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인 금호산업은 지난 25일 매각주관사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을 통해 자사 보유 지분 31%을 매각한다고 공고했다. 금호산업 보유 지분인 구주와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는 신주를 함께 매각하는 방식이다. 투자자들로부터 인수의향서를 받아 오는 9월까지 인수협상대상 후보군을 추린 뒤 10월 본입찰에 나설 예정이다.
국내 2위 항공사 아시아나 인수전이 본궤도에 올랐지만 인수 후보군으로 꼽히는 기업들마다 “인수 의사가 없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인수가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분석부터 아시아나 몸값 낮추기 위한 전략이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연합뉴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이 취득하기 어려운 항공운송 사업면허를 보유한데다 국제선 노선 70여 개를 보유한 글로벌 항공사란 점에서 대기업들이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인수 후보로는 SK, 한화, 애경, CJ, 신세계, GS, 호반건설 등이 거론된다. 이중 밖으로 인수 의사를 내비친 기업은 애경뿐이다.
IB업계에서는 기업들이 실제로는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본입찰까지 아직 시간이 있기에 미리 인수 의사를 내비쳐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주가가 뛰고 인수가가 높아지는 것을 차단하고, 연내 매각이 시급한 금호산업과 산은으로부터 최대한 좋은 옵션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란 분석이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채권단은 부채를 하루 빨리 상환 받아 금융 부담을 완화해야 하고, 금호 측은 매각대금을 금호고속·금호산업에 투입해 부채를 해결해야 한다“며 ”아무래도 팔려는 쪽이 급한 상황이다 보니 매수자들 입장에서 미리 나설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인수 후보로 언급되는 대기업들은 한결같이 “관심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영업이익율이 높은 것도 아니고 부채도 많은데 그걸 감수하고 인수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며 ”가격도 이미 많이 뛰었기에 입찰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화와 CJ, 신세계 등의 관계자들도 “검토해본 적도 없고 입찰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유일하게 인수 의향을 밝힌 애경그룹 관계자는 “인수하겠다는 게 아니라 검토해보겠다는 얘기”라고 강조하며 “투자설명서를 살펴보고 따진 뒤 결정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기업들이 외면하는 까닭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규모가 워낙 큰 탓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9조 7032억 원인데 영업이익은 72억 원에 그친다. 또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전체 항공기 중 리스 항공기는 60%가량으로, 한 해 부담해야 하는 리스 비용이 2조 원이 넘는다. 더욱이 최근 매각 기대감으로 주가가 급등하면서 몸값마저 치솟고 있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공고를 내놓으면서 아시아나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입찰에 어떤 기업들이 참여할지를 두고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인수 후보로 꼽히는 한 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이 가진 자산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고 예상 매각가도 과도하게 높아 (현재로서는) 입찰 흥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이 있다면 간 보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기업들은 관심이 없는데 산은 쪽에서 알짜 매물임을 강조하며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시장평가액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약 2조 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에어부산, 아시아나IDT 등 자회사들을 합해 통째로 매각한다면 가격은 더 높아진다. 일부에서는 금호산업과 채권단의 바람과 달리 아시아나항공이 예상보다 싼 값에 매각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LCC업계 경쟁이 치열한데다 미·중 무역 갈등과 한·일 경제갈등에 따른 물동량·여행객 수요 감소 등으로 항공업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일본 여행객 감소는 항공업계에 직격탄인데다 미·중 무역전쟁과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 인수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박삼구 아들 박세창 ‘삼촌한텐 안 팔아’ 선긋기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남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금호석유화학(금호석화)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참여 불가를 주장하면서 그 속내에 관심이 쏠린다. 잠잠해진 줄 알았던 금호가(家) 갈등이 실은 계속되고 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박세창 사장은 지난 25일 아시아나항공 매각 공고를 낸 뒤 ”이번 계약은 금호아시아나그룹 및 특수관계자가 어떤 형태로든 참여할 계획이 없다“며 ”금호석유화학도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금호석화는 아시아나항공 지분 11.12%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이 때문에 매각 공고가 나기 전부터 인수전 참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금호석화는 중립을 지켜왔다. 이런 상황에서 박 사장이 금호석화 참여 불가를 공개 발언한 이유는 박삼구 전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간 갈등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금호석화가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되면 박삼구 전 회장과 박세창 사장 부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박 사장에 사전에 금호석화의 인수전 참여를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금호석화가 인수전에 참여한다는 언급도 없었는데, 박세창 사장이 직접 나서서 선을 긋는 걸 보면 아버지인 박삼구 전 회장과 박찬구 회장 간 갈등이 여전한 게 아닌가 싶다”고 봤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