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업체 소니는 한때 가전제품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지만 오늘날 국내 가정에서 소니 제품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국내 시장에서 세탁기, 텔레비전(TV) 등 일반 가전제품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업체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중국산 제품의 저가공세로 인해 국내 시장에서 소니의 입지는 더욱 줄고 있다. 그나마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이어폰, 스피커 등 AV 장비 정도가 인지도를 갖고 있다.
소니스토어 압구정점. 사진=소니코리아
그렇지만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소니코리아의 지난해(2018년 4월~2019년 3월) 매출은 1조 1995억 원, 영업이익은 136억 원으로 상당한 실적을 거뒀다. 또 소니코리아 매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의외로 ‘이미지센서’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지센서는 디지털카메라의 필름 역할을 하는 부품으로 국내외 주요 스마트폰 생산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차량용 이미지센서의 수요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소니코리아의 B2B(Business to Business·기업과 기업 간 거래) 사업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소니의 이미지센서 점유율은 51%에 달한다. 그간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스마트폰 업체들은 소니코리아의 주요 고객이었던 셈이다. 이번에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일본산 부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소니코리아 역시 한국에서의 매출이 줄어들 위기에 처하게 됐다.
최근 전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미지센서 기술이 성장하고 있어 굳이 소니의 이미지센서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이미지센서도 많이 발전해서 매출 기준으로는 아직 소니가 앞서지만 수량 기준으로는 많이 쫓아갔다”며 “품질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시장에서 충분히 수요가 있고, 소니가 아닌 삼성전자 제품을 써도 큰 무리는 없다”고 전했다.
지난 9일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폰 시장 4위 중국 샤오미는 삼성전자의 이미지센서를 주력 스마트폰인 ‘홍미’ 시리즈에 탑재하기로 했다. 또 세계 5위 업체인 중국 오포도 삼성전자의 이미지센서를 탑재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이미지센서 점유율이 늘어날수록 소니의 점유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소니 제품 역시 국내 업체의 부품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소니의 스마트폰 ‘엑스페리아(Xperia)’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이 쓰인다. 뿐만 아니라 소니의 TV에도 LG디스플레이의 패널이 많이 사용되며 플레이스테이션에도 국내 업체가 생산하는 반도체 소재가 쓰인다.
문제는 한국 정부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관계장관 회의 및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정부 관계자들은 일본을 한국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전략물자수출입고시 개정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해 수출 관리를 강화하는 절차를 밟겠다”고 전했다.
소니 입장에서는 한국 기업에 부품을 팔기도, 한국 기업으로부터 부품을 수입하기도 어려워졌다. 다만 소니코리아 관계자는 “부품의 구체적인 생산과 조달 과정에 대해서는 밝히기가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소니코리아는 실적과 별개로 재무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다. 올해 3월 말 기준 소니코리아의 자본총액은 717억 원, 부채총액은 2316억 원으로 부채비율이 322.91%에 달한다. 10년 전인 2009년 3월 말의 소니코리아 부채비율은 167.12%, 5년 전인 2014년 3월 말에는 82.98%에 불과했다. 매출은 매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순이익이 최근 몇 년간 감소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반일감정이 불거지자 소니코리아는 언론 노출을 최소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니코리아는 지난 7월 11일 무선이어폰 신제품 발표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간담회 3일 전인 7월 8일, 돌연 간담회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소니코리아 측은 “내부 사정”이라며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반일감정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또 지난 7월 15일 블루투스 턴테이블 ‘PS-LX310BT’ 출시 소식 이후 지난 8월 9일까지 보도자료를 단 한 차례도 내지 않고 있다.
소니코리아 관계자는 “실적이나 판매와 관련한 부분은 매년 정기보고서를 통해 공개하는 것 이외에는 밝히고 있지 않다”며 “최근 한일이슈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매출이나 판매의 증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편, 소니는 소니코리아 외에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소니뮤직)’라는 법인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진출한 상태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소니뮤직은 지난해(2018년 4월~2019년 3월) 매출 335억 원을 거뒀다. 소니코리아에 비하면 적은 매출이지만 매년 상승세에 있다는 점에서 업계 주목을 받고 있다. 또 올해 1월 JYP엔터테인먼트가 일본 소니뮤직과 손잡고 일본 현지에서 걸그룹 결성 목표를 밝히는 등 국내 업체와도 적지 않게 협력하고 있다.
소니뮤직은 워너뮤직, 유니버셜과 함께 세계 3대 음반 기업으로 꼽힌다. 다만 한국에서는 카카오M 서비스인 멜론 등이 음원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소니뮤직은 2017년 말 KQ엔터테인먼트와 지분 투자를 통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현지화에 나서고 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