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 고검장, 검사장급 인사와 31일 차장, 부장검사급 인사 이후 검찰 내 후폭풍이 거세다.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가장 정확하게 통용되는 검찰이라지만, 7월 31일 중간간부 인사를 낸 지 하루 만에 11명의 검사가 사의를 표할 정도다.
그럼에도 성공한 인사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만큼 ‘메시지’가 뚜렷했다는 평. 예상했던 그대로 메시지를 줘서 ‘사의’를 염두에 뒀던 검사들에게 확실한 사인을 줬다는 얘기다. 이번 인사를 통해 드러난 특징은 크게 2가지. 한 가지는 공안라인 전멸 및 윤석열 총장 산하 특수통 인사들의 대거 발탁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문재인 정부 수사 전력이 있는 검사들의 일괄 좌천이라는 점이다.
# “엄정하게 수사하라”면서 청와대 수사 라인 좌천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엄정하게 임해주길 바란다”며 검찰 수사의 원칙론적인 자세를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 하지만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이번 인사에서 원칙에 입각해 문재인 정부를 수사했던 검사들은 모두 좌천성 인사를 받았다.
7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청와대
7월 31일 단행된 인사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기소한 주진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사법연수원 30기)은 대구지검 안동지청장으로 발령났고, 상관인 권순철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사법연수원 25기)는 서울고검으로 전보됐다. 이에 권 차장검사와 주 부장검사는 사의를 표명했다. 주 부장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을 통해 “환경부 수사 결과는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검찰 지휘라인과 수사팀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을 냈다”며 “검사로서의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졌고 공직관이 흔들려 검찰을 떠나게 됐다”는 글을 남겼다.
특별수사를 맡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은 그동안 서울중앙지검 주요부서 부장검사나, 대검, 법무부 등 주요보직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속 검사가 5명 내외인 안동지청장으로 발령난 것은 명백한 좌천성 인사라는 평이다. 고검장 유력 후보였던 한찬식 전 서울동부지검장(사법연수원 21기)은 고검장 인사에서 배제되며 이미 사의를 표명했다. 이로써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지휘라인 검사들이 모두 검찰을 떠나게 됐다.
손혜원 의원을 부동산 실명법 위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한 지검장이던 권익환 서울남부지검장은 윤 총장의 취임을 앞두고 사표를 냈다. 사진공동취재단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서울중앙을 제외한 4곳 중에서 그래도 남부와 동부가 굵직한 수사를 많이 하는 곳이기에 선호도가 높아 기수 내에서도 나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인데 이번에는 정작 서울북부지검과 서울서부지검 차장검사들이 승진했다. 이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남부와 동부 차장검사가 모두 승진에서 배제되는 것은 드문 경우”라고 평가했다. 실제 노정연 서울서부지검 차장(사법연수원 25기), 최경규 서울북부지검 차장(25기)은 각각 대검 공판송무부장, 청주지검장으로 승진한 반면, 남부지검 1, 2차장검사와 동부지검 차장검사는 모두 인사에서 미끄러졌다.
곧바로 사의를 표한 권순철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사직의 글에서 “양심적 판단에 어긋나게 처리하는 사건이나 결정은 없었기에 언제나 기쁜 마음이었다”며 “인사는 메시지라고 한다, 다른 분들에게는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그래, 수고했어. 충분했어’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린다”고 솔직한 소회를 털어놨다.
환경부 리스트 사건 수사 내막을 잘 아는 한 검찰 관계자는 “향후 정권이 바뀌어도 검찰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원칙적인 입장에서 수사했고 필요할 때는 ‘청와대도 압수수색해야 한다’고 얘기를 했는데 그게 결국 인사에서 발목을 잡은 것 같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총장에게 ‘엄정하게 하라’고 했지만 이번 인사를 보고 그렇게 느끼는 검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번 인사의 메시지는 ‘권력을 겨누면 옷 벗고 나갈 각오해라’인 것 같다”고 단언했다.
# 공안라인도 붕괴, 검사장 승진자 중 공안 라인 0명
나머지 하나의 굵직한 인사 흐름은 ‘공안라인의 전멸’이다. 정권 초부터, 공안라인 출신들이 가던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대검찰청 공안부장 등의 자리에 특수통 검사들을 앉히며 공안라인들을 배제하기 시작했던 검찰.
