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일본’ 보여드리지 않습니다!
일본은 TV 속에서 가장 친숙하게 드러나는 나라였다. 최근 먹방(먹는 방송)과 여행 방송이 인기를 끌며 지리적으로 가까워 제작비가 절감되고 대중들이 느끼는 심리적 거리도 멀지 않은 일본은 제작진이 찾는 단골 소재였다. 실제로 주말을 이용해 일본 나들이에 나서는 연예인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그들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을 여행지로 선택하곤 한다. 하지만 최근 일본 음식과 관광지는 각각 먹방, 여행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한 예능 프로그램 작가는 “계획 중이던 대상 국가나 음식에서 왜색은 모두 빼고 있다”며 “당분간은 일본 관련 아이템은 아예 건드릴 계획도 없다”고 전했다.
일본 출신 연예인들의 모습도 보기 어렵다. 한국말이 유창한 일본인 혹은 재일교포 연예인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보이그룹 혹은 걸그룹 중에는 일본인 멤버들이 적잖다. 하지만 각 연예기획사들은 이들의 활동을 최대한 자제시키고 있다. 제작진 역시 그들의 섭외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에 아예 대중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판단이다.
tvN ‘강식당3’ 방송 화면 캡쳐
TV프로그램이나 연예인이 일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면 대중은 환호한다. 7월 26일 방송된 tvN 인기 예능 ‘강식당 3’에는 일본 제품을 사거나 일본 여행을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은 문구인 ‘NO 재팬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를 패러디한 자막이 등장해 네티즌의 지지를 얻었다. 극 중 방송인 강호동이 소일거리가 있을 때마다 찾던 이수근을 부르지 않자 ‘NO 수근 찾지 않습니다 부르지 않습니다’라는 자막이 붙었다. 직접적으로 일본을 비판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분위기를 잘 반영한 자막이라 ‘역시 나영석 PD’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개그맨 오정태가 미리 계획했던 일본 여행을 취소했다는 사실을 SNS를 통해 인증하자 그를 칭찬하는 네티즌의 목소리가 높았다.
김규종은 자신의 SNS에 일본인 여자친구와 6월초 일본에서 찍은 사진을 여러 장 게재했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했다. 사진 출처 = 김규종 SNS 캡쳐
한 연예계 관계자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더 맞은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에는 찬성할 수 없다”면서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관심사이고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 같은 시국에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쉬쉬 일본, 조용히 갑니다…
중국 시장이 한한령(限韓令)으로 막힌 상황에서 일본은 최대 한류 시장이다. 문화생활을 위해 지갑을 여는 이들이 많고 팬들의 충성도도 높아 연예기획사 입장에서는 가장 전망이 밝은 시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한일 관계가 악화되며 한류 콘텐츠도 된서리를 맞게 되는 것인 아닌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지난 주말 일본에서는 SM엔터테인먼트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패밀리 콘서트가 열렸다. 다른 가수들은 이미 계획됐던 일본 공연 등 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민간 차원의 한류 콘텐츠까지 막겠다는 입장을 밝히거나 그런 분위기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류스타들은 이를 바라보는 한국 대중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 내 활동을 강행한다는 프레임에 싸이면 엄청난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일본 측에서 계획된 활동에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류스타들이 현재 분위기를 이유로 먼저 활동 중단을 선언하면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동시에 신뢰 관계가 깨져 향후 일본 내 활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한류스타들은 ‘조용한 행보’를 택했다. 일본 활동을 이어가되 이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것이다. 통상 일본 공식 활동 후에는 이를 알리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곤 한다. 그들이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것이 일종의 국위선양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이 일본 여행조차 자제하는 상황 속에서 스타들이 돈벌이를 위해 일본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이미지를 주기 어렵다. 이 관계자는 “한일 관계 때문에 연예인들의 생업조차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연예인들이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것을 고려할 때 현재 분위기에 거스르는 뉘앙스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는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