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네티즌이 만든 일본 불매운동 포스터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터
# 여행부터 제약까지…생활 곳곳 일제 불매
7월 1일 일본정부의 전례 없는 수출 규제 조치 발표 이후 시작된 일제 불매운동이 화제가 되고 있다. 리얼미터가 17일 성인 503명을 대상으로 일본제품 불매운동 실태를 조사(신뢰수준95%,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일제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답이 54.6%를 차지했다. 국민 절반 이상이 일본 불매 운동에 참여하거나 동의하는 셈이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불매 인증’에 나서고 있다. ‘여행 불매가 일본에 큰 타격을 입힌다’는 마쓰야마대 장정욱 교수 발언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일본 여행 취소 인증 사진’을 올리는 네티즌이 늘고 있다. 일본 정부 관광국(JNTO) 통계에 따르면, 일본을 찾는 전체 관광객 4명 중 1명은 한국인이었다. 급기야는 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을 비판하는 SNS 계정까지 새로 만들어졌다. 결국 17일 일본여행카페 ‘네일동’이 잠정적으로 문을 닫았다. 네일동은 회원수 130만 명을 거느린 국내 최대 일본여행카페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7월과 8월 일본행 항공권 취소 건수는 적은 편이다. 당장 일본에 타격을 줄 수 있을 만큼의 결과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신규 예약은 절반 가까이 줄고 있다. 도쿄 등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문의전화가 거의 오지 않는다. 여행 불매 운동이 장기적으로 계속되면 여행 시장이 위축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각에서는 여행불매가 2030세대의 ‘SNS 허세병’을 퇴치해줬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SNS에 여행 사진을 올릴 명목으로 가까운 해외인 일본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았던 탓이다. 여행책 전문 출판사 관계자는 “20대 여행객의 경우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취향에 맞춰 준비했던 SNS 마케팅도 최근에는 무용지물이 됐다. 도쿄 식당 사진을 올리고 ‘일본 맛집‘ 해시태크를 달았다가는 매국노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일본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소비자에 이어 팔지 않겠다는 판매자의 목소리도 커졌다. 맥주, 담배와 같은 기호식품부터 의약제품까지 분야도 점점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편의점에서 시작된 ’일본 제품 팔지 않기‘ 흐름은 대형마트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대형 마트 관계자들 역시 일본 제품 진열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운데 전북약사회는 18일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성명을 내고 19일부터 불매운동을 한다고 밝혔다. 전북지부에 따르면 약사들은 환자들에게 약국에 비치된 100여 가지의 일본산 약 대신 같은 성분의 국산 약을 소개한다. 일반 약사들은 터질게 터졌다는 입장이다.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동료들끼리 모여 하던 이야기가 공식화되니 놀랍긴 하다. 실제 이행 여부를 떠나 상징성 있는 성명서였다”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일본 관련 기업은 전전긍긍 ‘눈치전’
온라인에서 공유되는 불매기업 리스트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처
한편 기업들은 긴장 상태다. “일본에는 단 1%의 배당금도 주기 싫다”는 네티즌들이 앞장서서 일본 관련 회사를 찾고 있는 까닭이다. 네티즌들은 대기업부터 생활용품 브랜드 속 숨어 있는 일본 지분 찾기에 열중하고 있다. 현재 불매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국내 기업은 다이소, 롯데그룹, LG 유니참, 세븐일레븐 등이다.
리스트에 오른 일부 기업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영업 초기부터 일본 브랜드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던 아성 다이소는 빠르게 입장을 내놨다. 다이소 측 관계자는 “다이소의 최대주주는 한국기업인 아성 HMP로 50.02%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외국인의 투자를 받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한국기업”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다이소의 2대 주주는 일본 다이소로 전제 지분의 30% 이상을 가지고 있는 탓이다.
한일 관계 약화로 골머리를 앓기는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쪽은 롯데그룹이다. 특히 한일 양국에서 같은 그룹을 운영하고 있는 롯데는 현재 양쪽에서 동시에 불매운동을 당하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호텔 롯데의 지분 99% 이상이 일본 롯데에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알려지면서 불매리스트에 또 다시 올랐다.
부진한 실적은 눈 앞에서 나타나고 있다. 불매운동 이후 롯데지주의 시가총액은 전년 고점과 비교해 2조원 가까이 빠졌다. 여기에 유니클로와 무인양품 등 주요 불매운동의 브랜드의 매출도 눈에 띄게 줄어 이들의 유통사인 롯데그룹 경영진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불매운동이 장기화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비판적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불매운동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일본 제품의 대체재를 소개하는 웹 사이트 ‘노노재팬’의 개설자 김병규 씨는 18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일제 불매운동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중요한 것은 불매운동이 생겨난 이유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