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과 거리를 둬 온 이들 배우가 예능으로 눈을 돌리는 데는 여러 이유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스튜디오 중심의 버라이어티나 토크쇼 형식에서 탈피해 자연스럽게 일상을 담는 여행기 등으로 그 장르가 다변화되는 영향이 결정적이다. 예능 특유의 폭발력에 힘입어 대중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도 배우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한다.
# 바야흐로 ‘예능의 시대’…배우들 대이동
배우들의 예능 도전에 있어서 일종의 ‘등용문’을 제공한 인물은 나영석 PD다. 남녀노소 경계를 두지 않고 ‘반전의 배우’를 예능으로 적극 끌어들이는 그가 이번에는 염정아와 윤세아, 박소담의 손을 잡았다. 이들은 9일 방송을 시작한 tvN ‘삼시세끼 산촌편’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모두 예능에 고정 출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tvN ‘삼시세끼 산촌편’의 주인공인 윤세아, 염정아, 박소담. 사진 제공=tvN
‘삼시세끼’는 스타 배우들이 시골에서 세 끼를 자급자족하는 모습을 담는 예능이다. 짜여진 대본이나 설정에 의존하지 않고 그때 그때 벌어지는 상황에 자연스럽게 대응하고 적응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담는다. 앞서 차승원과 유해진이 ‘삼시세끼 어촌편’과 ‘고창편’ 시리즈에 출연해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번 ‘삼시세끼 산촌편’은 시리즈 처음으로 여배우들로만 출연진을 꾸리고 변화를 시도해 주목받고 있다.
염정아와 윤세아는 올해 초 방송한 드라마 ‘스카이 캐슬’ 신드롬의 주역이다. 박소담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인정받은 연기자다. 한창 주가를 높이는 이들이 지금, 왜, 예능에 출연하게 됐을까. 저마다 품은 이유는 비슷하다. 평소 호기심을 가져왔던 예능을 향한 ‘궁금증’, 기획하는 시리즈마다 성공을 거둔 연출자 나영석 PD와의 작업에 품은 ‘기대’가 맞물린 선택이다.
실제로 나영석 PD는 KBS에서 tvN으로 이적한 뒤 배우 이서진과 손잡고 ‘윤식당’ 등 시리즈를 성공으로 이끌었고 이후 차승원·유해진 콤비를 발탁해 ‘삼시세끼’부터 ‘스페인 하숙’까지 연이어 흥행시켰다. 윤여정, 정유미 등 예능과 거리가 멀었던 배우들을 적극 기용해 요리, 여행을 접목한 기획을 꾸준히 해오는 점 역시 동료 배우들을 ‘예능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염정아는 8일 열린 ‘삼시세끼 산촌편’ 제작발표회에서 “나영석 PD가 만든 예능프로그램을 평소 좋아하고 거의 다 챙겨봤다”며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출연 제안이 왔기 때문에 흔쾌히 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영화나 드라마 외에는 다른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던 배우 이선균과 김남길도 이젠 예능에 나선다. 9월 방송 예정인 tvN ‘시베리아 선발대’가 이들의 도전 무대다. 친한 배우들끼리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싣고 떠나는 여행을 다룬 내용이다. 2일 현지로 출국한 이들은 인터넷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는 상태로 여행을 함께 한다.
# 희소성 높은 배우 섭외…“새 인물 새 장소 관건”
배우들의 예능 출연이 늘지만 화제와 성공을 거두기 위해 제작진이 거쳐야 할 ‘전제 조건’은 존재한다. 대중이 궁금해할 만한 배우를 찾아 이들에게 적합한 콘셉트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다. 특히 해당 배우가 얼마나 높은 ‘희소성’을 지녔는지는 예능 성패를 좌우하는 기준이 된다. ‘꽃보다 할배’를 통해 원로 배우 이순재와 신구, 백일섭을 예능에 섭외했고 ‘꽃보다 누나’로는 김희애와 최지우를 예능의 세계로 이끈 나영석 PD가 강조하는 부분도 “새 인물과 새로운 장소”다. 이번 ‘삼시세끼 산촌편’을 구상하면서 그는 “기존 예능에서 만날 수 없던 새로운 인물을 찾아 새로운 장소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발굴한 인물이 바로 염정아다. 나영석 PD와 평소 가까운 유해진과 이서진은 기회 될 때마다 염정아의 ‘숨은 매력’을 이야기했고, 대중이 모르는 유명 여배우의 모습에 착안해 이번 ‘삼시세끼 산촌편’이 탄생할 수 있었다. 배우가 참여하는 예능에선 ‘멤버 구성’ 또한 중요하다.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이 자연스럽고 스스럼없이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려면 무엇보다 ‘편한 마당’에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염정아와 윤세아 역시 ‘스카이 캐슬’에 출연하기 전부터 함께 여행을 다닐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고 덕분에 예능 동반 출연이 가능했다. 실제로 윤세아는 “염정아와는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나영석 PD. 사진제공=tvN
배우들의 예능 출연은 그 자체로 인지도 상승에 상당한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특히 영화에 주로 출연하는 유해진 같은 배우가 대중성과 인지도가 생명인 CF모델로 활약할 수 있던 배경 역시 예능에 힘입은 바 크다. 특히 최근 지상파 방송사들이 평일 밤 10시대 미니시리즈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대신 예능 제작에 적극 나서는 상황도 배우들의 예능 도전을 이끄는 ‘현실적인’ 배경으로 지목된다.
최근 연기자 조현재는 아내인 프로골퍼 박민정 씨와 SBS 예능프로그램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출연하면서 매회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간 조용하고 차분한 ‘훈남’ 연기자로 익숙한 조현재가 실제 집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아내에게 꼼짝 못하는 남편이란 사실이 시청자에게 색다른 웃음과 재미를 선사한다. 조현재가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해왔어도 지금처럼 화제의 중심에 선 적이 드물 정도로 ‘예능 효과’는 탁월하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