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가 대체 어떤 협정인 탓에 일본이 유지를 희망하는 것일까. 우선 일본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만성적으로 노출돼 비교적 무딘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일본은 공포가 엄청나다. 일본 본토 위를 지나가는 북한 미사일 발사에 긴급경보시스템을 발령할 정도다. 미사일 발사체 잔재가 일본 본토에 떨어질지도 예의주시한다. 이지스함과 정찰 위성 6기 등을 통해 북한의 동향을 쫓지만, 북한 관련해 쉽사리 우리를 따라오지 못할 정보 영역이 있다. 바로 휴민트(인적 정보)다. 일본은 지소미아를 통한 북한 내 우리의 인적 정보를 받고자 한다.
지소미아가 ‘일본의 급소’라는 얘기가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를 언급할 때, 일본이 아무런 언급을 내놓지 않는 채 비공식 채널을 통해 “지소미아 파기만은 안 된다”고 얘기할 정도다. 하지만 지소미아 파기가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다. 미국이 연결돼 있다. 한·미·일을 연결하는 거의 유일한 군사, 안보 대화 채널인 지소미아. 우리가 외교 옵션으로 거론하면서도 막상 활용하기를 신중하게 고민하는 이유다.
2016년 11월 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에 서명하기 위해 입장하는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 이날 국방부가 취재 공개를 요구하는 사진기자들에게 협정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히자 사진기자들은 “협정이 밀약이지 않은 이상 비공개인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 카메라를 내려놓고 취재거부를 결정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지소미아가 뭐길래…박근혜 정부 때 日 요청으로 체결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이 우여곡절 끝에 2016년 11월 맺은 군사협정이다. 광복 이후 처음 맺은 군사협정이기도 하다. 그 배경에는 북한이 있었다. 그보다 두 달 앞선 2016년 9월, 북한은 5차 핵실험을 강행했는데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군사 정보를 개별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미국의 중재 분위기 속에 지소미아가 체결됐다.
지소미아는 1년 단위로 기한 만료 90일 전에 양국이 협정 종료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자동 갱신된다. 올해는 다음달 24일이 최종 기한인데 협정 체결 3년여의 기간 동안 군사 기밀 2급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협정 체결 이후 양국은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민감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올해 들어 3건, 협정 체결 후 모두 26건의 정보 교환이 있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일본은 북한 실험 과정에서 일본 본토 위로 미사일만 날아가도 긴급경보를 발령하고 대피 조치를 할 정도로 두려워한다”며 “북한이 정찰위성, 이지스함 등을 통해 미사일 궤적은 잘 확인해도 미사일 발사 과정은 물론, 북한 내부의 분위기나 흐름 파악은 쉽지 않다. 우리와의 지소미아 체결을 통해 인적 정보를 확보하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탈북자 등을 통해 북한 내부 동향 정보를 빠르게 확인하는 데 반해, 일본은 언어 등의 문제로 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맺어진 조약이라는 얘기다.
경제 갈등 초창기만 해도 거론되지 않았고, 국방부도 “파기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할 정도로 협정 유지가 당연해 보였던 지소미아. 하지만 일본 정부가 계속 규제를 강화하면서 한국 정부도 입장이 바뀌었다.
# 국방부마저 바뀐 기조…“파기 검토” 공식 발언
지난 2일 군 당국의 스탠스가 파기를 검토하고 있다는 쪽으로 기조가 바뀌었다.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정보 교류 당사자에 해당하는 국방부가 입장을 바꿔 부정적인 발언을 내놓기 시작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5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지소미아 연장 여부와 관련해 우리에 대해 신뢰의 결여와 안보사항의 문제를 제기하는 국가와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계속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검토하고 있다”고 운을 띄웠다. 일본이 한국을 신뢰하기 어려운 수출국으로 분류했는데, 이 상황에서 신뢰를 전제로 한 군사비밀 교환이 가능하겠냐는 취지의 지적이었다.
8월 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소미아 파기 여부를) 정부가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은숙 기자
정경두 국방부 장관도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소미아 파기 여부를) 정부가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정부는 내부적으로 지소미아를 연장하는 것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 수출규제 등 신뢰가 결여된 조치를 안보 문제와 연계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 (파기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지소미아 파기가 외교적 옵션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처음부터 지소미아는 건들지 않겠다는 취지를 밝혀왔던 일본.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은 7월 23일 기자회견에서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질문에 “우리들에겐 그런 생각은 없다”며 “안전보장 면에서 미·일, 한·일, 한·미·일 연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대한다는 과제에 대해서 확고히 생각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 뒤에서 비공식 채널을 통해 “지소미아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본 외교계 관계자는 “지소미아 파기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일본 분위기를 전했다.
# 결국 미국이 변수, 지소미아로 미 움직일 가능성도
하지만 우리 정부가 파기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파기 여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중국, 북한 등 동북아 정세에서 군사 우방인 한국과 일본의 군사 교류를 원했다. 지소미아 체결 당시 미국이 이를 중재했다는 분석도 적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 미국이 공식적으로 군사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채널이 지소미아뿐이기에, 미국은 지소미아 파기는 원치 않는 상황이다.
실제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 2일 워싱턴DC에서 개최한 포럼에 참석해 “(한·일) 군 지도부가 소통을 계속해 지소미아 같은 채널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며 “공유하는 정보를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소통 채널을 파괴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고 얘기했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사진공동취재단
한국 정부가 파기 카드를 성급하게 꺼낼 경우 일본뿐 아니라, 미국 중재를 끌어낼 만한 효과적인 유인책을 더 찾아내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국방부 관계자는 “사실 지소미아를 통한 정보로 우리가 대단히 득을 보는 것도, 대단히 실을 보는 것도 없지만 지소미아는 한일뿐 아니라 미국도 연결된 안보 관련 협정인 탓에 쉽사리 파기를 결정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양 국가가 원하면 중재할 수 있다”는 입장만 내놓은 상황이라, 지소미아 파기 가능성만으로는 당장 일본의 수출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대외적인 점을 감안해 전략적으로 여당을 통해 파기와 같은 강경 대응 주장을 하면서도, 정부는 미국의 중재와 일본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는 ‘외교적 카드’로 활용하는 수순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받는 대목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일본이 강력하게 반발해 온 독도방어훈련을 이달 중 실시할 예정인데, 군사적인 이슈를 통해 일본에 ‘안보 동맹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전달되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겠냐”며 “우리가 일본을 압박할 카드가 몇 개 없지만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지소미아다. 미국이 연결돼 있어 신중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유일한 해결책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