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전경. 사진 박은숙 기자.
21대 총선을 관통하는 관전 포인트는 ‘총선 물갈이·거물급 귀환·프레임 전쟁’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른바 ‘새 피 수혈론’은 여야 총선 승리의 핵심 방정식이다. 공천 개혁의 명분을 쥔 쪽은 스윙보터(부동층)를 잡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보수든 진보든 인적쇄신 카드를 쥔 쪽이 중도층을 포섭한다는 얘기다. 여야의 물갈이는 자연스럽게 총선 발 정계개편으로 이어진다.
거물급의 귀환 여부는 총선 격전지인 수도권과 PK(부산·울산·경남)의 판을 뒤흔든다. ‘거물급 귀환 vs 자객 공천’의 맞짱 승부도 펼쳐진다. 아베 발 나비효과로 촉발한 ‘친일 vs 반일’ 프레임 전쟁은 내년 총선 때까지 여의도를 후폭풍으로 몰아넣을 것으로 보인다. 익숙한 ‘정권 심판’ 프레임도 변수다. ‘황교안 선수교체론’에 시달리는 자유한국당은 우파 총결집인 ‘반문(반문재인) 연대’에 나섰다. 국면전환을 통해 9회 말 투아웃 역전 홈런을 노리겠다는 의도다.
이 중 총선 전쟁의 불을 댕길 변수는 단연 ‘물갈이’다. 여당과 제1야당은 공천 룰 작업을 통해 이미 총선 물갈이에 시동을 걸었다. 여의도에 공공연히 떠돈 ‘살생부 괴담’도 하반기 정국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오는 8월 중폭 이상의 개각에 나서는 여당도 총선 물갈이에 방점을 찍었다. ‘총선 불출마 중진 의원 입각→친문계 의원 공천→친정 체제 강화’ 등을 깐 ‘다중 포석’인 셈이다. 다만 7월 말 들어 이낙연 국무총리 등의 유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예상보다 개각 폭이 다소 줄어들 수는 있다.
여당발 총선 물갈이의 두 축은 ‘친노(친노무현)계 좌장’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진문 감별사’로 불리는 양정철 민주정책연구원장이다. 이 대표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만큼, 중진 물갈이의 명분을 꽉 틀어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복심인 양 원장은 지난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신진 인사 영입에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의 현역 물갈이 비율은 30%를 웃돌았다. 당 안팎에선 “두 사람이 지나만 가도 찬바람이 분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 대표는 당 일부 의원들이 만나 달라고 요청해도 이를 고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1야당도 마찬가지다. 한국당 신정치혁신특별위원장인 신상진 의원은 “현역 물갈이 폭이 커야 한다”며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위한 판 깔기에 나섰다. 한국당은 ‘정치 신인 50%·청년 40%·여성 30%(이상 최대)’의 가산점을 주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의 한 의원은 “이 정도의 가산점이면 곳곳에서 뒤집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의 20대 공천의 현역 물갈이 비율은 33.3%에 달했다.
문제는 ‘공천 혁신’과 ‘공천 학살’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이다. 현역 교체가 새 피 수혈이 될지, 인위적인 물갈이가 될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민주당 중진 의원들이 ‘용퇴 거부’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런 까닭과 무관치 않다. 6선의 전직 국회의장인 정세균 의원은 차기 총선 출마로 바짝 다가섰다. 6선의 이석현 의원과 5선의 이종걸 의원 등도 총선 출마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반면 초선 경제통인 제윤경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성수·이용득·최운열 의원 등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이들 의원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전직 보좌관은 “여의도 생활에 염증을 느낀 거 같다”며 “초선 의원들이 대거 불출마하는 상황에서 중진급이 용퇴를 거부할 경우 민주당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대 총선에서 제1당을 내준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그때를 능가하는 ‘옥새파동’이나 ‘진박(진짜 박근혜) 논란’은 없겠지만, 공천 과정에서 내부 역학구도를 둘러싼 계파 간 전쟁은 필연이다. 분당 위기에 처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신당 창당 후 같은 과정을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거물급 귀환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권에선 한때 이낙연 국무총리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트리오 출격에 군불을 땠다. 하지만 조 전 수석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사실상 내정됐다. 서울 종로 출마설이 나돌았던 이 총리는 최근 유임설에 휩싸였다. 이 경우 임 전 실장 종로 공천을 놓고 현역인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임 전 실장의 종로 출마 및 본선 생환 여부에 따라 ‘문재인 사람들’의 희비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한국당도 거물급 영입에 허덕이고 있다. 현재 확정된 인사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정도다. 한국당 ‘자객 공천 1호’인 오 전 시장이 추미애 민주당 전 대표 지역인 서울 광진을에 출격한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대구·경북(TK) 지부를 발족하며 지역 맹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험지로 출마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두 번의 경남도지사와 한 번의 대선 후보를 지냈던 홍준표 전 대표도 안정권인 TK로 방향을 틀었다.
반면 출마 의사를 완곡히 거절한 인사도 있다. 국민검사로 인지도가 높은 안대희 전 대법관이 대표적이다. 한국당은 안 전 대법관의 PK 출마에 공을 들였지만, 안 전 대법관은 “총선에 관심이 없다”고 거절한 상태다. ‘보수 발 세대교체론’을 이끌 김태호 전 의원은 로키 행보 중이다. 다만 당은 ‘삼고초려’해서라도 PK에 출격시키겠다는 입장이다. PK에서 내리 6선을 한 김무성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거대 양당을 제외한 타 정당 사정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두 동강이 난 바른미래당은 오는 9월 복귀가 유력한 안철수 전 의원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처지다. 손학규 대표의 리더십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안철수 역할론’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하지만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안 전 의원도 상처 날 대로 상처 난 만큼, 파괴력이 예전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에 같은 당 이태규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 ‘안철수 9월 귀국설’에 대해 “누군가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낭설”이라며 “(안 전 의원 귀국의 전제조건은) 당의 리더십 문제의 정리 여부”라고 잘라 말했다. 바른미래당의 총선 운명은 안철수 귀국보다는 ‘손학규 퇴진’에 달렸다는 얘기다. 바른정당의 최종 운명은 귀국하는 안 전 의원이 유승민계와 손잡고 한국당과 보수대연합에 나서느냐, 제3지대론을 통한 자강론을 설파하느냐에 따라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 정국의 알파(처음)와 오메가(끝)를 장식할 ‘프레임 전쟁’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만에 하나 여야의 인재 영입이 지지부진할 경우 인물보다는 구도 싸움이 총선 판을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대선과는 달리, 회고적 투표 성향이 강한 총선은 인물보다는 구도 싸움에 가깝다. 여야의 기본 프레임 구도는 ‘적폐 청산 vs 경제무능 심판’이다. 여기엔 전·현직 대통령인 ‘문재인 vs 박근혜’ 구도가 깔렸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석방 문제 등이 ‘샤이 보수(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은 보수층)’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수출 규제 국면에서 급부상한 ‘친일 vs 반일’ 프레임도 총선 정국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여권의 강경 대응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청 지지율이 동반 급상승했다. 반면 친일 프레임에 역풍을 맞은 한국당 지지율은 급락했다. 선수교체론에 시달리는 황 대표의 ‘리더십 위기론’에는 기름을 부었다. 보수 야당 관계자는 “친일 프레임과 반공 프레임이 다른 게 뭐냐”고 반발했지만, 이를 타개할 마땅한 국면전환 카드는 없는 상태다. 한 분석가는 “한국당이 친일 프레임에 갇힐 경우 수도권 122석(20대 총선 기준) 중 상당 부분이 날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