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밸류운용과 KB자산운용 등은 최근 SM에 공개서한을 보내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한국밸류운용은 SM 지분 5.05%를 보유해 국민연금(9.96%)과 KB자산운용(7.58%)과 함께 주요주주로 활동하고 있다. 이채원 대표와 KB자산운용의 SM 투자를 담당한 최웅필 매니저는 펀드업계에서 사제지간으로 알려질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발단은 SM이 가수들에게 프로듀싱을 해주는 대가로 이 회장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에 지난 19년간 965억 원을 지급한 사실을 KB자산운용이 문제 삼은 데서 비롯됐다. 최근에는 연간 지급액이 100억 원을 넘고 있다. 두 자산운용사는 지난 6월 SM에 배당성향 30% 실시와 부실 자회사 정리, 라이크기획과 합병 등을 요구했다. SM은 7월 31일까지 상세한 방안을 마련해 답변하겠다고 밝혔다.
SM이 펀드업계의 주주제안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이수함 SM엔터테인먼트 회장(사진)과 펀드업계 ‘제왕’들의 정면대결이 펼쳐질 전망이다. 임준선 기자.
협상이 결렬된 만큼 실력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분율에서는 이 대표 측이 우위에 있지만 승부에서 유리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7월 초 한국밸류운용 계열사인 한국투신운용도 SM 지분 5% 보유신고를 했다. 이채원 대표는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김 부회장이 한국투신운용으로 이 대표에 힘을 실어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지난 6월 5.01% 지분을 보유했다고 신고했다. 5% 이상 지분을 가진 투자자들의 지분율만 무려 32.6%다. 주주총회 특별결의 최소요건(발행주식 3분의 1)에 가깝다. 외국인 지분율 15.8%와 합치면 과반에 육박한다.
이수만 회장 지분율은 19.04%로 운용사 측에 못 미치지만 우호주주로 분류되는 배용준 씨와 중국 알리바바가 각각 4%씩 8%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운용사들의 지분율이 다 알려진 상황에서 공개서한 요구사안을 거절할 정도면 알려지지 않은 우호세력도 일정 수준 확보했다고 봐야 한다. 최소한 이사해임 등 특별결의를 저지할 발행주식 3분의 1 수준은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운용사들의 지분율이 높다고 해서 경영에 개입할 수는 없다. 이들 모두 ‘경영참여 목적 없음’으로 보유신고를 한 상태여서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 목적으로 보유신고를 해야만 임원의 선임·해임·직무정지, 정관변경, 배당결정, 합병·분할, 계약의 체결에 간여할 수 있다. 공모펀드로 보유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꾸기도 쉽지 않다. 애초 펀드 설정 자체가 경영참여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크다.
당장은 회계장부 열람과 회사업무 및 재산상태 검사 등을 요구하는 방법뿐이다. 부당한 내부거래로 기업가치가 훼손됐다면 경영진에 대한 형사고발(횡령·배임)도 가능하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아닌 기업 규모에서 최대주주가 회사와 계약을 통해 거액의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면 지배구조상 새로운 논란이 될 수도 있다. 개인사업자로의 세금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다만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고, 상당 기간 법정다툼이 불가피하다.
내년 주총에서 표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SM은 오는 2020년 3월 7명의 이사 임기가 만료된다. 일부 임원의 선임안건에 운용사들이 반대표를 던지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단순투자 목적의 펀드가 사외이사 등 등기임원 후보를 직접 낼 수는 없지만, 다른 소액주주들을 앞세워 후보를 추천하거나 정관변경을 시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연예기획사의 특성상 이 회장의 역량이 회사 실적에 절대적이니만큼 적극적 경영참여보다 견제 수준에 그칠 것이 유력하다.
SM의 주주친화정책 부족을 이유로 운용사들이 보유주식을 팔 수도 있지만 쉽지 않다. KB자산운용이나 한국밸류운용은 투자기간이 길어 현재 가격에 팔 수만 있다면 손실은 아니지만, 최근 지분을 매입한 한국투신운용이나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주요 주주들의 매물이 쏟아질 경우 주가하락에 따른 손실 위험이 크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