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이 시스템을 통해 제조업의 필수조건인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곧 성과로 이어졌고, 과거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였던 삼성의 상징은 현재 ‘초격차(경쟁자가 쫓을 수 없는 압도적 경쟁력)’가 됐다. 다만 한편으로는 뚜렷한 실체 없이 존재하면서 총수를 위한 각종 불법행위를 주도하거나 감추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는 비판도 함께 받는다. ‘삼각축’은 삼성의 빛이자 그림자인 셈이다.
이 삼각축 속엔 독특한 인물들이 있다. 기획과 보고, 지시와 실행이 삼성 컨트롤타워의 사령탑으로 불리는 이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강력한 전권을 가지고 그룹경영 전반을 챙기는 것은 물론 유사시 총수 일가의 방패가 되기도 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역사 속 왕정 체제에서나 어울릴법한 말로 표현되는 삼성의 ‘2인자’들이다.
삼각축이 처음 구성된 19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삼성의 2인자로 통하는 인물은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 최지성·김순택 전 미래전략실장,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사장 등 총 4명이다. 김순택 실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이름이 최근 나란히 검찰과 법원 그리고 국세청 등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각자 내용은 다르지만 삼성의 전현직 2인자들이 동시에 법의 심판대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회계 조작으로 ‘불법 승계’ 의심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공통분모도 갖고 있다.
# ‘삼성의 영원한 2인자’ 이학수
이학수 전 삼성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은 삼성은 물론 국내 재벌그룹을 통틀어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이건희 회장의 복심으로 통하며 14년을 보냈다. 전임자들의 재임기간 평균 3.5년의 4배를 넘어선다. 1997년 이후 비서실장, 구조조정본부장, 전략기획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학수 전 삼성 전략기획실장(부회장). 사진=일요신문 DB
이학수 전 부회장은 삼성과 오너일가의 재무를 총괄한 ‘금고지기’로도 통한다. 1971년 제일모직으로 입사해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재무팀에서 이사-상무-전무 등을 지낸 삼성 재무의 핵심이었다. 이 역할 탓에 여러 차례 검찰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3년 대선 불법 정치자금 사건과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당시엔 자신에게 불리한 흐름 속에도 이건희 회장을 끝까지 보호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삼성은 2010년 이학수 전 부회장을 삼성물산 고문으로 발령 내면서 ‘이학수 지우기’에 나섰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를 통해 덧씌워진 컨트롤타워의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겠다는 이건희 회장의 의지였다. 당시 이학수 전 부회장의 인사는 발표 전날까지도 그룹 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학수 라인’으로 불리던 삼성 계열사의 핵심 임원들도 이때 물러났다.
이 전 부회장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2월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으로부터 다스 소송비 대납 요청을 받고, 이건희 회장의 승인을 얻어 지원했다는 내용의 ‘폭탄진술’을 했다. 그는 지난 7월 17일 이명박 전 대통령 항소심에도 출석해 “삼성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자금을 지원해줬다”고 법정 진술했다.
이와 별개로 이 전 부회장은 국세청으로부터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은 지난 3월부터 이 전 부회장의 재산 전반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다. 조사3국은 재산관련 변동조사, 상속증여 등 차명재산 조사를 담당하는 부서다.
이 전 부회장 일가가 소유한 서울 강남의 엘앤비타워 실소유주인 엘엔비인베스트먼트가 집중 조사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들의 지분 취득 과정에서 증여세 탈루가 있었는지 재산 형성 과정에서 불법적인 부분이 있었는지 등을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차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삼성SDS 주식 취득과 관련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학수 전 부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과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등을 기획, 총괄했다. 그밖에 이 전 부회장의 재산이 수조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 재산이 삼성 오너일가의 차명 재산이라는 의혹도 이번 세무조사에서 일부 확인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책임은 내가 진다” 최지성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삼성의 ‘전략통’이었다. 미래전략실장에 오른 것도 이건희 회장이 그의 TV와 휴대폰 등에서 보여준 추진력과 실행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잇따랐다. 당시 최 전 실장은 빠른 의사 결정과 공격적인 경영으로 TV, 스마트폰 사업을 세계 1위로 견인하는 등 삼성의 간판 CEO였다.
