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는 최근 올해 2분기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공개했다. 매출액은 지난해와 견줘 19.6% 늘어난 1조 6303억 원이었지만, 영업이익은 반토막(48.8%) 가까이 줄어든 1283억 원을 기록했다. 당초 증권업계는 올해 네이버 영업이익을 34.68% 감소한 1637억 원을 예상해 왔고, 실적 발표 시점에는 이보다 더 낮췄지만 실제 발표된 수치는 여기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주식시장에서 네이버의 가치는 ‘역주행’을 하고 있다. 실적 발표 직후 지난 7월 25일, 26일 이틀 동안 급등세를 타면서 상승률이 14.17%에 달했다. 26일 장중에는 올해 최고치인 14만 2000원을 찍기도 했다. 실적 발표 직전까지도 목표주가를 낮춰왔던 일부 증권사는 며칠 만에 입장을 선회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집계를 보면, 최근 증권업계의 네이버 목표주가 평균치는 지난 24일 15만 6000원에서 최근 16만 3000원까지 올랐다.
시장의 관심을 끈 건 네이버의 ‘새 플랜’이다. 네이버는 사내 독립기업(CIC) 형태였던 네이버페이를 분사해 ‘네이버파이낸셜 주식회사(가칭)’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분리되는 자회사는 금융 전문 자회사다. 기존 네이버페이가 서비스했던 단순 송금 및 온리인 쇼핑을 통한 결제를 넘어 대출, 보험 등 금융 전반으로 본격 진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임시주주총회의 승인 절차를 거쳐 오는 11월 1일 회사를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증권가에서는 네이버파이낸셜이 향후 네이버의 기업가치가 재평가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네이버가 사내 독립기업(CIC) 형태였던 네이버페이를 분사해 ‘네이버파이낸셜 주식회사(가칭)’를 설립하기로 결정하면서 금융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사진=고성준 기자
# 네이버-미래에셋의 전략적 의기투합
네이버가 금융시장에 던진 출사표와 함께 주목을 받은 건 또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이 미래에셋대우와의 공동경영체제에 가까운 합작회사라는 점이다. 네이버는 네이버파이낸셜 설립과 동시에 미래에셋대우의 5000억 원 투자를 발표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의 자산 총계는 약 6432억 원, 자본총계는 324억 원 수준으로, 기업가치는 약 1조 2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5000억 원을 투자한 미래에셋대우는 최소 40% 이상의 지분율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네이버와 미래에섯은 그동안 자사주를 교환하는 방식 등으로 전략적인 제휴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번 네이버와 미래에셋의 ‘합작’ 배경과 향후 전략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이번에도 양 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네이버는 앞서 국내보다 일본 결제시장에 집중해 왔다. 특히 라인페이의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3258억 원에 달하는 마케팅 비용을 투입했지만 큰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올해 2분기 반토막 난 영업이익의 주요 원인이다. 네이버는 일본 시장에서 서비스를 더욱 확대할 방침이라 국내 금융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실탄이 절실했다.
미래에셋은 토스와 카카오페이와 같은 테크핀 기업들과의 자체적인 경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으면서 최근 증권사 영역까지 보폭을 넓히는 카카오는 경계 대상이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이 직접 핀테크 사업을 하는 것 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카카오와 경쟁할 수 있는 네이버와 손을 잡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미래에셋은 대규모 데이터와 고객을 가진 네이버 플랫폼을 얻었고, 네이버는 대규모 투자금을 확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양 측의 전략적 결정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교감에서 출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박 회장과 이 GIO의 개인적인 관계는 업계에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개인적 관계를 넘어 2016년 네이버의 일본 진출에 신성장펀드 조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시작한 뒤 점차 범위를 넓혀왔다. 이번 결정과 관련해서도 박 회장과 이 GIO가 자주 만나며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같은듯 다른 카카오 vs 네이버
네이버가 테크핀 시장에 뛰어들면서 이미 이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있는 카카오와의 경쟁은 불가피해졌다. IT업계 일각에선 2000년 초반 포털시장 왕좌에 올라 있던 ‘다음(daum)’에 네이버가 도전했던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이후 두 IT공룡이 다른 사업과 관련해 맞붙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카카오는 출발이 빨랐던 만큼 네이버보다 앞서 있다. 카카오의 주력 사업 중 하나인 카카오페이는 이미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평가되고 있다. 4000만 명이 쓰는 카카오톡 메신저를 무기 삼아 빠르게 몸집을 키워 왔다. 최근 가입자 2800만 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엔 거래액 20조 원을 넘어섰다. 기본 서비스인 간편결제를 넘어 공과금 납부, 택배 배송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오프라인 결제 시장에서의 영토 확보 속도도 빠르다.
카카오뱅크에도 힘이 더욱 실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네이버의 네이버파이낸셜 발표 시점에 카카오는 금융위원회의 카카오뱅크의 한도초과보유주주 승인 심사를 통과했다.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에 대한 지분을 34%까지 늘려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게 됐다. 카카오 플랫폼과 금융이 본격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진 셈이다. 최근엔 바로투자증권 인수를 통해 증권업 진출도 시도하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의 구체적인 청사진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커머스’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 플랫폼 구축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제자 수 월 1000만 명, 월 거래액 1조 원에 달하는 네이버페이를 중심으로 다른 서비스를 붙여나가는 방식이다. 판매자를 지원하는 금융상품 판매, 구매자 거래 건수 확대를 위한 금융 혜택 상품 출시 등이 대표적이다.
오프라인 서비스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네이버페이를 통해 식당에서 주문과 결제를 하는 ‘테이블 오더’(가칭)가 대표적이다. 네이버 측은 전국 중소 사업자를 네이버에서 검색해 예약하고 네이버페이로 결제하는 흐름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각에선 네이버와 카카오가 ‘영역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각자 강점이 있는 부분에서 영역 기반을 다지는데 집중할 것이라는 게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온라인쇼핑과 연계된 커머스 사업은 네이버의 최대 강점이다. 카카오톡스토어 규모는 네이버쇼핑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네이버는 쇼핑 판매, 결제를 중심으로 대출, 보험 등을 연계할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카카오는 한국 네이버에겐 없는 초대형 메신저를 보유하고 있다. 카카오톡과 카카오뱅크는 카카오가 추진하는 보험, 대출, 투자 등 금융사업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만 네이버와 카카오가 오프라인 결제부터 금융서비스 전반으로 사업을 확대할 방침인 만큼 장기적으로 양 측이 맞붙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