이번에는 검사장 승진자 중에 공안라인 출신은 단 1명도 없었다. 정권 3년 차, 많은 공안라인 검사들이 기획, 특수 등 다른 수사 영역으로 전공 확대를 선택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공안라인을 역임했던 승진 대상자들은 모두 물을 먹어야 했다.
일요신문 DB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을 지낸 김광수 부산지검 1차장검사(사법연수원 25기), 김병현 서울고검 검사(사법연수원 25기), 수원지검 공안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수사한 최태원 서울고검 송무부장은 사표를 냈다. 김광수 차장검사는 2013년 노무현 정부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을 수사하면서,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등을 불구속 기소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당시 참고인 조사했다. 김병현 검사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여했던 10명의 검사 중 한 명이었고, 최 부장검사는 2013년 수원지검 공안부장일 때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 선동 사건을 수사했던 정통 공안 검사였다.
이번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에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사법연수원 29기)이, 전국 공안라인 수사를 지휘하는 대검찰청 공안부장에 박찬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사법연수원 26기)가 임명됐는데, ‘공안 몰락, 특수 전성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익명의 공안라인 검찰 관계자는 “공안라인 검사들이 하나둘씩 옷을 벗고 나가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공안라인이 이미 붕괴됐었다”며 “이번 인사의 의미는, 일부 공안라인 검사들이 특수 수사 지휘 부서 등으로 ‘라인 숨기기’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도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제 사법연수원 30기 밑으로는 스스로를 공안검사라고 지칭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내 사람 내 곁에’ 윤석열 사단은 대거 요직 이번 인사의 특징 중 하나는, 특수통 중에서도 윤석열 라인으로 불리는 검사들이 대거 핵심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최근 박근혜 국정농단 박영수 특별검사팀 때부터 윤 총장과 손발을 맞춰온 소위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는 검사들이 대거 중용됐다. 신임 검사장으로 승진한 14명도 대다수 특수통이었는데, 윤 총장과 서울중앙지검에서 함께 일한 1~3차장검사는 모두 승진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 등 특수수사를 전면 지휘했던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27기)는 전국 부패범죄 수사를 총괄하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임명됐고, 이두봉 1차장검사(25기)와 박찬호 2차장검사(26기)도 각각 대검 과학수사부장과 공안부장으로 발령났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 등 특수수사를 전면 지휘했던 한동훈(27기)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전국 부패범죄 수사를 총괄하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임명됐다. 최준필 기자 일선에서 수사를 이끈 부장검사들도 대거 영전했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위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신자용 법무부 검찰과장은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로 승진했다. 신봉수 특수1부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자리를 옮기게 됐는데 신 부장과 송 부장은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3차장검사의 지휘를 받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전·현직 고위 법관들에 대한 수사 등을 도맡았던 ‘윤석열 사단’ 멤버들이다. ‘특수통이 전반적으로 좋은 보직을 받았다면, 윤석열 라인은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는 평이 나오는 대목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원래 검찰은 일을 잘하면 서울중앙, 과천(법무부), 서초동(대검찰청)을 오간다고 하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몇몇 검사들이 그런 ‘요직 자리’만 오가는 게 더 심해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내부 일부에서는 ‘수사의 연속성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특수통 검사는 “현재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도 그렇고 윤석열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을 때 벌여놓은 수사들이 규모가 크다보니 연속성을 위해서라도 남아서 지휘하게 되는 것 같다”며 “특수통 출신이 총장이 되다보니 특수 수사의 어려움이나 특징을 더 깊이 감안한 게 인사에 반영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중간 간부 인사에서는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들에 누가 이름을 올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의혹 사건 수사의 바통을 이어받을 신임 3차장검사가 주목받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삼바 분식회계 의혹 사건 수사의 연속성을 위해 이를 맡아왔던 송경호 특수2부장(49·29기)이 물망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코오롱 인보사 사건 등 주요 수사가 산적한 형사부를 지휘하는 1차장검사에도 특수통이 기용될 것이란 전망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했던 신자용 법무부 검찰과장(47·28기)과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넷째아들 정한근 씨를 최근 국내로 송환한 손영배 대검 국제협력단장(47·28기),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신봉수 특수1부장(49·29기)과 양석조 특수3부장(46·29기), 구상엽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45·30기) 등이 주요 보직에 발탁될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여성 검사들의 약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성 검사들이 승진하거나 주요 보직에 더 폭넓게 등용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안부는 공공수사부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개편을 할 예정이다. 공안의 개념을 한정하고 노동과 선거 수사는 별도로 분리해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