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경상남도 밀양의 시골 마을에서 출생 2~3일밖에 되지 않은 신생아가 유기된 채 발견됐다. 탯줄이 채 떨어지지 않은 신생아는 분홍 담요에 싸여 심 할머니의 집 헛간에 있었다. 오물과 볏짚이 아무렇게나 엉켜 붙어 관리가 되지 않던 헛간엔 아이와 함께 태반과 양수의 흔적도 있었다. 마치 누군가 헛간에서 아이를 출산한 듯 보였다.
지난 11일 경상남도 밀양의 한 시골마을에서 신생아가 유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가 발견된 장소는 79세 할머니가 혼자사는 집 헛간이었다. 붉은 원이 아이가 발견된 위치다. 사진=박현광 기자
모두를 미궁에 빠트렸던 사건의 범인이 7월 25일 경찰에 검거됐다. 40대 여성 A 씨는 지난 9일 오후 6시쯤 아이를 자신의 집에서 출산한 뒤 다음날 오전 10시 30분경 심 할머니 집 헛간에 유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25일 오후 A 씨를 검거한 뒤 늦은 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고 DNA 일치 판정을 받았다. A 씨는 “여러 사정상 아기를 양육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심 할머니와 알고 지내던 사이고, 업무상 심 할머니 집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다.
경찰은 진범을 잡기까지 난항을 겪었다. 유기된 아이가 발견된 지 이틀 후인 지난 13일 자신을 아이의 친모라 주장하는 또 다른 40대 여성 B 씨가 경찰에 붙잡혔기 때문이다. 국과수의 유전자 DNA 감식 결과 불일치 판정이 나와 B 씨는 친모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B 씨는 복대를 차고 학교를 가지 않는 10대 딸의 소행이라 생각해 대신 허위 자백했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B 씨의 10대 딸 유전자 감식을 했지만 10대 딸 또한 신생아 친모가 아니었다. 밀양 경찰은 세간의 이목이 사건에 집중되자 7월 18일 30여 명의 병력을 투입해 사건 재수사에 들어갔다.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던 내이동 신촌마을은 이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신촌마을은 총 가구 수가 30동 정도이며 주민 대부분이 70~80대 노인이다. 마을에 40대가 없다보니 누구의 소행인지를 두고 주민들도 답답할 따름이었다. 이런 이유로 주변 외국인노동자의 소행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밀양엔 깨와 깻잎 등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많다. 일꾼 대부분이 베트남, 중국, 태국 등지에서 유입된 젊은 외국인이다.
사건이 발생한 신촌마을에서 100미터쯤 떨이진 곳에도 깻잎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창 일을 하고 있었다. 사진=박현광 기자
마을 사람들은 “여기는 젊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아이가 귀하다보니 (일반적으로) 키우려고 하지 버린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신경을 곤두세웠던 사람은 아이를 처음 발견한 심 할머니다. 심 할머니는 범인을 남자로 추정하는 동시에 공범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처음 발견될 당시 쪼그라든 탯줄과 태반 상태로 봤을 때 친모가 당일 출산한 걸로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처음 보내진 창원의 한 종합병원 전문의도 아이가 출생 2~3일 정도 됐다고 판단했다. 심 할머니는 처음부터 누군가가 야심한 시각에 출산된 아이를 유기했다고 판단을 했는데, 여자 혼자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심 할머니는 마을에서 일찍부터 대문을 걸어 잠기로 유명하다. 오후 5~6시만 되면 문을 잠그고 다음날까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양쪽 무릎 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밤에 범행이 이뤄졌다면 대문을 넘어야 하는데, 20대 성인 남자에게도 버거운 높이였다. 발 디딜 곳도 없거니와 대문 안 쪽엔 나무 장작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어 착지하기 쉽지 않다. 불과 하루 전에 아이를 낳은 산모가 감행하기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경찰이 파악한 범행 시각은 10일 오전 10시 30분경이다. 심 할머니는 새벽 6시 30분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난다.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요양보호사가 집안일을 도와주고 말동무도 돼준다. 그 후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바로 문을 잠근다. 경찰에 따르면 요양보호사는 오전 9시 30분경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때 헛간을 살폈고, 범행이 이뤄지는 시각에 30~40분간 자리를 비웠다가 심 할머니 집으로 돌아와 귀가하던 오전 11시에도 유기된 아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심 할머니 또한 산책 나갈 당시 아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심 아무개 할머니는 오후 5~6시께 항상 문을 잠근다. 사건 당일에도 대문은 잠겨있었다. 심 할머니는 한 때 “여자가 아닌 남자가 한 짓”이라고 봤다. 사진=박현광 기자
결국 아이는 비가 내리던 날 20시간가량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음식물쓰레기가 버려진 헛간에 방치된 셈이다. 아이는 다음날 아침 6시 30분쯤 심 할머니에 의해 발견됐다.
사건 재수사 8일 만에 진범이 잡히면서 경찰은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마을로 통하는 다섯 갈래 길 중 주변 세 갈래 길을 비추는 CCTV가 존재하지만 그 중 일부는 보관기간이 10일밖에 되지 않는다. 마을 100미터 근방에 아파트 단지가 구축 중이라 블랙박스가 달린 공사 인부의 차가 마을을 둘러 주차돼 있지만 경찰은 이를 초기에 확보하지 못하면서 수사가 길어졌다.
경찰은 친모이자 유기범인 A 씨를 붙잡았지만 유기를 도운 공범을 밝혀내야 할 과제를 남겨뒀다. 경찰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범행 방법과 공범 여부는 아직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