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마곡동로 코오롱생명과학 본사. 코오롱생명과학이 간신히 인보사 회수․폐기는 면했지만 여전히 다른 행정 소송들이 남아있는 데다 소액주주들과 환자들의 줄소송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26일 대전지방법원은 코오롱이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상대로 제기한 인보사 회수·폐기 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앞서 코오롱생명과학은 지난 7월 9일 식약처의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 처분, 인보사 임상시험 계획승인 취소 처분, 인보사 의약품 회수·폐기 명령에 불복해 취소 청구와 함께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7월 23일 품목허가 취소 처분 집행정지에 대한 1차 심문기일을 진행한 뒤 본래 지난 7월 29일로 예정했던 심문결정일을 8월로 미룬 바 있다. 코오롱생명과학 관계자는 “식약처가 품목허가 취소와 폐기, 임상 중지 행정처분을 내린 것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없다는 이유였는데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대전지법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과 서울행정법원이 품목허가 취소처분 집행정지 심문결정일을 미룬 건 우리 주장이 논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보사 피해 환자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오킴스 엄태섭 변호사는 “인보사 회수·폐기나 임상시험 관련 소송은 부수적일 뿐 핵심은 품목허가 취소 소송“이라며 ”품목허가 취소가 법원 판결로 확정되면 인보사 폐기 및 임상계획 취소는 수반되기에 해당 소송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일 수 있다”고 봤다. 설대우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도 “인보사 회수·폐기 처분은 품목허가 취소 처분이 결정돼야 유효하다“며 ”품목 허가 취소에 대한 법원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약을 처분하는 건 절차에 맞지 않아 품목허가 취소 소송 판결이 날 때까지 대기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품목허가 취소에 대한 소송에서 코오롱 측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품목허가 취소는 의약품 안전성과 유효성 문제 때문이 아니라 회사 측이 주장했던 연골유래세포가 사실은 신장세포(GP2-293)로 바뀐 데 따른 것이다. 인보사 주성분이 연골세포라는 전제 자체가 사라졌기에 이를 전제로 한 품목허가도 성립될 수 없다는 얘기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식약처가 인보사 품목허가를 취소한 이유는 인보사 세포가 당시 식약처에서 허가한 세포가 아니기 때문이다. 코오롱이 주장하는 약효나 안전성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며 “연골유래세포라고 해서 인보사를 허가해 줬는데 신장유래세포로 밝혀졌으니 취소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당연한 조치로, 법원도 식약처 판단이 잘못됐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굳은 표정의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 이우석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히트바이오로직스 사례를 언급하며 인보사 역시 미 FDA로부터 임상 재개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코오롱생명과학이 시도 중인 미 식품의약국(FDA) 임상 재개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는 지난 12일 제약·바이오 전문기자단과 간담회에서 미국 임상 재개를 자신하며 미 FDA에서 세포가 바뀌어 임상이 중단됐다가 재개된 히트바이오로직스 사례를 강조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히트바이오로직스는 2016년 방광암 세포 치료제에 대한 임상 3상 중 약의 주성분인 방광암 유래 세포가 전립선암 유래 세포란 사실을 뒤늦게 발견해 임상이 중지됐다. 하지만 미 FDA가 오인 확인서와 안전성 등을 검토해 임상을 재개시켜줬다.
업계에서는 그러나 히트바이오로직스 사례는 인보사와 전제 자체가 달라 비교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히트바이오로직스가 개발한 약의 주요 성분은 처음부터 위험성이 높은 암 유래 세포였기에 임상 초기부터 암 세포 사멸 등에 대한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쳤다. 아울러 전립선암 유래세포도 기존 방광암세포와 같은 암 유래 세포로서 인체 내 면역 반응을 활성화하는 백신 역할을 하는 등 기능이 같다는 점에서 임상 재개가 가능했다.
그러나 인보사는 코오롱 측이 주장했던 연골유래세포가 이와는 전혀 다른 종류인 데다 기능도 다르고, 종양을 유발할 가능성까지 내포한 신장유래세포라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는 것. 처음부터 신장유래세포라고 했다면 임상 초기 단계부터 강도 높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등 임상승인 및 품목허가를 위한 절차와 조건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설대우 교수는 “히트바이오로직스도 세포가 중간에 바뀐 건 맞지만 기존과 바뀐 세포 모두 암 유래 세포로 기능이 비슷하고, 처음부터 까다로운 임상 절차를 밟았다는 점에서 큰 대차가 없기에 임상 재개가 가능했다”며 “코오롱은 변경 전후 세포가 아예 기능과 특징이 달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코오롱 측을 둘러싼 소송 규모도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인보사 투약 환자, 소액주주, 보험업계 등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환자들과 주주들이 추가 소송을 준비 중이어서 그 규모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엄태섭 변호사는 “현재 1, 2차 소송에 참여하지 못한 환자 100여 명이 모여 8월 중 3차 추가 소송에 나설 예정“이라며 ”참여 환자들이 늘고 피해 정도가 커지면 배상 규모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인보사를 투여받은 50대 여성 난소암 환자 A 씨가 암 재발로 사망하면서 유족들이 코오롱 측에 소송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소송을 맡은 제일합동법률사무소 최덕현 변호사는 “코오롱티슈진과 코오롱생명과학, B 병원과 인보사 투약을 추천한 담당 의사를 대상으로 손배청구 소장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코오롱 측은 인보사와 자사를 둘러싼 각종 피해 사례와 소송들에 대해 “환자와 주주들의 피해가 없도록 인보사의 안전성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넷째자식 매 맞는데…’ 아빠 이웅열은 두문불출 인보사 사태 중심에 선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여전히 두문불출하고 있다. 강도 높은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자택 가압류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인보사를 ‘넷째 자식’이라고 표현하며 개발의 전 과정을 진두지휘한 만큼 검찰 소환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전 회장은 코오롱그룹 지주회사인 ㈜코오롱 지분 49.74%를 보유하고 있다. 또 인보사를 개발한 코오롱티슈진(17.83%), 인보사를 판매한 코오롱생명과학(14.40%)의 2대 주주다. 그룹 내 막강한 권력으로 성분이 바뀐 사실을 은폐하고 식약처에 허위자료를 제출한 채 코오롱티슈진 상장을 추진해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가 인보사의 미국 임상 3상을 추진 중이던 지난해 11월, 450억 원대 퇴직금을 받고 돌연 사임한 점도 의혹을 키웠다. 인보사 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의 칼끝이 이 전 회장을 겨냥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6월 이 전 회장을 출국금지 조치하고 인보사 허가 과정의 개입과 사실 은폐, 코오롱티슈진 상장에 따른 부당 이득 취득 여부 등을 수사 중이다. 법원도 이 전 회장과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 자택을 가압류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이 전 회장은 고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이 남긴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거래한 혐의로 지난 7월 법정에 서면서 모습을 드러냈으나 인보사에 대한 질문엔 침묵했다. 법조계는 출국금지와 본사 압수수색 등 강도 높은 수사가 이어지는 만큼 핵심 실무진과 임원에 이어 이 전 회장도 조만간 검찰에 소환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출국금지, 자택 압류에 이어 본사 압수수색 통해 어느 정도 자료를 확보한 만큼 검찰이 곧 인보사 사태 핵심 인물을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웅열 전 회장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