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양승우는 일본 최고 권위의 ‘도몬켄 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일요신문=정읍] 박종범 기자=“기억하기 위해, 모두 언젠가는 사라진다”
일본 최고 권위의 ‘도몬켄 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한 사진작가 양승우. 그의 고향은 ‘녹두꽃’으로 유명한 전북 정읍이다. 정읍시립미술관 한 켠에 자리잡은 카페‘까미나레’에서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지난 21일 오후 양 작가를 만나 그의 인생을 들여다 봤다.
양 작가의 이번 전시회는 한국예총 정읍지회의 주관으로 이달 20일부터 8월 11일까지 고향인 정읍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앵글을 통한 실험정신이 강한 양 작가는 정읍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96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공예대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이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양 작가는 세계가 주목하는 반열에 오르며 국,내외 사진계가 의 주목를 받고 있다.
양 작가는 아직도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민이 얼굴 가득 묻어났다. 이번 전시회를 함께 둘러본 한 서정시인은 ‘시선외의 시선’이라는 표현으로 작품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조만간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 전시회를 준비 중인 양 작가는 고향에서의 전시회를 남다른 설레임과 기쁨으로 보내고 있다. 양 작가는 철없던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며 세상의 ‘쓴맛 단맛’을 다보며 거친 광야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사람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공허함과 허무함을 이른 나이에 깨달은 양 작가는 어느 날 서울에서 질펀하게 술을 마시고 놀다가 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 만에 도착한 부산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절망을 느꼈다.
삶에 대한 회의가 밀려들자 그는 무작정 현해탄을 건넜다. 한국이 좁다고 느낀 양 작가는 세상이 궁금해 ‘호기심 반 설레임 반’으로 새로운 세상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때가 1996년 이었다.
양 작가는 “현재 조국 대한민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람의 흔적을 앵글에 담고 있다”며 “기획되지 않는 순간에 노숙자, 야쿠자, 문신, 트랜스젠더 등 사회가 기피하는 대상을 주로 피사체로 담아왔다”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했다.
‘인간에 대한 기록과 삶에 대한 경외’를 작가정신으로 여기고 있는 양 작가는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의 2대 사진대전 가운데 하나인 ‘도몬켄 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에는 TV아사히 공동제작 다큐멘터리 ‘2019 「Heisei Saiyonara Kabukicho’에 소개되기도 했다.
‘친구가 죽었다.
친구들을 찍기 시작했다.
내 주위 사람들을 미친 듯이 찍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들을 잃지 않으려고…‘<양승우>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의 대표작 중 2003년부터 2005년 사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야쿠자, 조직폭력배의 일상을 담은 <청춘길일>(靑春吉日)과 함께 어린 시절의 친구, 주변인들의 옛 사진과 현재 사진을 병렬한 새로운 시리즈, 그리고 일본과 한국에서 촬영한 일상적이고 장난기 넘치는 사진들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이에대해 양 작가는 “‘청춘길일’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주변인들의 흔적을 남기려는 시리즈다”며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친구와 그를 기억하지 않는 이들을 보며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사진으로 붙잡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 작가는 “언젠가는 사람도, 추억이 담긴 건물도 사라져 버리지만 그들의 흔적을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며 “이번 전시회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유진섭 정읍시장님과 예총관계자, 그리고 정읍시립미술관 강미미학예사님과 신함식대표등 모든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양 작가는 ‘모두 언젠가는 사라진다’ 라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받아들이며 사소하고 추한 것이라도 카메라 담기 위해 자신과의 처절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아름다운 것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기피하는 것과 흉한 것에도 눈길을 주는 다정함은 그의 날 것의 이미지 안에 숨어 반짝거립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휴먼니스트’인 양 작가는 그가 마주해온 인생과 주변인들의 기록을 통해 찬란함과 공허함 그리고 그 사이의 따뜻함을 드러내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세터를 누른다.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