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 리스트 국가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부품·소재·장비 국산화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일본 수출규제의 대안으로 단연 ‘국산화’를 꼽는다. 이를 위해서는 대부분 소재산업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을 지원·육성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강조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부품과 소재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이 영위하고 있는데, 국내 대기업들이 일본 제품에 의존하다 보니 국내 소재산업이 위축되면서 국내 산업 전체가 일본 수출규제에 큰 타격을 입는 것”이라며 “대기업 중심 경제성장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을 육성함으로써 소재·부품·설비 국산화를 이뤄내고 수입처를 다변화한다면 지금의 위기를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어떻게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느냐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정부가 지금 같은 지원 방식을 지속한다면 국산화 과정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 R&D 사업은 대개 각 부처에서 과제 위주로 공모를 내고 기업들을 선정해 지원하는 방식이다. 특정 분야와 주제에 대한 지원 공고를 내면 기업들이 이에 맞춰 연구계획과 성공 가능성 등을 정리해 신청하고, 심사를 거쳐 선정되면 연구비를 지원받아 R&D에 나선다.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다 보니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R&D에 대한 의지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아울러 연구 주제·분야 설정에 기업의 자율성도 떨어지면서 R&D가 일회성에 그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연구 심사 과정에서 성공 여부 등 실적을 따지는 탓에 기업마다 실제 연구가 필요한 주제보다 성과가 나오는 내용을 주제로 제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 R&D 사업이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R&D에 대해서는 기업이 더 잘 파악하고 있는 만큼 연구개발에 투자하면 법인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R&D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긍원 고려대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과 교수는 “높아지는 법인세에 재정 악화로 R&D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이 연구개발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하는데, 그런 혜택도 없고 정부 지원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기업마다 R&D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며 “관이 콘트롤하기보다 기업 스스로 필요 분야에 대해 재정 부담 없이 연구할 수 있도록 R&D에 투자한 만큼 면세 혜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공계 고급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의 필요성도 언급된다. 이긍원 교수는 또 “이공계 연구인력 인건비를 지원한다면 대기업에만 쏠렸던 고급 인력들이 중소기업들에 투입·흡수되면서 일본처럼 전문성·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된 제품을 대기업들이 실제 사용 가능 여부를 점검할 수 있도록 테스트베드를 구축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반도체의 경우 국내 대다수 소재·장비·부품업체들은 정부 R&D 지원으로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실제 양산 라인과 유사한 환경에서 개발 기술을 평가할 수 있는 반도체 연구시설이 없어 국산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기업들이 이를 활용 가능하도록 플랫폼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대규모 테스트베드 구축에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만큼 합리적 수준의 가격에도 정교한 기술 점검이 가능한 테스트 시설을 도입하거나 기업들이 요구하는 테스트 항목들을 정보 유출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긍원 교수는 “국내외 대기업에 납품하려면 최대한 비슷한 생산 환경에서 자사 제품을 테스트해야 하는데, 기업들이 자체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해외 연구소까지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국내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