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티슈진에 이어 신라젠까지 연이은 임상 실패로 국내 바이오업계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신라젠은 최근 바이러스 기반 면역항암제 ‘펙사벡’의 미 식품의약국(FDA) 임상 3상 실험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앞서 코오롱티슈진 ‘인보사케이주’도 주성분 일부 세포가 뒤바뀐 사실이 드러나 미 FDA가 지난 5월 임상 3상을 중단시켰고,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도 품목 허가를 취소했다. 지난 6월엔 에이치엘비가 위암치료제 ‘리보세라닙’ 임상 3상 탑라인 결과로 1차 유효성 지표가 임상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기대를 받았던 신약들이 줄줄이 임상에 실패하자 바이오업계 전반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커졌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7일 보고서에서 “코스닥 비중이 큰 바이오 주식의 수익률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며 “코오롱티슈진, 신라젠 등 이슈가 바이오주 성장 가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제약업계에서는 거듭된 임상 실패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본다. 우선 신약 개발 자체가 굉장히 어렵다.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이니만큼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임상시험 과정에만 1조 원이 넘는 돈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통과 확률도 낮다. 미국바이오협회가 2006~2015년 미국 FDA의 임상자료 9985건을 분석한 결과, 의약품 후보물질이 임상 1상부터 품목승인까지 전 과정을 통과하는 확률은 9.6%에 그쳤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바이오시장은 초기 단계로 글로벌 시장에 약을 내놔본 적도, 성공해본 적도 거의 없다. 실패를 통해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약개발에만 초점을 맞춰 바이오시장을 판단해선 안 된다. 대규모 시장을 장악한 다국적 제약회사에 기술을 수출하는 것도 신약 개발을 완료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성공 과정”이라며 “유한양행 등 기술 수출이 늘어나는 최근 성과를 보면 K-바이오는 성장 중이다. 현재는 산업이 자리 잡기 위한 과정을 겪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라젠이 미국의 미국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로부터 면역항암제인 ‘펙사벡’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 받았다는 소식에 2일 신라젠 주가가 폭락했다. 연합뉴스
다만 우리나라 신약 개발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은 빠지지 않는다. 약의 성공 여부에 대해 면밀히 판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를 받다 보니 신약 개발이 성급히 진행된다. 개발 과정에서 약 효력과 시장성에 의심이 생기거나 문제가 발견돼도 주주들 눈치를 보며 개발을 멈추기 힘들다. 주가를 유지해야 투자금을 계속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관계자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약인지 판단하고 개발해야 하는데 한국 바이오업계는 안목을 가진 전문가가 드물고 개발 경험도 적어 판단력이 부족하다”며 “임상 과정에서 약효나 시장성에 의심이 생겨도 이에 대해 언급하면 주가가 폭락하기에 개발을 멈추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국내 신약 허가 기준이 글로벌 수준에 못 미친다는 점도 문제다. 세계 줄기세포 치료제 8개 중 4개가 한국에서 허가됐으나 이 중 외국에서 허가받은 제품은 하나도 없다. 설대우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는 “현재 한국의 신약 허가 기준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할 만큼 낮다“며 ”일부 제약회사들이 한국 제도에만 매몰돼 득세하다가 미 FDA의 까다로운 기준을 맞추지 못하고 임상에서 실패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설 교수는 또 “글로벌 수준에 맞게 국내 허가 기준을 높이면 국내에서 바이오·벤처기업들의 옥석이 가려지고, 세계 시장에서도 ‘한국에서 인정받은 약들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가 생길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약 허가 기준이 까다로워지면 업계 어려움이 커질 수 있지만 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을 늘리면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설대우 교수는 “임상용 약 제작에도 수십억이 드는데, 미국국립보건원에서는 심사를 거쳐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무료로 테스트용 약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며 “우리 정부도 신약 허가 기준은 높이되 높아진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알짜 기업들을 선별해 지원하는 등 약을 잘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임상에 뛰어들기보단 기술수출을 통해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대규모 글로벌 제약회사에 기술 추출함으로써 대기업의 자본력과 신인도를 활용하고 경험치를 쌓은 뒤 임상에 도전하면 그만큼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태억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 본부장은 “글로벌 제약사들은 파이프라인이 200~300개로 하나가 임상에서 실패해도 다른 신약들로 완충되지만, 우리나라 업계는 파이프라인이 너무 적어 임상 실패 시 회사가 흔들린다”며 “국내만으론 자체 개발이 어려운 만큼 해외에서 사들이는 등 파이프라인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기대 잔뜩 받은 첨생법, 업계는 시큰둥 왜? 첨단바이오의약품 심사·허가기간 단축 등 규제 완화를 뼈대로 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첨생법)’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와 업계에서는 바이오의약품 개발 기간이 단축되고 희귀질환자 치료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정작 업계에서는 바이오산업 육성과 상관없는 ‘빈 껍데기’ 법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첨생법은 재생의료에 관한 임상연구를 진행할 때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심사기준을 완화해주는 법이다. ▲개발자 일정에 맞춰 사전 심사하고 ▲다른 의약품보다 첨단 바이오 의약품을 우선 심사하며 ▲암 등 중대한 질환과 희귀질환 치료제에 한해 임상 2상만으로도 조건부 허가해주는 내용이 뼈대다. 업계에서는 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분위기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보통의 약들은 개발 단계에서 동물실험과 다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거치는데, 세포치료제는 1명을 대상으로만 만드는 약이기에 해당 절차를 밟는 것이 불가하다”며 “첨생법은 세포치료제 특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개발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첨생법이 바이오업계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등 지나친 기대감이 형성돼 있다는 것. 앞의 관계자는 “수익성이 좋으려면 아스피린처럼 하나를 만들어 모든 사람에게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세포치료제는 1명에게 세포를 뽑아내 그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맞춤형 의료”라며 “일부 줄기세포치료 개발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시장성과 수익성이 떨어지는 만큼 업계에서 뛰어들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바이오 성장과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쉽게 시판을 허가해주면 안전·유효성이 불확실한 ‘국산용’ 약들만 양산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사무처장은 “국내 신약 허가 기준을 더 낮추면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들이 쏟아지고,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도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어 대안으로 “주치의제도를 도입해 의사가 환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효과가 분명한 제품만 투약하게 하는 등 1차 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며 “아울러 완화된 규제를 악용해 인보사처럼 허가사항 외의 제품을 만드는 등 탈·불법을 일으키는 업체에 대한 징벌적 제재 조항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