시당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정 대표 취임 후 당 사당화가 심각했다. 당직자들에게 물어보면 다 안다. 대표 취임 후 자기 사람 심기에 몰두했다. 정도가 너무 심해 항의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제3지대파 한 관계자는 “솔직하게 말해서 정 대표는 제3지대 연대의 걸림돌이다. 정 대표가 과거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 분당을 주도해 진보 진영 인사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우리가 진보 블록 인사들과 제3지대를 구성해야 하는데 정 대표가 당 얼굴로 있으면 통합이 어렵다”면서 “정 대표도 우리가 품어야 할 자산이지만 당 대표에서는 일단 내려오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정 대표 측 관계자는 “당 지지율이 낮아서 정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데 제대로 돕기나 했었나. 제3지대파 인사들은 그동안 당 행사에 대부분 불참했다. 워크숍을 열어도 오지 않아서 당원들이 ‘왜 이런 행사에 국회의원이 빠지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연동형비례제 도입 촉구 시위할 때도 돕지 않았다. 이제 와서 당 지지율 낮은 것이 다 정 대표 책임이라고 하면 억울하다”고 했다.
당 소속 국회의원 중 절반 이상이 대표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대안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이 다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들은 제3지대론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이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이 제각각이다. 또 상당수 의원들은 호남 맹주인 박지원 의원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매우 느슨한 연대다. 몇몇 분은 다시 저희 쪽에 오려고 교감하는 분들도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대안정치TF 대표를 맡은 유성엽 의원은 “올해 9월말 제3지대 신당을 출범 시키겠다”고 밝혔지만, 박지원 의원은 “유 의원 개인적 소신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신당 창당이나, 분당, 탈당을 논의할 시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 측은 이 또한 이번 사태가 ‘자강파’와 ‘제3지대파’의 갈등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정 대표 측 관계자는 “제3지대 창당을 할 생각이면 대안정치TF를 만들며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당장 탈당했을 거다. 그분들 탈당 안할 거라고 본다. 당내에 남아 정 대표가 물러날 때까지 계속 흔들려는 속셈이 뻔하다”고 주장했다. 제3지대파 관계자는 “정 대표 측 주장은 우리를 흠집 내기 위한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