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전을 마치고 운동장을 빠져나가며 팀K리그 세징야(대구)와 이야기 나누는 호날두. 왼쪽 귀의 귀걸이가 눈에 띈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유럽축구연맹(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5회,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 2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 3회, 발롱도르 수상 5회.
현대 축구를 지배해오고 있는 포르투갈 출신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발자취다. 그는 지난 10년간 세계 축구를 리오넬 메시와 함께 양분해 왔다. 국내에서도 가장 팬 층이 두터운 해외 축구선수 중 한 명이었다.
#깨진 환상, 호날두
지난 6월 19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많은 축구 팬들이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전했다. “이탈리아 최고 명문 유벤투스 FC가 내한해 K리그 선발팀과 친선경기를 치른다”고 전한 것이다.
특히 연맹 측은 ‘호날두, 최소 45분 출전 보장’이라는 계약 내용을 공개해 더욱 폭발적인 관심이 쏠렸다. 사전 공개된 티켓 가격은 최고가였던 프리미엄 존이 약 40만 원대, 최저가 3등석이 3만 원 대로 다소 높은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예매 시작 2시간 만에 약 6만 3000여 석이 완판됐다.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선수의 플레이를 눈앞에서 지켜보겠다는 팬들의 기대는 경기 당일 산산조각이 났다. 45분 출장을 약속했던 호날두가 벤치를 지키며 경기장 잔디를 밟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일명 ‘노쇼’ 사태로 불리며 수일이 지났음에도 끊임없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수많은 팬들이 호날두, 유벤투스를 향해 있던 마음을 돌렸다. 온라인에선 새로 구입한 유벤투스 유니폼을 경기 당일 쓰레기통에 버린 ‘인증’이 이어졌고, 중고 장터에선 호날두의 유니폼을 판매하는 글이 즐비했다. 호날두의 우승 및 수상 기록만큼이나 이번 경기를 두고 벌어진 논란거리 또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불안했던 전조
유벤투스의 방한이 발표된 직후 일부 취재진은 이들의 프리시즌 일정부터 확인했다. 7월 21일 토트넘, 24일 인터밀란과 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인터밀란전은 방한 일정과 단 이틀 간격이었다.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피파는 경기를 치른 선수가 48시간 이내에 또 다른 경기에 뛰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싱가포르(토트넘전)-중국 난징(인터밀란전)-서울로 이어지는 여정 또한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유벤투스가 한국 땅을 밟는 순간부터 일이 틀어졌다. 26일 오후 예정됐던 입국 시간보다 2시간 가량 늦게 인천국제공항에 다다랐다. 이번 방한은 입국 당일 저녁 경기를 치르는 일정이었다.
이후 열린 팬미팅 행사 또한 예정과 달랐다. 마찬가지로 2시간 가량 늦어지며 팬과 취재진을 기다리게 만들었고, 결국 슈퍼스타 호날두는 불참했다. 잔루이지 부폰 등이 참석해 10분 내외로 자리를 지켰다.
뒤이어 벌어진 일은 더욱 충격파가 컸다. 경기 시작 시간인 저녁 8시에도 유벤투스 선수단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유벤투스 선수들이 도착하지 않아 워밍업 시간도 미뤄야 했던 팀 K리그 선수들은 뒤늦게 몸을 푼 이후 계속해서 라커룸에서 그들을 기다려야 했다. 유벤투스 선수단을 실은 버스는 약 10분이 지나서야 경기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선수들의 표정은 여유로워 보였다. 이들은 경기장 내에서 워밍업을 실시했고 예정된 시간보다 50분 넘게 늦은 시간에 킥오프를 할 수 있었다.
#호날두의 기만
호날두는 90분 내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선발에서 제외돼 벤치에 앉았고 교체 투입을 위해 워밍업조차 하지 않았다. 버스에 내릴 때부터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축구 경기에서 귀걸이, 반지 등 장신구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때까지 많은 이들은 후반 교체 투입을 예상했다. 선발은 아니었지만 출전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고 있던 호날두였다.
실제 하프타임 이후 다시 벤치에 앉은 호날두는 귀걸이를 뺀 상태였다. 라커룸에서 나오며 경기 유니폼을 손에 쥐고 있었고 벤치에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스타킹을 가위로 자르는 모습을 보였다. 당장이라도 경기에 나설 듯한 모습이었다.
결국 호날두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수만이 경기에 나섰다. 그는 중국이나 싱가포르와는 달리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향한 답례 인사조차 없었다. 후반전 중반부터 관중들은 야유로 실망감을 드러냈다. 경기 막바지에 다다라선 호날두의 최대 라이벌 리오넬 메시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호날두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이탈리아로 돌아간 호날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소와 다름 없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의 소셜 미디어에는 한국팬들이 항의 댓글을 달고 있지만 호날두는 일부 댓글을 삭제하는 등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나부낀 K리그와 유벤투스 엠블럼.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를 마친 유벤투스는 그날 밤 한국을 떠났다. 유벤투스의 불성실한 태도, 호날두 출전 등을 놓고 벌어진 진실 공방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마우리시오 사리 유벤투스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전날 구단 수뇌부와 호날두 휴식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경기를 주최한 스포츠 에이전시 ‘더페스타’ 측의 인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이들은 “후반 10분에서야 사실을 전달 받았다”고 밝혔다.
