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내에서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반일 감정이 총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내용의 민주연구원 보고서가 외부로 유출되면서다. 이 보고서는 대외비로 분류돼 민주당 의원들에게만 제공됐다.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지난 3월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공항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그런데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해찬 대표 측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보고서를 흘린 것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이 대표 측은 펄쩍 뛰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이 대표는 그런 추잡한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소문이 돌 정도로 이 대표와 청와대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내년 총선에서 친문(친문재인) 공천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청와대는 당을 장악하고 싶어 한다. 문 대통령 최측근인 양정철 원장이 이끄는 민주연구원은 청와대가 당을 장악하기 위한 전진기지다. 반면 이 대표는 친문 공천에 협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러다간 총선 망친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이 대표와 청와대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이 대표와 청와대가 완전히 각을 세우고 그런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청와대는 말 잘 듣는 당 대표를 원하는데 이 대표가 호락호락하지 않아 불편하다 정도의 갈등”이라고 설명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지금 민주당 소속 의원들에게 ‘당신은 친문이냐’고 물으면 10에 9는 친문이라고 답할 거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진짜 친문인지 모르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오래했다. 주변에 충성심이 검증된 인사들만 친박(친박근혜)이 됐다. 문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한번 했다. 불과 몇 년 전엔 문 대통령 욕하다가 지금은 친문이라고 돌변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믿을 수 없으니까 노무현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던 인물들을 주변에 배치시키는 거다. 내년 총선에서 믿을 만한 사람을 대거 당선시키기 위해 노골적으로 움직이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전당대회에서 친문이 밀었던 김진표 후보는 송영길 후보에게도 밀려 3위를 차지했다. 너도나도 친문을 자처하고 있지만 당내 진짜 친문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친문 공천을 원하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이 대표가 걸림돌일 수도 있다. 지난 전당대회 때 전해철 의원을 비롯한 친문 핵심 인사들은 이런 이유로 이 대표가 아닌 김진표 의원을 밀었다. 이 대표는 7선으로 당내 최고참 원로다. 이 대표는 문 대통령을 ‘문 실장’이라고 불러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청와대에는 사실상 이 대표를 컨트롤할 인물이 없다. 이 대표와 청와대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민주당 인사는 “과거에는 청와대에서 사실상 공천 임명장을 줬지 않나. 청와대는 당연히 자기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이 대표는 그런 시대 끝났다. 시스템 공천한다는 입장인 거 같다. 당내에서는 이번 총선 공천 실세는 (청와대가 아니라) 이 대표라는 말이 돈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민주당에서는 이해찬 대표가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고 인재영입위원들은 따로 두지 않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방안이 관철될 경우 총선 공천에서 이 대표 영향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인사는 “청와대에서 친문 공천하려는 것에 대해 당내 불만이 많다. 현역 의원들이 자리를 뺏기게 생겼는데 왜 불만이 없겠나. 불만이 어느 정도냐면 ‘(정치 이력이 짧은) 문 대통령이 당에 기여한 게 뭐가 있다고 공천권을 다 가져가려 하나. 염치없다’는 말까지 나온다”면서 “이 대표가 친문 진영에 어느 정도는 양보할 거라고 본다. 그래도 이 대표가 있는 한 친문 진영이 원하는 만큼 다 가져가진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민주당 의원을 사석에서 만났는데 문 대통령을 직접 비판하지 않았지만 청와대 참모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더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청와대와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 대표와 청와대는 차기 대권에 대한 시각도 엇갈린다. 최근 친문 진영에선 조국 전 민정수석을 차기 대권주자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한 민주당 인사는 “조국이 (대통령) 깜이 되나. 친문 패권주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더라. 자기들이 다 해먹겠다는 거 아닌가. 친문에서 무리하게 자기 사람 심으려다 대선 망친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조국 전 수석을 특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친문 진영의 폐쇄성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친문 진영과 앙숙인 이재명 경기지사까지 품고 대선에 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의 민주당 인사는 “이 대표와 청와대 사이에 입장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것이 계파싸움으로 번질지는 미지수다. 계파싸움 하면 망한다는 학습효과가 있다. 당내에선 절대 그런 상황이 벌어져선 안 된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총선이 다가올수록 양측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양측 갈등이 표면화되느냐, 적당히 봉합되느냐가 내년 총선 승패를 가를 분수령이라고 본다”고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