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으로 인한 세계 주요국의 경쟁적 금리인하로 막대한 유동성이 다시 풀리게 됐지만, 보호무역 강화에 따른 진입장벽 강화와 생산성 악화로 기업 실적 전망은 어둡다. 글로벌 자금도 우량국채와 금 등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쏠리고 있다. 증시 모습은 미국의 긴축과 중국경제의 경착륙 우려로 환율불안이 커졌던 2016년과 닮았다.
코스피가 3년여 만에 장중 1900선을 내준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장중 1900선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16년 6월 24일 이후 3년 1개월여 만이다. 연합뉴스
# 코스피 1800, 환율 1250이 저점
코스피 2000선 붕괴는 올 1월 이후 8개월여 만이다. 1900선 붕괴는 2016년 6월 이후 처음이다. 기술적으로 2016년 6월의 전 저점(1817)이 깨진 상황이다. 당시 원·달러 환율도 1220선으로 현재와 비슷하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분기 기준으로 코스피와 영업이익 간의 상관계수는 0.77(2010년 이후, 1이면 완전일치)로 꽤 높다, 컨센서스 기준 2019년 분기 평균 영업이익은 36조 1000억 원(연간합계 144조 2000억 원)으로 전망된다. 현재와 유사한 수준의 영업이익이 나타났던 해는 2016년이다”라고 분석했다.
2016년엔 반도체 활황 등으로 현재보다 경상수지 흑자폭이 컸고, 내수도 부동산을 중심으로 지금보다 활기를 띠었다.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 경제성장률도 지금보다 높았고, 일본과 경제갈등이 발생하기 전이다. 지금이 그때보다 펀더멘털이 더 약한 셈이다.
# 한국도 0%대 금리 온다…채권에 몰리는 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 7월 10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중국에 대한 관세폭탄에 이어 달러 약세를 유도해 자국 기업을 보호하겠다는 게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이란 해석이 많다. 중국은 이에 맞서 위안화 평가절하를 용인해 10년 만에 ‘1달러=7위안’ 마지노선을 넘었다. 연준의 추가 금리인하가 이미 예고된 상황에서 자국 통화 강세를 방어하려는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도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칠 것이 유력하다. 한국은행도 7월 선제적 금리인하에 이어 8월 추가 인하 가능성이 점쳐진다. 재정과 외환 수급에 문제가 없는 국가의 국채로 자금이 몰릴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증시는 부진한 반면 채권시장은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채권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분위기다. 단기채권은 금리 차이를 노린 외국인이, 장기채권은 환율 불안으로 해외투자 불안이 커진 보험사와 연기금들의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
# 안전하거나, 미래가 있는 주식만
안전자산 선호 현상은 증시에서도 뚜렷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우량 기업들은 엄청난 반등 탄력을 보였다. 세계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거나 미래 유망산업과 관련된 종목들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정보통신기술(ICT) 업종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면서 모바일 생태계가 조성되고, 이에 따라 전자기기 제조와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주목받았다.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릿스,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등 이른바 ‘팡(FAANG)’으로 불리는 미국 기업이 대표적이다. 중국에서도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급부상했고, 한국에서는 모바일 기기 제조에 꼭 필요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체가 주목받았다.
현재 주목되는 미래산업은 인공지능(AI), 자율주행, 2차전지와 신재생에너지 등이다. 대부분 IT부문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국내 종목 가운데서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와 연결된다.
# 안전제일…해외투자라면 달러·금
환율전쟁이 벌어지면 펀더멘털이 약한 곳이 먼저 타격을 입는다. 재정이 약하거나 외채가 많고, 경상수지가 적자인 국가들에서는 자금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 일부 신흥국에서 금융 불안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자재 비중이 높은 나라도 주의해야 한다.
불안감이 클 때 가장 안전한 자산은 역시 금이다. 온스당 1500달러를 이미 넘어섰고, 1600달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전 고점은 유럽 재정위기 때인 2011년 9월 1920달러다. 달러자산에 대한 관심도 높다. 기축통화인 데다 미국의 경제 펀더멘털도 현재 주요국 가운데 가장 강하다는 평가다. 가치하락이 제한적이고, 원화약세시 환차익을 누릴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