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이정후. 사진=이동섭 기자
[일요신문] 2017년. KBO리그엔 ‘고졸 신인 열풍’이 다시금 불기 시작했다. 리그에 새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한 주인공은 ‘바람의 손자’라 불리는 사나이. 키움 히어로즈 외야수 이정후였다.
2017시즌 고졸 신인 이정후는 KBO리그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이 베테랑 못지않은 노련한 타격 솜씨를 뽐낸 까닭이다. 데뷔 첫해 이정후는 정규시즌 전 경기(144경기)를 소화하며, 타율 0.324/ OPS(출루율+장타율) 0.812/ 2홈런/ 12도루/ 47타점/ 111득점 맹활약을 펼쳤다. 신인왕 트로피는 자연스레 이정후 품에 안겼다. 스타 탄생이었다.
이듬해인 2018년 이정후는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104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성적은 여전히 훌륭했다. 데뷔 2년차 이정후에게 ‘소포모어 징크스’는 없었다. 2018시즌 이정후의 성적은 타율 0.355/ OPS 0.889/ 6홈런/ 11도루/ 57타점/ 81득점이었다.
그리고 2019년. 이정후는 점점 완전체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KBO리그가 전반기를 마친 7월 22일 기준. 이정후는 94경기에 출전 타율 0.325/ OPS 0.833/ 5홈런/ 12도루/ 44타점/ 57득점을 올리고 있다. 커리어 하이를 노려볼 만한 페이스다.
성공적인 전반기를 마친 이정후의 과정은 더욱 돋보인다. 이정후는 시즌 개막 이후부터 4월 10일까지 타율이 0.230에 불과했다. 시즌 초반 슬럼프를 맞이한 것. 하지만 이정후는 이를 보란 듯이 극복해냈다. 4월 10일 이후 석 달이 조금 지난 시점, 이정후의 타율은 1할 가까이 상승했다. 그야말로 놀라운 반등세다.
이정후의 반등은 소속팀 키움에도 큰 힘이 됐다. 이정후는 전반기를 2위로 마친 키움의 돌격대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해가 갈수록 한 단계씩 성장하는 타자 이정후의 이야기를 ‘일요신문’이 들어봤다.
패기와 노련함 사이… 이정후의 2019시즌
7월 21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19 KBO리그 올스타전’을 끝으로 전반기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이정후. 사진=연합뉴스
- 좋은 성적으로 2019시즌 전반기를 마쳤습니다. KBO리그 데뷔 3년차 시즌 전반기를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지난 시즌엔 동료들과 함께 전반기를 마무리하지 못했어요. 부상으로 재활을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올 시즌엔 ‘건강’에 포커스를 맞춰왔습니다. 캠프 때부터 ‘어떻게 하면 부상을 당하지 않으면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을까’ 생각해 왔어요. 다행히 아직까진 부상을 당하지 않았습니다(웃음). 팀 동료들과 함께 경기를 할 수 있는 것 자체로 기분이 좋아요.”
- 시즌 초반 부진을 보란 듯이 극복해냈는데요.
“다행입니다. 야구를 하면서 이렇게 안 좋게 시작한 것도 올 시즌이 처음이었어요. 타격 흐름을 되찾으면서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프로 3년차다 보니, 좀 더 기복없는 활약을 펼치고 싶습니다.”
- 부진 극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자연스럽게 좋아졌습니다. 사실 타격 페이스가 좋지 않았을 땐 형들이 ‘금방 타격감을 되찾을 것’이라고 격려를 해줘도 잘 들리지 않았던 게 사실이에요. 지금 경기가 잘 안 풀리는데 어떻게 미래를 바라볼 수 있나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말이 맞더라고요. 시즌 치르다 보니 지난해 수술했던 부위도 회복이 되면서, 타격 페이스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 부진의 원인이 궁금해지네요. ‘급한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맞습니다. 마음이 급했어요.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제 몸 상태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었어요. 올 시즌 초반엔 안 아팠을 때 제 몸 상태를 기준으로 경기를 준비했거든요. 지금 당장 경기에 나설 수 있으니, 제 몸 상태가 100%라고 과대평가한 겁니다. 부상을 당하기 전 루틴을 고집하니, 흐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 과정에서 감독님과 코치님들께서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자신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생길 수 있었어요.”
- 부진을 극복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데뷔 3년차’의 원숙함이 느껴집니다. 신인 시절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은 생각해내고 있는 듯한데요.
“신인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즐겁게 야구만 했어요. 제가 꿈꿔왔던 무대에서 야구를 하는 것 자체가 기뻤죠. 덕분에 ‘패기 있게 부딪혀보자’는 마음가짐으로 겁 없이 덤빌 수 있었어요. 2년차 시즌은 많이 아쉬워요.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거기서도 배운 게 있어요. 경기에 뛸 때만큼은 한 타석 한 타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배운 거예요.”
