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올림픽’ 개막이 1년 남짓 남은 상황. 한국에선 ‘올림픽 보이콧’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한·일 갈등의 불똥이 올림픽까지 튈까. 국내에서 ‘2020 도쿄올림픽 보이콧’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한·일 관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동시에 양국의 갈등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뚜렷한 해결책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한·일 갈등의 발단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었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은 “일본 기업은 강제 징용 피해자 1인당 1억 원씩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그간 일본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에 대해 개인 배상 의무가 없다고 주장해왔으나, 이는 정치적인 해석이며 개인 청구권에 적용될 수 없다”는 판결 근거를 제시했다.
한국 대법원 판결에 불복 입장을 나타낸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라는 경제보복 카드를 꺼냈다. 일본 정부는 ‘수출 심사 강화’ 명목으로 2019년 6월 반도체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애칭가스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흔들 수 있는 조치였다.
그러자 한국 내 반일감정 도화선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반일감정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은 강경하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일본 정부는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다’는 취지의 법령 개정안 처리를 예고하고 있다. 백색국가는 ‘첨단 기술, 전자 부품 수출심사 우대 대상’을 일컫는다.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조치다.
이처럼 한·일 양국의 갈등 국면은 쌍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국내 반일감정은 점점 격화되는 상황이다. 그 가운데 일각에선 “2020년 열릴 예정인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앞 검문소. 사진=연합뉴스
7월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2020 도쿄올림픽 보이콧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 왔다. 7월 30일 오후 3시 기준 8428명의 국민이 청원에 동의했다. 이 외에도 ‘도쿄올림픽 보이콧’을 청원하는 게시글은 총 154건에 달한다.
정치권에서도 도쿄올림픽의 정당성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새어 나왔다. 7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일본경제침략대책 특별위위원장은 “일본은 평화 올림픽을 개최할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위원장은 “도쿄 올림픽이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과거사에 대한 인정과 진솔한 사과가 없는 일본에 올림픽 개최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일본경제침략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인 김민석 전 민주연구원장은 “안타깝게도 도쿄 올림픽이 아베 정권의 ‘평화 헌법을 깨는 도구’로 이용되기 시작했다고 본다”면서 “도쿄올림픽에 가지도, 보지도, 먹지도, 사지도 말자는 불매운동이 세계적으로 발전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2011년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의 영향권 아래서 경기를 펼친다는 점 역시 우려를 사고 있다. 도쿄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하는 이들의 또 다른 근거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후쿠시마에서 올림픽 성화봉송을 시작하기로 계획해 놓았다. 올림픽 야구 경기는 후쿠시마 아즈마 구장에서 열릴 전망이다. 한편 축구 경기는 후쿠시마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미야기에서 진행된다.
이뿐 아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후쿠시마 등 원전 사고 피해지역에서 생산한 식자재를 올림픽에서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를 두고, 도쿄올림픽 전반에 걸쳐 ‘안전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도쿄에서도 방사능 흙이 검출됐다’는 측정 결과가 공개되면서 도쿄올림픽 보이콧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2020 도쿄올림픽 보이콧’이 실현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을 전망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7월 30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도쿄올림픽 보이콧과 관련해 논의한 내용은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보이콧은 대한체육회나 선수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서 ”선수들은 올림픽을 바라보고 4년에서 8년을 준비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 보이콧을 대한체육회가 성급하게 논의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체육계 복수 관계자는 “도쿄올림픽 보이콧 실현 가능성은 굉장히 낮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체육계 관계자 A 씨는 “체육인 입장에서 올림픽은 4년 동안의 노력의 결실을 맺는 이벤트”라면서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달려온 선수들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올림픽 보이콧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A 씨는 이어 “올림픽 헌장은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약 정치적 사유로 한국이 도쿄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한다면, 그 결정은 국제적인 지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올림픽에 불참한 것은 냉전시대에 열린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이 유일하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당시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 장면. 한국과 북한 선수단은 ‘2020 도쿄 올림픽’ 공동입장 및 단일팀 구성에 대한 승인을 IOC로부터 받은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만약 한국이 보이콧한다면,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떄 남·북 선수단의 공동 입장은 무산될 전망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3월 26일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을 승인한 바 있다.
당시 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도쿄 올림픽 개회식에서 한국과 북한 선수단이 공동 입장하고, 본경기에서 단일팀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 승인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북한은 여자 농구, 여자 필드하키, 유도 혼성 단체전, 조정 등 종목에서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한국과 북한의 올림픽 정상 출전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편 7월 30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를 통해 “모처럼 아시아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는데 거기에 당 차원에서 반대하거나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여당 내 일각에서 감지되는 ‘도쿄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을 일축한 것이다. 이 대표는 “경제 대책은 경제 대책대로 대응해야 한다. 외교는 외교대로, 스포츠·문화는 스포츠·문화대로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9년 여름, 한국 사회는 ‘반일 감정’으로 뜨겁다. ‘2020 도쿄올림픽’이란 빅 이벤트를 1년가량 앞둔 시점에서 ‘올림픽 보이콧’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도쿄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다만, 변수는 여전히 존재한다. 향후 한·일 갈등 국면에 따라 ‘도쿄올림픽 보이콧’과 관련한 목소리가 더욱 거세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