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상하이 선화로 이적한 뒤 5경기에서 8골을 터뜨린 김신욱.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페르소나. ‘사조의 대변인’이란 뜻으로 영화감독이 자신의 분신이자 특정한 상징을 표현하는 배우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페르소나는 영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축구에도 페르소나가 존재한다.
어떤 축구 감독들은 특정 선수를 통해 자신의 전술을 투영한다. 그 선수는 감독 전술에 방점을 찍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일쑤다. 축구계의 페르소나다. 상하이 선화에서 중국 무대 세 번째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최강희 감독은 ‘페르소나 활용’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예다.
최 감독은 중국 슈퍼리그 진출 이후 톈진 취안젠(계약 취소), 다롄 이팡(경질)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7월 8일 상하이 선화에 부임한 이후로는 이야기가 다르다. 상하이 선화의 목표인 ‘강등권 탈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최 감독 부임 당시 상하이 선화는 슈퍼리그 14위에 머무르며, 강등권(15~16위) 추락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최 감독 부임 이후 5경기 3승 1무 1패로 대약진하며, 중위권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중심엔 최 감독의 ‘페르소나’, 김신욱이 있었다.
‘페르소나’ 김신욱을 영입한 뒤 승승장구하고 있는 상하이 선화 최강희 감독. 사진=연합뉴스
7월 1일 다롄 이펑에서 경질된 최 감독의 상하이 선화행이 기정사실화로 굳혀질 무렵. 최 감독은 김신욱에 러브콜을 보냈다. 김신욱은 2016시즌부터 2018시즌까지 전북 소속으로 최 감독과 한솥밥을 먹었던 공격수다.
올 시즌 K리그에서 9골 3도움을 기록했던 김신욱은 최 감독 러브콜에 즉각 응답했다. 김신욱은 “나를 믿고 써주는 최강희 감독님이 제일 중요했다”는 말과 함께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6cm 장신 스트라이커’ 김신욱은 상하이 선화 유니폼을 입자마자, 중국 무대 맹폭격을 시작했다. 김신욱은 이적 후 5경기에서 무려 8골을 터뜨렸다. 김신욱은 광저우 R&F전에선 해트트릭, 우한 줘얼을 상대로는 멀티골을 기록했다. 상대 수비 입장에선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득점력이었다. 김신욱은 불과 한 달여 만에 상하이 선화 공격진 핵심 자원으로 거듭났다.
최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무차별적 공격 축구’가 중국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 최 감독은 K리그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시절부터 ‘닥치고 공격(닥공)’을 모토로 무시무시한 공격 축구를 선보인 바 있다.
수비진과 볼 경합이 가능한 포스트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격루트를 양산하는 것이 최 감독의 축구 스타일이다. 그런 의미로 최 감독 전술에서 공격진의 중심을 잡아줄 만한 버팀목은 반드시 필요하다. 전북 시절 최 감독은 이동국, 김신욱 등 포스트 플레이어를 활용해 왕조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최 감독이 중국에 진출한 뒤엔 ‘공격진의 버팀목’ 역할을 수행할 만한 선수가 없었다. 그 결과는 다롄 이펑의 경질 통보였다. 그리고 상하이 선화에 새 둥지를 튼 최 감독은 마침내 ‘김신욱’이란 공격진 버팀목을 수혈했다.
‘2016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당시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이던 최강희, 그리고 김신욱. 사제의 성공신화는 대륙에서도 이어질까. 사진=연합뉴스
김신욱의 대륙 폭격에 중국은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중국 현지 매체들은 다른 외국인 선수들보다 저렴하면서 이름값이 떨어지는 김신욱의 전례 없는 활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8월 5일 중국 스포츠 매체 ‘시나스포츠’는 “김신욱이 중국 슈퍼리그를 지배하고 있다”면서 “김신욱의 활약은 한국과 중국 축구의 격차를 알 수 있게 해준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중국 현지에선 “김신욱의 금전적 가치와 이름값은 슈퍼리그 다른 외국인 선수들에 비해 낮다. 그런데도 김신욱은 엄청난 활약으로 자신의 가성비를 입증하고 있다”는 놀라움 가득한 반응이 속출하고 있다. 최강희 감독의 ‘페르소나 긴급 수혈’의 결과는 대성공인 셈이다.
축구에선 세계적인 감독과 선수의 조합이 ‘100%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름값의 조합보다 중요한 건 서로 간의 조화다. 조화를 기반으로 뿜어져 나오는 시너지 효과가 없다면,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막대한 자본을 자랑하는 중국 슈퍼리그에 ‘월드클래스’ 외국인 선수가 범람하지만, 예전 기량을 100% 과시하지 못하는 선수가 대부분인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북 시절 마음이 잘 맞던 사제, 최강희 감독과 김신욱의 유쾌한 동행은 주목할 만하다.
전북 시절 두 번의 리그 우승과 한 차례 ‘AFC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합작한 사제의 성공신화가 대륙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지 축구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