- 그렇다면 올 시즌은 어떻습니까.
“올 시즌은 데뷔 3년차 시즌인 만큼 스스로도 ‘신인의 태를 벗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것을 반면교사 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상 없이 멋있게 ‘프로야구 선수처럼’ 경기를 펼칠 수 있을까. 이 생각을 가장 많이 합니다.”
이정후의 각오 “포스트시즌의 한(恨) 풀고 싶다!”
호쾌하고 정확한 타격은 이정후의 트레이드 마크다. 사진=연합뉴스
- 사실 이정후 선수 말고도, 올 시즌 초반 KBO리그엔 지난해보다 부진한 타자들이 많았습니다. 공인구 반발계수 조정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어요. 시즌 초반 부진에 공인구의 영향은 없었습니까.
“저는 홈런을 많이 치는 타자가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공인구에 따른 변화를 크게 체감하진 못했습니다. 부진의 원인 중에 공인구는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공을 강하게 때려서 내야를 뚫어내는, 혹은 외야를 가르는 안타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할 뿐이었어요. 언제나 ‘타격 페이스를 올려서 팀에 도움이 되는 타자가 되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팬 여러분께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죠.”
- 앞서 말한 것처럼 홈런 타자보다는 정확도가 높은 교타자 유형에 가까운데요. 시즌이 지나가면서 귀신같이 제 페이스를 찾는 흐름은 그야말로 ‘에버리지 히터(Average Hitter)’ 그 자체입니다.
“타자마다 잘할 수 있는 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박병호 선배님이나 제리 샌즈는 홈런으로 경기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는 타자잖아요. 반면 저는 안타를 때려내 살아나가는 것에 자신이 있어요. 어떻게든 장점을 살리는 데 집중합니다. 시즌을 치르다 보면 항상 잘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못할 때는 못 하는 걸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요. 감이 좋을 땐 들뜨지 않도록 해야 하고요.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합니다. 다행인 건 제가 성격 자체가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은 스타일이에요. 오늘 경기가 끝나면, 좋고 나쁜 기분은 거기서 끝납니다. 빨리 또 잘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런 성격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난해까진 타구가 좌·중·우로 고루 분포됐었는데요. 올 시즌엔 당겨치는 타구 비율이 유독 높아졌습니다.
“맞아요. 맞아요. 그런데 당겨치는 타구 비율이 높아진 건 제가 의도한 게 아니에요. 공을 때려내는 포인트가 조금씩 앞으로 형성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겨치는 타구 비율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억지로 밀어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당겨쳤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거기에 집중해야죠.”
- ‘당겨치는 비중을 높이겠다’고 의도한 것이 아니었군요.
그렇습니다. 전반기 기록을 살펴보니 신기하긴 했어요. 타격 페이스가 좋지 않다고 느껴질 때 당겨치는 타구가 많이 나오지 않긴 하더라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안타냐 아웃이냐’ 결과는 제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공을 정확히 때리는 것에 집중합니다. 밀어치든 당겨치든 간에요.
후반기 각오를 밝힌 이정후. 사진=이동섭 기자
- 전반기가 끝난 만큼, 포스트시즌이 머지않은 느낌입니다. 지난 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을 펼친 뒤 플레이오프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어요. ‘이정후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었습니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지난 일보다는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 포스트시즌에서 키움은 좋은 경기를 펼쳤어요. 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올 시즌 다시 한번 기회가 올 것이라고 봐요. 팀 흐름도 좋고, 전력도 좋습니다. 지난해 좋은 기억과 아쉬웠던 기억을 잘 곱씹어서 올 시즌엔 키움이 포스트시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 2019시즌 가을야구에 출전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벌써 느껴집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3경기 정도를 뛰어봤습니다. 정말 평소에 하던 경기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어요. 평소에 긴장을 안 하는 스타일인데… 프로 데뷔전, 아시안게임 때도 긴장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포스트시즌에선 긴장감이 말도 못 했습니다. 올해엔 그 긴장감을 즐기며, 지난해의 한을 한번 풀어보고 싶어요.”
- 이제 포스트시즌으로 가는 중요한 과정, 후반기가 남아 있습니다. 후반기 각오 한말씀 부탁합니다.
“키움이 전반기를 2위로 마쳤습니다. 만족할 만한 성적인 것 같기도 하면서, 조금 아쉽기도 해요. 이제 정규시즌이 40경기 조금 넘게 남았습니다. 휴식기에 남은 시즌을 잘 준비해서 팬 여러분의 기대치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여름이 와서 날씨가 더워졌어요. 그런데 고척 스카이돔은 참 시원하거든요.”
- 갑자기요(웃음)?
“팬 여러분께서 시원한 고척 스카이돔으로 놀러 오셔서 응원 많이 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웃음). 저희는 야구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 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팬들과 함께 웃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