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 무대 2년차를 맞은 이강인의 거취에 여전히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한국 축구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이강인에게 지난 2018-2019 시즌은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시즌을 앞두고 천문학적인 금액(8000만 유로, 1085억 원)의 바이아웃 조항을 삽입하며 재계약을 맺었고 본격적으로 성인 1군 팀에 합류했다. 프리시즌 1군 경기에 나서 골까지 넣으며 존재감을 발휘하던 그는 시즌 중 정규리그까지 치러냈다. 소속팀 발렌시아 최초 동양인, 구단 역대 최연소 외국인, 한국인 역대 최연소 유럽무대 데뷔 등 그의 발자취가 모두 새로운 기록이었다.
시즌 말미에는 폴란드로 떠났다. U-20 월드컵 참가를 위해서였다. 이강인은 그곳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한국 대표팀이 결승전에 진출하는데 큰 공을 세웠고, 대회 최고 개인상인 골든볼(MVP)을 수상했다. 그에겐 장밋빛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소속팀 사정은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그의 잠재력을 인정하지만 아직 만 18세의 어린 선수일 뿐이다. 프로 1군 무대에서 약 500분 내외만을 선보였다. 경험 많은 발렌시아의 기존 선수들과 험난한 경쟁을 견뎌야하는 상황이다.
지난 시즌 데뷔전은 치렀지만 중용 받지 못한 이강인은 이번 2019-2020 시즌을 앞두고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원했다. 임대 이적 또한 불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구단 내 ‘특수 상황’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의 의지나 다른 팀의 영입 의향이 아닌 외부 변수가 작용한 것이다.
#구단주 vs 단장 파워게임 발발
불안하던 시한폭탄이 터졌다. 잊을만하면 구단 운영에 간섭을 일삼던 구단주 피터 림이 마테우 알레마니 단장 등 운영진과 마찰을 빚은 것이다.
갈등의 원인은 선수 영입 과정에 있었다. 알레마니 단장과 마르셀리노 토랄 감독이 원했던 선수인 공격수 막시 고메스의 이적 과정에 피터 림이 제동을 걸었다. 이 외에도 수비수 니콜라스 오타멘디, 미드필더 하피냐 알칸타라의 영입 건을 놓고도 대립각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팀 내 유망주 이강인을 놓고도 구단주와 운영진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마르셀리노 감독은 팀의 전술과 이강인의 성향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그에게 많은 기회를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그의 잠재력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이에 다른 팀에서 뛰어 경험을 쌓게 하되 임대로 내보내 다시 돌아오게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발렌시아 구단주와 운영진은 U-20 월드컵으로 주가를 높인 이강인에 대한 시각에 온도차가 존재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마침 시기는 이강인이 더 많은 출전 시간을 원한다는 의지를 보이던 때였다. 스페인 내에서 레반테, 에스파놀, 오사수나, 네덜란드의 아약스, PSV 에인트호벤 등 다양한 구단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구단 내 파워 게임의 결과에 따라 거취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선수의 의사보다 외부 요인이 이적에 영향을 크게 미칠 수도 있었다.
#단장-이사-감독 동반 사퇴 가능성
이어진 갈등에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알레마니 단장, 파블로 롱고리아 기술이사 등이 사퇴할 수 있다’는 스페인 현지 보도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발렌시아 팬들로선 3년 전 악몽이 떠올랐다. 2016-2017 시즌, 팀이 표류하던 중 단장이 사임했다. 구단은 강등 위기를 맞으며 최악의 시간을 보낸 바 있다.
알레마니 단장의 사퇴는 마르셀리노 감독의 사퇴를 의미했다. 단장과 감독 교체는 팀의 방향 자체가 바뀔 수 있는 문제다. 이강인의 입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팬들은 지난 2시즌 연속으로 4위에 오르며 성공시대를 연 알레마니·마르셀리노와 작별을 원치 않았다.
급기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 조세 무리뉴의 발렌시아 부임설이 돌기도 했다. 피터 림 구단주와 돈독한 사이로 수년간 발렌시아에 영향력을 끼쳐 온 ‘슈퍼 에이전트’ 조르제 멘데스의 존재 때문이다. 멘데스에게 무리뉴는 가장 큰 고객이자 파트너로 알려져 있다. 다만 무리뉴의 천문학적 몸값을 발렌시아가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랐다.
지난 시즌 파리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모습을 드러낸 피터 림 구단주(가운데). 앞줄에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발렌시아 내부 갈등은 극적으로 타결됐다. 알레마니 단장을 비롯한 운영진이 구단주와 싱가포르에서 긴급회의를 가졌고, 피터 림이 한 발 물러서며 해프닝은 일단락됐다. 자세한 회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알레마니와 마르셀리노의 프로젝트에 피터 림이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자연스레 이강인의 완전 이적도 없던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임대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강인은 다른 선수들이 평생 경험하지 못할 일들을 프로 2년차에 겪고 있다. U-20 월드컵에서는 최고 선수로 꼽혔고 소속팀에선 그의 미래를 놓고 수뇌부가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연일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마음고생을 겪었지만 그만큼 실력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오는 8월 16일(현지시간) 개막한다. 이적 시장은 그 이후인 9월 2일 밤 11시 59분에 종료된다. 아직 시장 문이 닫히기까지 약 20일이 남아 있다. 팀 내 분란이 안정되며 급한 불을 끈 이강인이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축구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