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레인저스의 베테랑 추신수. 사진=이영미 기자
[일요신문] “트레이드요?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있는 팀이라면 고려해 볼 수는 있겠죠.”
최근 미국 텍사스 레인저스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추신수(37)는 트레이드 관련해서 전제조건을 달았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한 팀이라면 생각해보겠다고 말이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트레이드 마감은 한국 시간으로 8월 1일 오전 5시까지다. 이후에는 정규시즌 종료까지 추가 트레이드가 불가능하다. 19일 현재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불과 열흘 정도 남은 터라 미국 현지 언론은 연일 선수들의 트레이드 가능성을 점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19일 현재 50승 46패 승률 0.521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3위에 올랐다. 지구 선두 휴스턴 애스트로스와는 10경기차, 와일드카드 다툼을 벌이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4.5경기차다. 여전히 5할 승률(0.521)을 유지하고 있고, 벌써 포스트시즌 진출을 포기하기에는 남은 경기가 많은 편이지만 4연패에 빠진 텍사스가 앞으로 5경기 안에 반전을 이루지 못한다면 텍사스의 존 대니얼스 단장은 ‘바이어’가 아닌 ‘셀러’가 될 것이라는 시선이 우세하다.
MLB.com은 최근 텍사스 레인저스의 에이스인 마이크 마이너와 함께 올 시즌 올스타에 선정된 헌터 펜스를 강력한 트레이드 후보로 꼽았다. 그리고 한 명을 추가했는데 그가 바로 추신수다. 내년이 텍사스와의 계약 마지막 해인 추신수는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트레이드 소문의 단골손님이었다. 그때는 추신수의 잔여 연봉에 대한 부담으로 트레이드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지금은 팀과의 계약 기간이 1년 밖에 남아 있지 않아 몸값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다. 텍사스로선 추신수를 트레이드 대상에 올려놓고 팀에 필요한 유망주나 전력 보강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추신수는 올 시즌 90경기서 340타수 97안타 타율 0.285 15홈런 38타점 61득점 출루율 0.384를 기록 중이다. 시즌 개막전 선발 출전에서 제외되며 신임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과 잠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우드워드 감독의 적극적인 사과가 이어지면서 지금은 신뢰 관계를 회복했다.
추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 클럽하우스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이영미 기자
텍사스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추신수는 팀을 이끄는 실질적인 ‘리더’다. 지난해까지 리더의 역할을 담당했던 아드리안 벨트레의 은퇴로 추신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고, 젊은 선수들이 대부분인 텍사스 선수단은 추신수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다.
이런 추신수가 올 시즌 팀을 떠나 다른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까. 먼저 추신수의 생각을 들어봤다.
“해마다 트레이드 마감이 다가오면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기 마련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별 감흥이 없어요. 소문이 현실로 이뤄진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프로에서 선수는 ‘상품’입니다. 일부 팀들에 대한 트레이드 거부권을 갖고 있지만 팀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죠. 그럼에도 트레이드가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추신수는 트레이드보다 후반기 4연패를 당한 상황을 더 아쉬워했다. 올스타 휴식기를 마치고 지구 1위 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4연전 중 2차전까지 연승 행진을 벌이던 텍사스가 이후 2연패를 당했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다시 연패를 거듭하며 순식간에 4연패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18일(한국시간) 애리조나를 상대로 4-19라는 엄청난 점수 차로 패한 후 텍사스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추신수는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트레이드 데드라인 직전까지의 경기들이 매우 중요한데 4연패를 당해 충격이 크네요. 하루 휴식하면 그다음에는 또다시 지구 1위 팀인 휴스턴 원정 경기가 펼쳐지는데 어떻게 해서든 연패를 끊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요즘 자꾸 조급한 마음에 타격 타이밍이 안 맞고 있는데 저도 더 분발해야 될 것 같아요.”
흥미로운 건 텍사스 레인저스가 포스트시즌 진출과 점차 거리가 멀어질수록 소속 선수들의 트레이드 논의는 더욱 활발해진다는 사실이다. 텍사스의 존 대니얼스 단장은 여전히 트레이드 관련해서 자세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분명한 건 언론에서 예상하는 대로 팀 성적이 더욱 안 좋아진다면 상대팀이 관심을 둘 만한 선수들로 트레이드 ‘매물’을 정리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추신수는 트레이드가 아닌 팀의 성적을 앞세웠다. 트레이드 소문은 나돌아도 지금은 엄연히 정규 시즌을 치르고 있고, 팀 성적은 물론 자신의 개인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집중하고 싶어했다.
텍사스 레인저스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텍사스를 이끄는 우드워드 감독은 추신수 트레이드와 관련해 어떤 입장일까.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한 우드워드 감독은 일단 추신수 이야기가 나오자 환한 미소를 보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팬들도 알다시피 올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추신수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새로 영입된 헌터 펜스를 팀의 일부로 느끼게 해주려고 추신수를 개막전 선발 명단에서 제외하는 바람에 추신수에게 상처를 줬었죠. 그때 추신수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미국 선수들은 몇백 명 중 한 명이지만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개막전에서 제외된 이유가 성적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결정을 이해 못 하는 한국 팬들에게 개막전 선발 제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라고 말이다. 당시 추신수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미안했어요.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으니까요. 이후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부터 추신수를 유심히 관찰했던 것 같아요.”
우드워드 감독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추신수를 향해 ‘존경한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당연시하지 않는 선수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런 건강한 두려움을 가진 이는 흔치 않습니다. 젊은 선수들도 추신수를 매우 좋아합니다. 저는 그를 존경하고 있고요.”
만약 추신수가 트레이드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우드워드 감독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건 제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겠죠. 그럼에도 우리 팀의 1번 타자이자 리더가 팀을 떠난다면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쉬움이 존재할 겁니다. 그는 우리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추신수의 트레이드 가능성을 희박하다고 예상했다. 단순히 유망주 영입 보상 차원에서 팀의 리더를 트레이드할 만큼 텍사스 레인저스의 현실이 넉넉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만약 추신수가 빠지면 선수단을 이끌 만한 적임자가 누가 있을까요. 또 지금 라인업에서 추신수를 대신할 1번 타자가 과연 존재할까요? 특히 텍사스는 내년에 새로운 돔구장에서 시즌을 맞이합니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팀의 리더를 내놓기는 어려울 겁니다.”
미국 알링턴=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