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31일 이낙연 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 제공=청와대
이 총리는 사실 손학규계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총리를 임명한 것은 계파 탕평책 차원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이 총리 초대 비서실장으로 문 대통령 최측근 배재정 전 의원이 임명되자 감시역으로 배치한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이 총리에 대한 친문 진영의 신뢰는 낮았다.
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당직자 출신 인사는 “어떤 계파든 자기 사람 챙기려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 사람 아니면 안 된다’는 친문 진영의 폐쇄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하면 친문 패권주의라는 비판이 나왔겠느냐”고 말했다.
이 총리와 친분이 있는 한 국회의원도 “(친문 이낙연 비토론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며 “친문 진영에선 ‘우리 사람 내세워도 이길 수 있을 거 같은데 굳이 대권을 남(비문)에게 줘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에서 이 총리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엎치락뒤치락하며 1~2위를 다투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1~5위 사이에는 여권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후보 단일화를 한 후 1 대 1 구도로 대결하면 누굴 내세우든 여권 후보가 대권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에 대해 앞서의 국회의원은 “친문이 조국 민정수석을 대권주자로 세우려 한다는데 자기 힘으로 의원 배지나 달아보고 대권을 이야기해야지. 친문 진영 욕심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인사를 무리하게 내세우면 여권이 공멸할 것”이라면서 “친문 진영에선 그런 시나리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우려된다”고 했다.
최근 이 총리가 총선에 불출마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 친문 진영의 작품이라는 의혹도 있다. 이 총리 측에 확인해본 결과 “전혀 우리 쪽 입장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갑자기 왜 그런 보도가 나왔는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당초 이 총리는 연말쯤 총리직에서 물러나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이 총리가 대권에서 승리하려면 2인자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총선 출마는 대권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했다.
반면 청와대는 이 총리 유임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를 유임시키려는 표면적인 이유는 일본 무역보복 등으로 급박한 정치 상황에서 총리직을 비워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친문 진영이 이 총리 대권행보에 제동을 걸기 위해 총리직 유임을 청와대에 요청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만약 청와대가 총선이 끝난 후 어정쩡한 시점에 총리를 교체하면 이 총리는 한동안 자연인으로 머물 수밖에 없다. 자연인으로 지내는 동안 국민 관심에서 멀어져 대권 행보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앞서의 이 총리 측근은 “이 총리는 (총선에) 나가고 싶어 하는데 청와대가 놔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듯 이 총리는 최근 대정부질문에서 총선 출마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저는 스스로 정치적 거취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 인사권자의 뜻에 따르겠다”고 답했다.
물론 이 총리가 결심한다면 언제든지 총리직에서 물러날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 뜻을 거스르고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모양새가 되면 배신자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친문 진영으로부터 ‘우리 편 맞느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 이 총리로서는 피하고 싶은 선택지다.
양측의 미묘한 신경전이 관측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이 총리가 제3지대 인사들과 연대해 친문 진영에 맞설 것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실제로 진보 진영 제3지대 연대 참여설이 도는 한 야권 국회의원은 “민주당 밖에서 이 총리를 돕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야권 국회의원은 “민주당이 복당을 받아주지 않으니 당 안에 들어가 이 총리를 도울 방법은 없다. 대신 개인적으로는 제3지대에 참여한 후 민주당 대선 경선부터 이 총리를 돕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제3지대를 구성한 후 허약한 자체 대권주자를 내세우느니 이 총리를 고리로 범진보세력이 연대하는 그림”이라면서 “일례로 러시아에서는 여러 정당이 특정 한 대선후보를 지지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야권 국회의원은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다른 정당과 연대 안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 민주당을 압박하기 위해 내년 총선에서 제3지대 정당이 친문 핵심 인사들 지역구에 자객공천을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이 국회의원은 “우리 후보가 지역구에서 15% 이상은 득표할 수 있다. 진보표가 갈라져 우리 후보가 출마한 지역 민주당 인사는 다 낙마할 것”이라며 “핵심 친문들이 낙마 위기에 몰리면 먼저 연대하자고 제안해올 거다. 민주당과 연대해야 우리 쪽 후보가 많이 살아남을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제3지대 인사가 많이 살아남아야 이 총리에게 힘이 돼 줄 수 있다”고 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 총리는 친문 비토론이 아니더라도 친문 세력만 등에 업고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수 진영은 연대하는데 진보 진영이 분열돼 선거를 치르면 필패”라면서 “이 총리가 대선승리를 위해 바른미래당 내 진보 세력, 민주평화당, 정의당을 아우르는 범여권 연대를 구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정치권에서 회자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총리가 호남을 방패삼아 친문 진영의 흔들기를 막는 전략도 회자된다. 이 총리는 오랜만에 나온 호남 출신 유력 대권주자다. 이 총리에 대한 호남민들의 기대가 크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호남 몰표를 바탕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친문이 호남 출신 대권주자를 인위적으로 주저 앉혔다는 프레임에 갇히면 누굴 대안으로 내놔도 차기 대권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이 총리와 연대설이 제기되는 제3지대 정당도 호남을 기반으로 한다. 이 총리는 최근 민주평화당 인사와 호남 지역 무소속 의원 등과 활발한 교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앞서의 국회의원은 “현재 경쟁력 있는 친문 주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쟁하면 당내 경선에서 이 총리가 질 리가 없지만 친문이 아예 골대를 움직일 가능성이 있어 우려된다”면서 “그런(이낙연 찍어내기) 상황이 생기면 호남 유권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