마케팅 전문가로 통하던 최 전 실장은 적자에 허덕이던 삼성전자 TV 부문을 2006년 보르도 TV를 통해 세계 1위로 올려놨다. 2007년에는 휴대전화 부문을 맡아 노키아를 제치고 삼성 휴대폰을 1위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2012년 미래전략실장이 됐다. 비서실-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로 이름이 바뀌어온 삼성 컨트롤타워의 수장이자 ‘2인자’가 된 것이다.
이학수 전 부회장이 ‘보좌형’이라면, 최지성 전 실장은 ‘관리형’으로 표현된다. 삼성 전현직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는 ‘실세 중의 실세’라는 기존의 평가와 달리 실권은 쥐지 못했다. 다만 그룹과 총수 일가에 대한 관리 능력이 탁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직후 혼란에 빠졌던 삼성이 빠르게 안정화되고, 2015년 초 굵직한 빅딜(방산, 화학 부문 매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최 전 실장이 발빠르게 움직여 재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그는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자 수시로 병실을 찾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세대교체’가 되는 과도기에서 최 전 실장이 삼성 살림을 챙겼던 셈이다. 이건희 회장이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삼성의 사업재편이라는 굵직한 작업 착수를 이재용 부회장 홀로 결정할 수 없었고, 다만 이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사람이 있어야하는데 그게 최지성 전 실장이었다는 해석이다. 실제 세간에서 그를 본격적으로 ‘이재용의 가정교사’ ‘멘토’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사진=고성준 기자
다만 최 전 실장은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최순실의 딸 정유라 씨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수사선상에 오르자 이 해석을 십분 활용했다. 최 전 실장이 이재용 부회장보다 더 높은 의사결정권자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친 것이다. 실제로 그는 특검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책임은 내가 진다”고 밝힌바 있다.
당시 특검이 작성한 조서에 따르면 최 전 실장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건희 회장을 대리해 삼성그룹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며 ”이재용 부회장과는 중요 현안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관계로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관계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희 회장이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이 부회장과 나의 관계가 좀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후 법정에서도 최 전 실장 측은 정유라 지원 방식과 규모 등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며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내가 지고, 이 부회장은 책임지지 않게 할 생각으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삼성 측 변호인도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은 어떠한 문제가 발생해도 최 전 실장이 책임지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부연했다.
법원은 최 전 실장에 대해 국정농단세력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1·2심에서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의 최종판결만 남은 상황이다. 최근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핵심 인물로도 꼽히고 있다.
# ‘미니 미전실’ 수장 정현호
현재 삼성의 컨트롤타워는 이학수·최지성 전 부회장이 2인자였던 당시와는 크게 다르다. 강력한 전권을 가지고 계열사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옅어졌다. 국정농단 사건 이후로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 미전실 후신 격인 사업지원TF가 신설돼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사장이 이 부서를 이끌고 있다. 미전실 해체 당시 사장단이 모두 물러났지만, 그 가운데 유일하게 정 사장만 이 컨트롤타워로 복귀했다. 그는 비서실은 물론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을 두루 거쳤다. 사실상 이학수·최지성 전 부회장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온 삼성의 2인자인 셈이다.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사장. 사진=일요신문 DB
정 사장의 사업지원TF 사장 발령은 최근까지도 ‘이재용 부회장과의 특별한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게 중론이었다. 1990년대 정 사장과 이 부회장이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유학했고, 이때 정 사장이 이 부회장의 뒷바라지를 하며 인연을 맺은 최측근이라는 내용이다. 다만 삼성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삼성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하버드에서 공부하기 시작한 건 1995년 하반기부터고, 정 사장은 1993년부터 공부를 시작해 1995년 하반기가 시작될 때 귀국했다. 이들이 하버드에서 만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정현호 사장도 수사 대상에 올려 놓고 있다. 지난 6월엔 정 사장을 소환해 17시간 동안 조사했다. 삼성바이오가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 관련 자료를 은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다. 증거 인멸에 가담한 혐의로 사업지원TF 김 아무개 부사장 등 삼성 임직원 8명이 이미 구속된 상태였다. 당시 검찰은 정 사장이 증거 인멸 작업을 총괄한 것으로 의심했다.
정 사장은 이날 증거 인멸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도 현재까지 정 사장에 대해 구속영장 등은 청구하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검찰이 본격적으로 회계사기 의혹에 대해 속도를 높이고 있는 만큼 추가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만약 검찰의 회계사기와 관련한 수사의 칼끝이 정 사장을 겨냥할 경우 다음 수사 대상은 이재용 부회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