이튿날 연맹은 발 빠르게 권오갑 총재 이름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주최사 더페스타 측도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호날두 출장이 계약 사항에 포함돼 있음을 강조하며 결장을 경기 시작 전에는 몰랐던 점, 빡빡한 일정에 유벤투스가 동의했던 점 등을 되짚었다.
이후 30일에는 연맹이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논란에 대해 재차 언급했다. 김진형 홍보팀장은 “유벤투스, 아시아축구연맹, 세리에 A 연맹에 항의 서안을 보냈다”고 밝혔다. 또한 “유벤투스 측이 경기 시작 시간을 1시간 미루고 전후반을 각각 40분, 하프타임을 10분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킥오프를 미루지 않으면 경기를 취소하겠다고도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폭로는 더 큰 논란을 낳았다.
뒤이어 유벤투스 측도 성명을 내놨다. 이들은 “호날두는 메디컬 스태프 조언에 따라 휴식했다”면서 이외의 지각 사태 등에 대해서는 책임을 주최 측으로 돌렸다. 최소한의 사과를 바랐던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내용이었다.
연맹은 또다시 반박에 나섰다. 이들은 “유벤투스 주장 대부분이 거짓”이라면서 구단의 책임 있는 사과와 호날두 불출전 사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요구했다. 호날두 결장이 사전에 결정된 일이라면 왜 출전 명단에 포함돼 벤치에 앉아있었냐는 지적이었다.
#집단 소송으로 몰리는 팬들
유벤투스의 불성실한 태도 이외에도 이날 경기는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경기장 A 보드 광고판에는 국내에서 불법으로 분류되는 스포츠 도박 사이트 광고가 버젓이 걸렸다. 프리미엄석 구매 고객에게 제공되는 뷔페는 앉아서 식사할 자리가 제공되지 않았다. 전 국가대표 선수 송종국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에스코트 키즈를 하는 대가로 주최 측이 2000만 원을 요구했다”는 발언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에스코트 키즈 관련 논란은 사실과 달랐던 것으로 일단락되고 있지만 다른 사안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일부 팬들은 집단 소송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몇몇 법무법인과 변호사는 희망자들을 모집하고 나섰다. 인터넷 카페까지 개설된 상황이다. 한 변호사와 일부 팬들은 더페스타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였다.
‘호날두 사태 소송 카페’의 소송을 돕고 있는 김민기 변호사는 “2일 오전 기준으로 카페 가입자 수가 3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들 외에도 법률사무소 명안, 법무법인 오킴스 등을 통해 소송에 참여하는 인원은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최근 한일관계 악화로 국내에 번진 ‘불매운동’을 닮아가고 있다. ‘호날두가 뛰는 경기를 시청하지 않고 호날두 관련 제품을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일본 기업 리스트와 같이 호날두가 직접 사업에 참여하거나 광고 모델로 활동한 제품 리스트가 온라인상에 떠돌고 있는 상황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자본금 1000만 원’ 더페스타는 어떤 회사 이번 ‘호날두 노쇼’ 사태에 대한 분노가 팬들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지며 주최사인 더페스타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높아졌다. 유벤투스 FC라는 세계적 명문 클럽을 초대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팀 K리그와 유벤투스가 맞붙은 7월 26일 당일에도 더페스타는 대형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오르내렸다. 이에 앞서 회사 대표 로빈 장은 언론 인터뷰에 나서 향후 또 다른 명문 구단의 초청 계획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7월 31일 오후, 문이 굳게 잠긴 서울 세곡동 더페스타 사무실.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유벤투스 초청 행사가 최악으로 마무리되며 이들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각종 지각 사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출전’이라는 계약 미이행의 가장 큰 책임은 유벤투스 구단과 호날두 측에 있지만 일을 원활하게 진행시키지 못한 더페스타 측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이들을 향한 민형사 소송도 이어질 전망이다. ‘호날두 출전을 내세워 고가의 입장 티켓을 팔았지만 허위 과장광고였다’는 주장이 주요 골자다. 소송에 참여할 김민기 변호사는 “소송 성공 여부의 관건은 더페스타의 행적”이라면서 “현재 더페스타는 사실상 잠적한 상태다. 티켓 비용을 환불 받을 수 있는 판결문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숨어버린다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 소송 참가자는 “더페스타의 자산을 빠르게 동결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등기에 따르면 더페스타는 지난 2016년 8월 자본금 1000만 원으로 설립된 주식회사다. 의류, 패션악세서리 제조 및 유통업부터 매니지먼트업 및 에이전시 사업까지 10여 가지가 넘는 업종이 ‘목적’으로 명시돼 있다. 로빈 장으로 알려진 장영아 현 대표이사를 비롯해 총 4명이 사내이사로 함께 시작했지만 그 중 2명은 2017년 12월 사임했다. 지난 7월 27일 발표된 더페스타의 입장문은 더페스타에 남은 나머지 1명의 사내이사 이름으로 언론에 송출됐다. 그는 스스로를 ‘팀장’이라고 칭했다. 지난 7월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세곡동에 위치한 더페스타 사무실은 세간에 알려졌듯 굳게 잠겨 있었다. 출입문에 붙은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오전부터 사무실이 비워져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같은 건물 1층 카페 직원은 “그 회사(더페스타) 분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여기에 오지도 않았었고 1층 카페와 윗층으로 올라가는 출입구가 달라 언제 출퇴근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더페스타의 우체통에는 인천과 경기도 지역 미납 고속도로 통행료 청구서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상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