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레저개발의 왕산마리나 전경. 왕산레저개발 홈페이지
대한항공이 계열사 왕산레저개발에 150억 원을 출자했다.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왕산레저개발 보통주 300만 주 규모다. 대한항공 측은 출자 목적에 대해 “당사가 이미 출자한 왕산레저개발의 사업시행 및 운영을 위한 유상증자 참여”라고 설명했다.
왕산레저개발은 대한항공이 2011년 인천국제공항 인근 요트계류장인 ‘왕산마리나’를 조성할 목적으로 자본금 60억 원을 투입해 설립한 회사다. 현재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생전 관광레저사업을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며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왕산레저개발은 ‘만년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2011년 설립 이래 단 한 차례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 2012년 영업손실 1082만 원을 시작으로, 2013년 612만 원, 2014년 4억 9810만 원, 2015년 10억 1890만 원, 2016년 12억 7775만 원, 2017년 20억 4347만 원으로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적자폭이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 7억 2240만 원에 영업손실 22억 9424만 원, 당기순손실 49억 39만 원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오히려 왕산레저개발에 매년 수백억 원의 자금을 지원을 하고 있다. 2012년 유상증자 방식으로 300억 원을 출자했고, 2014년에는 140억 원과 300억 원, 2016년 85억 원과 38억 원, 2017년 200억 원, 2018년 220억 원을 투입했다. 올해 지원까지 합치면 대한항공이 그동안 왕산레저개발에 출자한 금액만 1400억 원이 넘는다.
문제는 대한항공의 재무상황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영업이익 6403억 원, 당기순손실 1857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영업이익은 32% 줄었고, 당기순이익은 적자전환했다. 더욱이 부채비율은 800% 수준이다. 이를 의식한 듯 한진그룹은 올해 2월 중장기 비전을 발표하면서 오는 2023년까지 대한항공 부채비율을 395%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2대주주 KCGI는 본업인 항공업과 연관성이 낮은 사업을 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 역시 호텔과 레저사업의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아 대한항공의 신용등급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며 사업재편을 조언했다. 하지만 한진그룹 측은 자산 매각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항공이 왕산레저개발을 계속 지원하는 이유가 고 조양호 전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경영 승계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에 대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고성준 기자
실제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4년 12월 ‘땅콩회항’ 사건이 불거지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 전 대한항공 칼호텔네트워크, 한진관광, 왕산레저개발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특히 왕산레저개발은 초대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왕산마리나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추후 경영에 복귀했을 때 맡을 사업이 줄지 않게 하려고 레저·호텔사업 부문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조현아 전 부사장은 해외 명품 밀수,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등 혐의의 재판으로 경영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복귀한다면 그룹 내 호텔과 레저사업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는 한진그룹의 호텔·레저사업 규모가 크지 않고 실적이 좋지 않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조 전 부사장은 경영에 대한 의욕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왕산레저개발을 접는다면 조 전 부사장의 사업영역이 더 좁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추후 남매간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어 대한항공이 왕산레저개발에 계속 지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왕산레저개발뿐 아니라 한진의 호텔·레저사업 부문은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재직했던 호텔사업 계열사 칼호텔네트워크는 수년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영업수익 1071억 원에, 영업손실은 80억 원, 당기순손실 159억 원을 냈다. 한진관광 역시 지난해 영업수익은 545억 원이었지만, 영업손실 10억 원, 당기순손실 4805만 원을 기록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업과 호텔·관광 사업은 떼려야 뗄 수 없다. 해외 레저사업의 사례를 봐도 요트 등으로 추세가 옮겨가고 있다. 이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왕산레저개발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왕산레저개발 ‘소송’ 진행…인천시한테 받은 167억 토해낼 수도 왕산레저개발과 관련한 리스크는 또 있다. 2011년 인천국제공항 인근 요트계류장 왕산마리나 조성 당시 인천시로부터 무상지원 받은 사업비 167억 원이 ‘불법 세금 지원’ 논란에 휘말리면서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 인천시는 2011년 왕산레저개발과 공유수면 9만 8000㎡를 매립해 요트 300척을 수용하는 계류시설과 클럽하우스를 갖춘 왕산마리나 요트경기장을 조성하는 업무협약을 체결, 167억 원을 지원했다. 이는 전체 공사비 1500억 원 가운데 11%에 해당한다. 2년의 공사를 거쳐 만들어진 왕산마리나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요트 경기를 치르는 데 사용됐다. 이후 2017년 6월 왕산마리나는 국내 민간 마리나로는 최대 규모로 전면 개장했다. 그런데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등이 2016년 8월 인천시가 대한항공이 출자해 설립한 왕산레저개발에 부당 지원한 167억 원을 환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주민소송을 인천지법에 제기했다. 이들은 인천시가 ‘민간이 투자하는 시설에는 예산지원을 금지한 국제대회지원법 제23조 제1항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에 대해 1심과 2심은 ‘각하’했다. 각하는 본안 심리에 들어가지 않고 소나 청구의 심사를 받을 요건이 되지 않아 심리를 종료하는 것이다. 주민소송에 앞서 진행된 문화체육관광부 주민감사에서 결과가 ‘각하’로 나왔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재판부는 감사청구가 심의단계에서 수리조차 되지 못한 채 각하됐으므로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관계자는 “문체부 주민감사에서 청구 내용에 대해 검토를 다 했다. 이에 ‘각하’가 아니라 ‘기각’이라고 표현했어야 하는데, 문체부가 잘못 기재했다고 봤다. 따라서 소송의 요건을 다 갖췄다”며 “그런데 재판부는 법리적 판단을 하지 않고 소송을 다루지도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송은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은 이번 건에 대해 ‘심리불속행기간 도과’ 처리했다. 대법원에 재심 신청서가 접수된 지 4개월이 지난 사건을 기각하지 않고 심리를 이어간다는 의미다. 상황에 따라 전세가 역전될 수도 있다. 만약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힌다면 왕산레저개발은 인천시에서 지원받은 167억 원을 모두 되돌려줘야 한다. 민웅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