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열린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폐회식.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7월 28일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는 193개국 선수 7266명이 출전한 대규모 대회였다. 하지만 대회 성과엔 물음표가 달렸다. 대회 기간 내내 사건·사고가 범람한 까닭이다.
첫 사건은 대회 개막 사흘째였던 7월 14일 터졌다. 일본인 30대 남성 A 씨가 광주 광산구 남부대학교 수구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신체를 불법 촬영하는 사건이 터졌다. A 씨는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경기 중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7월 2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린 남자 배영 100m 예선에서 스타트 장비 불량으로 두 선수가 ‘나홀로 레이스’를 펼친 것.
해프닝의 중심에 선 건 이탈리아 시모네 사비오니와 트리니다드토바고 딜런 카터였다. 스타트 장비 고장으로 예선 기록이 측정되지 않은 두 선수는 다시 한번 레이스를 펼쳐야 했다. 사비오니와 카터는 다른 선수들이 예선을 모두 마친 뒤 각각 8, 9조에 편성돼 ‘나홀로 레이스’를 펼쳤다. ‘헛심 빼기’를 한 것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비오니의 ‘나홀로 레이스’ 출발 과정에서 스타트 장비가 또 말썽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사비오니는 예선에서만 스타트를 세 번 하는 우여곡절 끝에 전체 13위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한편 사비오니에 이어 ‘나홀로 레이스’를 펼친 카터는 “세계선수권뿐 아니라 그 어떤 대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7월 27일 새벽 ‘붕괴 사고’가 일어난 광주 서구 치평동 클럽 현장. 사진=연합뉴스
경기장 밖에선 안타까운 사고가 터졌다. 바로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광주 클럽 붕괴 사고’였다. 7월 27일 새벽 광주 서구 치평동에 위치한 클럽에서 복층 구조물이 붕괴되는 참변이 일어났다.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치는 비극이 벌어졌다. 부상자 중 9명은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었다.
대회에 출전한 선수 50여 명이 뒤풀이를 하고 있던 장소에서 대형 사고가 터졌고, 외신은 이 사고를 주목했다. ‘EPA 통신’을 비롯한 세계 각국 외신은 ‘광주 클럽 붕괴 사고’를 비중 있게 다뤘다. 그야말로 ‘국제 망신’이었다.
사고 이후 광주 서구청의 조사 결과, 해당 클럽은 불법 증축 시설인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광주 서구가 이른바 ‘감성주점’이라 불리는 일반음식점에서 춤을 출 수 있게 허용하는 ‘특혜성 조례’를 제정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은 더욱 커졌다.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원봉사자 열정페이 논란도 불거졌다. 일당 18000원을 받는 자원봉사자들의 근무 강도가 상당히 높았던 까닭이다. 이번 대회 자원봉사자들은 오전 7~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2교대로 근무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그 가운데 2교대 근무조차 어려운 부서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련의 사건·사고를 두고, 일각에선 “광주가 과연 ‘세계수영선수권대회’라는 대형 국제 대회를 유치할 만한 준비를 철저히 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체육계 관계자 B 씨는 “이젠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와 관련한 패러다임을 바꿀 때”라고 주장했다. B 씨는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대다수 국제 대회가 ‘속 빈 강정’에 그치고 있다. 국내 스포츠 인프라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실적 챙기기’ 식으로 진행되는 대회가 대다수”라고 지적했다.
B 씨는 이어 “이번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기간 터진 사건·사고들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스타트 장비 오작동 논란’과 ‘광주 클럽 붕괴 사고’를 주목해야 한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건·사고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이런 사고만 일어난다면, 국제대회 유치가 ’국가 이미지 제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4년 9월 19일 인천 아시안게임 개회식 현장. 인천 아시안게임은 인천시에 1조 원이 넘는 빚을 남겼다.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체육인 C 씨는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은 한국이 유치한 국제대회의 맹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C 씨는 이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은 운영 미숙과 관심 부족이란 악재를 극복하지 못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의 경우엔 너무 많은 예산이 투입돼 대회 이후에도 인천시가 1조 원이 넘는 채무에 시달려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C 씨는 “‘대회를 유치했다’는 성과에 집착할 때는 지났다. 이젠 국제대회 유치가 국내 경제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체육 시설 인프라를 운영·유지할 비전이 없다면, 더 이상 ‘속 빈 강정’ 식의 국제 대회 유치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제 스포츠 대회를 유치하는 것이 ‘국위선양’이란 평가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선 그 인식이 바뀌고 있다. 개최 과정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대회가 늘어만 가는 까닭이다.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대회 조직위원회와 지자체의 준비 부족이 촉발한 사건·사고로 몸살을 앓았다. 흥행·홍보 분야에서도 눈에 띌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내에 중계방송된 경기는 드물었고, 대부분 경기는 관중석이 텅 빈 채 진행되기 일쑤였다. 이와 관련해 체육계에선 ‘국제대회 유치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회의 내실과 흥행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 스포츠 대회를 유치할 필요성이 있을까.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폐막한 시점, 다시 한번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주제일지 모른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