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세종대학교에서 호사카 유지 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이번에 일본에 밀린다면 일본의 정신적 속국이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일요신문’은 일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의결 다음 날인 8월 3일 일본에서 귀화한 한일관계 전문가 호사카 유지 세종대 정치학과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호사카 교수는 “이번에 한국이 일본에 숙이면 경제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나 정신적 속국이 될 수 있다”며 강공을 주문했다. 또 일본의 금융 보복 가능성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8월 2일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결정했다. 8월 말 시행되기 전 번복될 가능성은 없나.
“8월 2일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은 일본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한 것이다. 각의에서 결정되면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상당히 큰 변화가 없다면 이대로 간다고 봐야 한다.”
― 시행되는 걸 기정사실화해야 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화이트리스트 제외됐을 때 1100여 개 품목이 영향을 받고 그중 150개 품목 정도가 한국 피해가 예상된다. 다만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완전한 수출 규제는 아니다. 90일간 심사하고 문제없으면 한국에 수출된다. 그래서 좀 더 냉정하게 대처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쪽에서 ‘군사 목적 전용’ 혹은 ‘관리 소홀’ 등 트집을 잡을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현재까지도 수출 관리를 잘해왔지만 일본이 트집을 잡을 수 없도록 더욱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본다.”
―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두고 일본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본 무역 분쟁은 7월 반도체 관련 소재 수출을 규제하면서 본격화됐다. 반도체부터 걸고 들어온 건 한국 경제 성장을 막겠다는 의도로 봐야한다. 일본은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경제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1인당 GDP가 격차가 좁혀졌다. 이대로라면 곧 추월당할 수 있다. 그때는 한국 국가경쟁력이 커지게 되고 일본은 이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북한과 협력해 가는 한국의 경제력을 경계해오다 강제징용 판결을 계기로 한국 경제를 망가트리고 남북간 도약을 막겠다는 것이다.”
― 일본도 일정 부분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계산도 담겨 있는 것 아니냐.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아베 정권은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북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지율이 유지되거나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최근 북한은 미국과 북미 회담을 하는 등 평화적인 제스처도 취하고 있어 무작정 ‘북한 때리기’에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아베 정부가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세워지자 한국에 있는 일본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한 적이 있다. 대사 본국 소환은 굉장히 강력한 항의 표시다. 한국에 강경한 자세를 보이자 지지율이 오른 적이 있다. 그때 아베 정부는 ‘한국 때리기’를 하면 지지율이 오른다는 단순한 사고를 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무역 분쟁이 계속되면 일본 경제 문제가 부각 될 수 있다. 현재도 불매 운동의 일환으로 일본 관광객이 급격하게 줄었다. 일본 반도체 소재 업체는 앞으로 5년 이상 수출 규제를 한다면 존재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걸 봤을 때 오히려 아베 정부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 한국에서는 일본 불매 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는지 궁금하다.
“도시에서는 한국 불매 운동을 체감상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한국 관광객이 전체 관광객의 60~80% 이상을 차지하는 곳이 있다. 지방에서는 피해가 늘어나고 있어 불만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 일본 안가기 운동 효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이런 지방도시는 지금까지 한국에 자신들의 도시에 와달라고 광고, 홍보했고 그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데 그게 모두 물거품이 된 거다. 지방부터 일본 정부 압박이 시작되리라 생각한다.”
― 일본 내 여론이 어떤지 궁금하다.
“극우 언론 매체는 한국 패배가 명확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객관적인 매체들은 ‘일본 피해가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불매 운동에 대해서는 보수적 신문에서도 ‘심상치 않다’고 평하고 있다. 불매운동이 일본에 큰 피해가 될 것 같다고 보수 신문에서도 얘기하고 있다.”
― 일본은 한국과 달리 무역 분쟁에 관심 없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사실인가.
“일본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지지 정당이 없는 사람이 여론조사에서 45%에서 60%까지 나온다. 이런 사람들은 투표하러 가지도 않는다. 대략 50%의 국민들은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다. 아베 정부도 관심이 없다. 소극적인 반대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 이들이 많다. 한국은 지지 정당이 없는 사람이 12% 정도밖에 없다. 일본이 이 문제에 관심 없다는 건 그런 배경 때문인 것 같다.”
― 국내에서는 ‘일본 경제가 규모가 훨씬 큰 만큼 우리나라 피해가 더 클 것이다’라는 우려도 있다.
