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갑 전 SK 와이번스 수석코치. 사진=이영미 기자
[일요신문] 1996년 현대 유니콘스 수비 코치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코치, 감독대행, 2군 감독, 수석코치 등을 두루 맡았던 김성갑(57) 전 SK 수석코치. 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가수 겸 탤런트 유이의 아빠로 더 유명한 그는 현재 ‘백수’ 신세다. 지난해 트레이 힐만 감독이 SK와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했을 때 김 전 코치도 힐만의 뒤를 따라 같이 퇴장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마이애미 말린스 코치를 맡고 있는 힐만을 만나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을 찾았다. 마이애미가 다저스와의 원정 경기를 위해 LA로 향한 일정에 맞춰 미국 여정을 계획한 것이다. 7월 20일(한국시간) 힐만 코치와 감동적인 만남을 가진 그는 21일, 필드에서 훈련을 마치고 팬들에게 사인해 주던 류현진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김 전 코치는 딸 유이한테 보내줘야 한다면서 류현진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1985년 삼성 라이온즈 입단 후 1995년 은퇴, 1996년 코치 생활 후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야구 인생. 모처럼 휴식을 취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김 전 코치와 다저스타디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7월 20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저스타디움에서 재회한 김성갑 전 SK 코치와 트레이 힐만 전 SK 감독(현 마이애미 말린스 코치). 사진=이영미 기자
–김성갑 (전)코치를 다저스타디움에서 만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나도 TV로만 보던 다저스타디움을 방문하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 코치를 맡고 있을 때는 이런 시간, 기회는 꿈도 꿀 수 없잖아요. 한국과 스케일이 다른 메이저리그 구장, 야구 경기, 또 (류)현진이가 선발로 등판한 경기도 직접 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이번 미국 여정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 수비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지금처럼 1년을 통째로 쉬었던 적이 있었나요?
“1998년 IMF 위기로 구단마다 코치 인원을 감축했습니다. 1,2군 합해서 13명 정도가 최대치였죠. 그때 팀을 나오게 되면서 잠시 아마 야구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고등학교 인스트럭터로 활약했거든요. 아마추어 야구의 시스템을 보고 배우는 기회였고 이후 지도자 생활하면서 신인 선수들을 이끄는데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시합 위주로 진행되는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이 의외로 기본기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단순히 경기에 나서는 게 아니라 야구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도 느꼈고요.”
–SK는 아마추어에서 올라온 신인 선수들을 전지훈련에 데려가지 않더라고요. 전지훈련에서 실력을 보여주기보다는 먼저 기본기부터 제대로 다지게 하는 걸 중요시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인들이 전지훈련에 참여할 경우 지도자들한테 인정받으려고 ‘오버 페이스’를 하거든요. 신인들은 머리로만 야구하지 말고 몸으로 야구를 먼저 습득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SK의 신인 프로그램은 굉장히 훌륭한 시스템입니다. 고졸, 대졸 신인 선수들은 무조건 전지훈련에서 제외시켜요. 2군 경기에도 출전시키지 않고 잔류군에서 기본기를 다지고 체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죠. SK는 ‘반짝스타’가 아닌 ‘슈퍼스타’를 만들고 싶어 해요. 선수의 미래를 멀리 보고 장기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는 팀입니다.”
–힐만 전 감독이 2018년 정규시즌이 끝나기 전에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시즌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발표했었어요. 그런데 당시 김 전 코치도 함께 그만두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고요.
“힐만 감독님하고 같이 지낸 시간이 2년여 밖에 안 되지만 우리는 가족이었습니다. 가족 대표가 그만두시겠다고 하는데 자리 욕심난다고 계속 머물 수는 없는 일이죠. 감독님은 당시 미국행을 결정할 때도 가장 먼저 나랑 상의하셨어요.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그만두게 됐다고요. 대표가 떠나면 나도 같이 떠나는 게 후임 지도자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감독님이 코칭스태프를 모아 놓고 거취를 발표했을 때 그 자리에서 나도 시즌 마치면 함께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두 충격을 받았었죠.”
–코치라는 자리는 감독에 따라 보따리를 싸기도, 또 풀기도 합니다. 그런 삶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힐만 감독님처럼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힘들다는 생각할 수가 없어요. 매일 배우는 부분이 정말 많으니까요. 지도자는 신뢰가 있어야 해요. 신뢰가 밑바탕이 되지 않고선 선수들을 이끌어가기가 쉽지 않죠. 그런 점에서 힐만 감독님은 최고의 지도자였습니다.”
–아무래도 국내 지도자들의 지도법은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면이 있을 겁니다. 반면에 힐만 전 감독은 그런 점에서는 차이가 있었을 것이고요.
“연패를 하는 날이면 우스꽝스런 분장을 하고 클럽하우스로 들어가요. 연패했다고 기죽지 말라는 의미였죠. 유쾌하고 재미있는 리더십을 보이면서도 야구 철학이 확고한 분이었어요. 그럼에도 통역을 거쳐서 전하는 대화는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일대일 대화가 되지 않으니 가슴에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도 직접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언어 소통을 제외하고서는 힐만 감독님과 보낸 시간은 제 인생에 가장 인상적인 부분들로 남아 있습니다.”
가수 겸 연기자 유이. 유이는 김성갑 전 SK 코치의 막내딸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이오이미지
–따님이 유명한 연예인입니다. 한때는 ‘유이 아빠’로 불리는 걸 상당히 부담스러워하셨다고요.
“팀 성적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문화에서 딸과 관련된 이야기로 화제를 모으는 건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밖에요. 백수되는 게 좋은 점도 있어요. 이렇게 편하게 딸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웃음).”
–아버지도, 또 따님도 공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야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유이는 다르잖아요. 가족들이 밖에서 식사를 하려 해도 쉽지 않았어요.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터라 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일이 없을 때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더라고요. 살이 찌면 안 되는 직업이니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는 생활도 안타까웠고요. 요즘은 아빠가 백수라서 그런지 집에 자주 옵니다. 내 딸이지만 참으로 속이 깊은 아이에요.”
–따님의 스캔들이 나올 때면 어떻게 대응하는 편인가요.
“난 딸을 믿습니다. 나도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을 때면 딸이 이렇게 말해요. ‘아빠, 나 믿지?’라고요. 그러면 끝납니다. 그동안 두세 차례 스캔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말 결혼까지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면 부모에게 말을 했겠죠.”
딸만 둘이라는 김성갑 전 코치한테 유이는 막내딸이다. 168cm인 김 전 코치와 173cm로 알려진 유이의 신장. 김 전 코치는 “딸은 나 안 닮았어요. 모두 엄마 유전자만 물려받은 것 같아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을 텐데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지도자 생활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세 차례나 경험했어요. 우승 반지도 3개나 갖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 경험을 이어가고 싶어요. 야구로 치면 제 야구 인생은 8이닝까지 마무리된 것 같아요. 9회를 지나 연장 12회까지는 치르고 은퇴하는 게 꿈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