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21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룰의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이들이 그리는 혁신은 낭만적인 허상으로 끝날까. 사진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희망’이라고 쓰여진 백보드. 박은숙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공천룰은 지난 5월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쳤다. 내년 총선 공천과 경선의 게임 룰이 정해진 셈이다. 민주당은 공천룰을 통해 ‘도덕성’을 강조했다. 병역기피‧음주운전‧세금탈루‧성범죄 등 사회적 지탄을 받는 중대 비리자에 대한 부적격 심사 근거 조항을 신설한 것. 도덕성 검증 기준이 추가되며 100점 만점의 심사 배점기준 중 도덕성이 15점을 차지하게 됐다.
아울러 ‘선출직 공직자가 중도사퇴로 보궐선거를 유발한 경우 감산 10%에서 25%로 강화’라는 내용도 강조했다. 선출직 공직자들이 총선에 출마하고 현역 단체장직을 중도 사퇴하면 행정 공백이 발생한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현행 10% 감점이던 감산 기준이 25% 감점으로 확대된 것은 민주당 내에서도 파격적이라고 해석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건 그냥 나오지 말란 소리다. 출마를 염두했던 구청장들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21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을 비롯해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선출직 공직자 중도사퇴 경선 감산’을 두고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당초 30% 감산으로 논의되던 기준이 25%로 하향된 것은 이들의 항의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음주운전 관련 기준 강화’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윤창호법’이 시행되는 동시에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에 대해선 ‘선거일부터 15년 이내 총 3회, 최근 10년 이내 2회 이상 부적격’, ‘윤창호법 시행 이후(19.12.18) 음주운전 면허 취소된 경우 원천배제’라는 항목을 강조했다. 민주당 5명의 현역 의원이 음주운전 전력이 있고 그 중 한 명은 2건이다. 이들 모두 기준에 포함되진 않지만, 국민 정서에 따라 경선 과정에서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처럼 민주당 공천룰을 두고 당 내 큰 반발이나 특이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국당의 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는 지난 7월 21일 가산‧감산 비율 등의 내용이 담긴 공천룰을 당 지도부에 보고했다. 이 공천안은 향후 공천제도특별위원회 논의와 의원총회 등의 논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논의 시작도 전에 당내 의원들의 반발이 확산되며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제안된 공천룰이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현역들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는 주장이다.
한국당의 공천룰은 신인과 청년(만 45세 이하), 여성에게 각각 50%와 40%의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중징계 및 탈당 이력이 있거나 경선에 불복했던 인사에게는 최대 30%의 감점을 부여한다. 전체적으로 ‘현역 물갈이’로 비춰질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중진들의 반발이 거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한국당에는 ‘복당파’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바른정당 창당 과정에서 당내 비박계 의원들이 탈당한 뒤, 얼마 못가 한국당으로 다시 돌아온 전력이 있다. 신상진 한국당 의원(신정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왜 반발이 크다고 예상하는가’라는 질문에 “오보도 한몫한다. 자세한 내용 없는 보도가 나오다보니 대략적인 것만 보고 반발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답했다.
신 의원은 이어 “게다가 이 공천룰에는 부대조건이란 게 있다. (복당파 의원들은) 다 예외다. 보도 과정에서 부대조건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큰 반발이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 사유로 탈당한 것도 아니고, 당의 방침으로 복당시킨 건데 예외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한국당 중진들은 ‘현역 물갈이’를 우려한다. 4선의 주호영 의원은 “시스템에 맞게, 그리고 공정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 잘못되면 지난 20대 총선처럼 선거를 앞두고 큰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며 “공정하고 공평하게 룰을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4선의 중진 의원도 “유권자에게는 양면성이란 게 있다. 무조건 젊은 새 얼굴이라고 좋아할 것 같나? 수도권은 그럴지 몰라도 지방은 전혀 아니다”며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 우리 지역구에 젊은, 새로운 후보를 낸 적이 있었다. 상대(민주당) 후보는 70대 후보였는데도 우리가 졌다. 무조건 젊은 새 얼굴이라고 유권자들이 뽑아주는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응원의 목소리도 있다. 5선인 원유철 의원은 “정치 신인에게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 문호를 개방한다는 차원에서 충분한 기회를 주는 것이 좋고, 우리 당이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김영우 의원도 “우리 당이 면모를 쇄신하고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선 그런 공천룰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어 “(현역에게) 불리하더라도 감수해야 한다. 물론 여태껏 선출직이 선거를 통해 정치를 오래 한다는 것 자체가 불이익을 받아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면서도 “우리 당이 공천 개혁을 통해 변화를 도모하지 않으면 수도권에서는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상진 의원은 “당내 반발은 정말 기우다. 걱정하는 현역 의원들은 아마도 지역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들인 것”이라며 “(정치 신인에게 50%를 더 준다는 것은) 평가 점수에 50점을 더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 점수에 50%를 비율로 더해준다는 것이지 않나. 그 신인이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선수나 아이돌 BTS 정도 되는 강한 신인이라면 모를까, 현역이 불리할 수 없는 구조다. 정상적인 현역이라면 전혀 문제될 것 없다”고 설명했다.
‘복당파는 예외’라는 신 의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당내에는 ‘비박 물갈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한 한국당 당직자는 “탈당한 사람들(복당파)이 (공천룰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더라”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까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제출된 공천안은 최고위원회에 상정돼 의결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당내 반발이 거세지며 이마저도 지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신 의원은 ‘공천룰 거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아니다. 그런 건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의원들이 걱정을 좀…”이라고 우려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