“경제 보복을 감행한 건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7월 3개 반도체 핵심 소재 규제를 발표하면서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이 트위터에 ‘G20까지 한국이 강제징용자 판결 문제에 대해 일본이 원하는 답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시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이 경제 보복으로 시작한 문제라는 게 명확하다. 외교로 푸는 게 좋겠지만 외교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양보하지 않는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일본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본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는 걸 인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외교로 풀려면 ‘일본이 원하는 답’을 가져가야 한다. 일본이 원하는 답을 가져가면 경제 보복은 많이 풀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베 총리 주장에 완전히 굴복했다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경제 문제는 해결되지만 한국인 정체성이 영원히 훼손되는 결과다. 당장은 갈등을 피한다 해도 아베 총리의 혐한 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피해가 있더라도 한국인 전체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단계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세계 경제 10위에 걸맞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어떻게 대응할지 차근차근 생각해야 하는 단계로 와 있다. 먼저 경제 보복에 대해서 일본 논리가 오락가락한다. 안보 문제나, 한국 수출관리가 문제가 있어서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한다고 바뀌었다. 이런 논리적 허점을 지적해야 한다. 특히 한국 수출 관리가 철저하지 않다고 하는데 나머지 26개 화이트리스트 국가 중 전략물자 관리가 한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는 나라들을 언급해 일본 논리 허상을 밝히는 작업 등을 하나 하나 준비해야 한다. 국제 여론도 한국 편이다. 다른 나라들은 전 세계 공급 연결 고리를 망치는 일본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일본 얘기가 거짓말이고 문제가 많다는 여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한국이 항상 약하게 나오기 때문에 끌려다니는 면도 있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인 만큼 10위에 걸맞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현재 모습을 보면 50위, 60위 나라 정도로 보인다. 한국은 너무나 자신을 과소평가 하고 있다. 10위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야 다른 나라도 10위권 국가로 대접해준다.”
― 일본이 어떤 카드를 추가로 내밀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베 정부 초창기였던 2013년 11월 한 잡지에 아베 총리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 인터뷰가 실린 바 있다. 하기우다는 경제 보복을 감행하고 있는 3인방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2013년에도 박근혜 정부에 경제 보복을 가하겠다면서 ‘한국 원화를 많이 사들여 원화가 뛰게 하고 그래서 수출을 방해할 것이다’고 했다. 또한 당시 인터뷰에 다른 사람이 ‘금융 보복’에 대해서도 부연 설명을 한 바 있다. 엔화가 국제 통화인 만큼 한국이 외국에 자금을 빌리는 등 금융 거래를 할 때 일본 측 보증서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제 이런 보증서를 써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이 ‘제2의 IMF’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속셈이다. 이게 2013년 인터뷰인데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한국 쪽에서는 비관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속국적인 의식 구조와 속국 경제구조를 완전히 고쳐 나갈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한 현재 무비자 정책을 폐지하겠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이건 건들기 어렵다고 본다. 무비자 정책을 폐지하면 일본 지방 소도시가 큰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 일본은 강제징용과 관련해 이미 배상이 끝났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일본 측에서도 배상이 끝났다고 보지 않는다. 배상이 끝났다는 얘기를 하는 건 엄청난 거짓말이다.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국민의 청구권이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조항이 나온다. 91년 일본에서도 이를 두고 얘기가 많았지만 이는 개인 청구권이 없어진 게 아니라 국가가 개인을 보호하는 외교 보호권이 사라졌다는 뜻이라고 정리됐다.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관민합동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다뤘고, ‘보상 문제는 끝났지만 일제 강점기 때 불법성에 기인하는 차별, 폭력, 육체적, 정신적 고통 등에 대한 배상은 남아 있다’고 정확하게 기재돼 있다.”
―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져가자는 의견도 있다.
“국제 사법재판소로 가는 건 일본 논리다.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만 일본 측에서도 개인청구권이 남아 있다고 91년 인정한 바 있는데 이걸 버리고 국제 사법재판소로 가는 셈이다. ‘일본이 그렇게 말하는데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자’고 즉흥적으로 말하는 건 곤란하다.”
― 한국을 위한 목소리를 내면서 일본 우익단체에서 항의 메시지는 없었나.
“연구실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다 1965년에 끝났는데 왜 안 끝났다고 얘기하나’고 항의 전화가 많이 온다. 연구원이 받아서 ‘끝나지 않았고 배상은 하지 않았다’ 등의 이야기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 이들도 진실을 알고 팩트 그대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한국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본과 문제를 끝내는 방법은 쉽다. 박근혜 정부에서 위안부 합의를 했던 것처럼 일본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된다. 그런데 그 내용 안에는 ‘불가역적이다’라는 말을 삽입했다. 일본은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보상이라는 말을 썼다. 외교적 협의에 불가역적이다라는 말을 삽입하는 게 말이 되나. 만약 일본과 외교적 협의를 하더라도 이렇게 핵심적인 조항을 내주면 문재인 정부도 박근혜 정부처럼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왜냐면 돈과 비교할 수 없는 한국인의 혼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선택해야 한다. 그냥 돈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한국인의 정신을 선택하느냐라는 것이다.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 사람이 정신적으로 일본의 속국이 된다. 정신적 독립 상태를 추구한다면 일본과 전술과 전략을 갖춰 경제 전쟁을 해야 한다. 이미 경제 전쟁 상태다. 일본이 감행한 무모한 전쟁을 승리로 끝내야 한다. 부분만 보고 결정을 내리지 말고 모든 부분에서 면밀하게 검토해서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강하게 나가도 된다. 다만 감정만 강한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강해야 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호사카 유지는 누구?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2003년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계 한국인 정치학자다. 한 강연장에서 ‘독도는 누구의 땅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다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21년간 독도를 연구했고 지금은 ‘독도 지킴이’라 불린다. 호사카 교수는 현재 세종대학교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겸 일본학(정치학) 전공 교수이며 근·현대 한·일관계, 위안부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전문가다. 최근 한일관계가 경색되면서 매스컴 등을 통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정치적 문제 외에도 한국과 일본 문화 연구 등을 병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 ‘대한민국 독도 교과서’ 등이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