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2016년 8월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겠다며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방안을 내놓은 지 3년, 초대형 IB를 향한 금융사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정작 초대형 IB 반열에 오른 금융사들의 현실은 금융당국의 기대와 조금 다르다. 사진은 초대형 IB 가운데 최초로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한국투자증권 광화문지점 모습. 연합뉴스.
초대형 IB는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의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뜻한다.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 제77조 2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지정 등’에 따라 증권사를 자본규모별(3조 원, 4조 원, 8조 원)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한다. 이 가운데 자본규모 4조 원 이상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단기금융업 별도 인가 신청 자격을 얻는다. 자기자본이 8조 원 이상일 경우에는 종합투자계좌업무가 허용된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 7월 22일 신한금융지주에서 6600억 원을 출자 받아 자기자본 4조 2300만 원을 달성, 초대형 IB로 도약에 성공했다.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서 금융당국에 단기금융업 인가 신청도 가능해졌다.
다른 금융사들의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하나금융투자는 지난해 1조 2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3조 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올라섰다. 마찬가지로 자기자본이 3조 원 이상인 메리츠종금증권은 수익을 통해 자본금을 높여 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미 초대형 IB로 지정된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 대주주 결격사유가 생겨 단기금융업 인가 신청이 불가했으나 올해 하반기 공정위 조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준비가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사들이 몸집을 키워 초대형 IB로 진출하려는 이유는 단기금융업 때문이다. 단기금융업을 인가받으면 해당 증권사는 발행어음 업무를 영위할 수 있다. 한 초대형 IB 관계자는 “발행어음은 대출 관련 업무로 사실 본래 증권사 업무가 아니지만,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으면 발행어음 업무가 가능해진다”며 “증권사는 발행어음을 통해 자금을 끌어와 여러 곳에 투자하며 투자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으면 자기자본의 최대 2배 한도 내에서 만기 1년 이내인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데다 발행 절차도 회사채 등 다른 수단보다 간단하다. 회사채의 경우 이사회 결의를 거쳐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회사채 발행 주관 증권사들은 기관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해야 하지만 발행어음은 이 같은 과정이 필요없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활용 가능한 자금조달 규모가 더 커지고 방법도 쉬워지는 셈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초대형 IB로서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으면 자기자본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가 많아진다”며 “발행 규모를 키워 수익성이 높은 비즈니스를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지주사들 또한 증권업 강화 및 사업영역 확장을 위해 초대형 IB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이 레버리지 비율 산정 시 제외되는 것도 매력적이다. 자기자본 대비 총자산 비율인 ‘레버리지 비율’은 현재 1100% 이내로 제한된다. 증권사는 레버리지 비율이 1100% 이상 될 경우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개선 권고 등의 규제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투자 확대를 위해 레버리지 비율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재무건전성 규제에 속한다.
단기금융업이 규제나 운용 측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까닭은 금융당국의 ‘기업금융 활성화 지원’ 덕분이다. 특히 벤처투자 등 모험자본의 공급을 위해 발행어음 운용에 자유를 줬다. 금융위원회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으며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모험자본 공급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신용공여 등과 관련한 건전성 규제를 재정비”할 목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초대형 IB로 지정된 금융사들의 현황을 들여다보면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28일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발행어음 업무 현황 및 평가’ 자료를 통해 “당초 기대보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가 미흡한 측면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6월 26일 금융감독원이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발행어음 1호·2호 사업자인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이 발행어음으로 약 9조 원가량을 조달했으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두 증권사는 발행어음을 통해 각 5조 2641억 원과 3조 3499억 원을 조달했으나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이내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해 앞의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투자시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 등에 대한 투자에 신중한 부분이 있다”며 “모험자본 투자를 늘리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은 업계에서도 공감하지만, 단기적으로 모험자본 투자를 늘리기는 어려운 만큼 시간을 주고 지켜봐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일본 자금 유출 걱정 금융권 ‘이상 무’ 일본의 경제보복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금융 분야로 보복 조치를 확대할 경우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막상 금융권은 큰 걱정은 하지 않고 있다. 가장 먼저 시선이 쏠리는 곳은 신한금융지주다. 신한금융은 ‘일본 주주’가 핵심이라고 알려진 만큼 일본 정부가 국내에 유입된 일본 자금을 회수할 경우 타격을 볼 것으로 언뜻 예상되기 때문.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기우라고 설명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록 신한금융지주의 핵심 주주들이 재일교포라고는 하지만 일본의 경제보복이 신한금융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예상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들 분위기도 비슷하다. 일본이 자금 회수에 나선다 하더라도 다른 자금조달처가 많은데다 대출 만기 시기가 나뉘어져 있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지만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일본이 갑자기 자금을 회수하려 한다 해도 다른 나라의 엔화나 달러를 빌려와 갚아줘도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