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서울 동대문구 서울보호관찰소 및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에서 열린 전자감독제도 시행 1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일체형 전자발찌를 살펴보고 있다. 최준필 기자
7월 26일 충남 부여 야산에서 살인 전과가 있던 50대 남성 A 씨가 30대 우즈베키스탄 여성 외국인노동자 B 씨를 무참히 살해한 뒤 스스로 목을 맨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A 씨는 노래방 여주인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아 실형을 살다가 2년 전 가석방돼 27년 복역을 마치고 세상에 나왔지만 또 다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진다.
청주보호관찰소에 따르면 A 씨는 24일 오전 아버지 묘소 벌초를 위해 부여로 내려간다는 사실을 보호관찰소에 보고했다. 25일 오후 A 씨는 보호관찰소에 연락해 아버지 묘소를 간다고 전했고, 해가 지기 전 야산을 내려와 또 연락해 벌초를 했지만 하루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26일 사건 당일 오후 A 씨가 연락이 없자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보호관찰소 직원이 A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청주보호관찰소 직원은 논산보호관찰소에 지원을 요청해 인력을 현장에 파견했지만 논산 직원은 수풀이 우거진 지역이라 정확한 사건 위치를 찾지 못했다. 지난해 A 씨 아버지 묘소를 방문해 위치를 알고 있던 청주 직원이 직접 현장에 와서 숨진 A 씨와 B 씨를 발견했다.
상황을 종합했을 때 A 씨는 최소 12시간 이상 보호관찰을 피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평(9.9m²) 남짓한 묘소를 이틀에 걸쳐 벌초한다고 보고한 A 씨는 사건 전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갔지만 보호관찰소 담당 직원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벌초를 핑계로 의심을 피한 A 씨는 아무런 방해 없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청주보호관찰소 관계자는 “A 씨가 평소에 고향인 부여를 종종 갔고, 묘소에 벌초를 간 적도 있어서 크게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보호관찰소의 안일한 대응이 드러났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터무니없는 인력 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7월 기준 우리나라 전자감독 대상자는 3057명(성폭력 2444명, 살인 478명, 미성년자 유괴 13명, 강도 122명)인데 전자감독 전담 인력은 237명에 불과하다. 감독관 한 명당 13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이 가운데 유사시 현장으로 출동할 신속대응팀 인원은 146명으로 한 명당 21명을 담당하는 실정이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테네시주에선 감독관 한 명당 평균 5명, 플로리다주에선 한 명당 평균 8명을 감독한다. 영국은 감독관 한 명당 평균 9명을 전담한다.
우즈베키스탄 여성(35)은 손과 발이 유리 테이프로 묶인 채 나무에 결박된 상태였고, 전자발찌를 찬 남성(54)은 나무에 콘센트 연결선을 걸어 결박한 뒤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사진 오른쪽 나무엔 잘린 콘센트 연결선이 남아 있다. 묶인 손으로 저항하지 못하게 왼쪽 나무에 결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법무부에 전자감독 전문 인력 확충 약속 받은 상황이지만 획기적인 증원이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라며 “사실상 인력 충원 없이는 전자발찌의 실효성은 상당히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특히 성폭행범들에겐 엄격하지만 살인 등 강력범죄범들에겐 그렇지 않은 경향이 분명히 있다”고 설명했다.
A 씨가 2년 전 가석방됐다가 전과 같은 살인 범죄를 저지른 만큼 재소자 가석방 절차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현재 법에선 가석방심사위원회가 심사한 뒤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지만 이 권한을 교도소장(소년교도소장, 구치소장 포함)에 위임할 수 있도록 한다. 반면 현실에선 교도소장이 재소자의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면 가석방심사위원회가 최종 승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석방심사위원회는 위원장인 법무부 차관을 포함 5~9명으로 꾸려진다. 위원 자격은 판사, 검사, 변호사, 법무부소속 공무원이나 교정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한정한다. 범죄자의 심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의사는 없다.
표창원 의원은 “선진국에선 교도소에 정신과 의사를 배치해 재소자의 재발 위험을 정기적, 지속적으로 판단해 가석방을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교도소장이 행정적으로 요건에 맞춰 가석방을 결정하고, 가석방심사위원회가 있지만 사실상 역할을 못한다”며 “강력범죄자 경우 권위에 복종하지만 약자 앞에선 폭력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철거된 고척동 옛 영등포교도소. 박은숙 기자
이어 표 의원은 “출소 후 재소자의 사회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이 거의 전무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수십 년 동안 바뀐 세상에 나온 출소자는 사회에 굉장한 부적응 현상을 보인다”며 “과거 삼청교육대의 법적 근거가 됐던 사회보호법이 위헌 판정이 받으면서 보호감찰에 소극적인 면이 있었다. 이제는 보호감찰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고 사회적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지난해 9월 전자감독제도 시행 10주년 기념행사에서 가석방 비율을 2017년 기준 26,2%(8271명) 수준에서 50%(1만 5796명)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평균 형 집행률도 현행 85% 수준에서 75% 이하로 낮춰 교정시설 과밀수용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