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 사진=이영미 기자
[일요신문] 최근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37)가 두 아들의 국적 이탈 관련해서 이슈의 중심에 섰다. 지난 5일 행정안전부 전자 관보에는 ‘아래 사람들은 국적법 제14조 규정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을 이탈하였으므로 고시(告示)합니다’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국적 이탈자 명단이 공개됐다. 법무부는 국적법 제17조에 따라 대한민국 국적의 취득과 상실에 관한 사항이 발생하면 법무부 장관이 관보에 고시해야 한다. 이후 한 매체를 통해 추신수의 두 아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수백 개의 기사가 쏟아지면서 한동안 추신수와 그 아들의 국적 선택을 두고 뜨거운 이슈가 양산됐다.
추신수의 두 아들 중 장남 무빈(14) 군은 2005년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 차남 건우(10) 군은 2009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소속일 때 미국 병원에서 태어났다. 이후 가족들은 애리조나에서 주로 살다가(아빠가 클리블랜드에서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되는 등 주거가 불안정한 터라 가족들은 계속 애리조나에 머물렀다) 2013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획득한 추신수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계약을 맺게 되면서 애리조나에서 텍사스로 이사했다.
무빈 군과 건우 군은 아빠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리틀야구 팀에서 야구를 접했다. 무빈 군은 성장하면서 풋볼, 농구 등을 두루 경험했고, 지금은 야구와 풋볼에만 전념하고 있다. 무빈 군과 건우 군의 꿈은 운동선수다. 특히 건우 군은 아빠처럼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개인 훈련을 열심히 하는 중이다.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앞으로 미국에서 운동선수로 뛰고 싶어 하는 아이들. 추신수는 지난해부터 이중국적자인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추신수의 측근은 기자에게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추신수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국적을 정리해주는 게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국적 관련해서 법률 전문가에게 문의한 결과 한국 국적을 이탈하려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라도 빨리 결정하는 게 낫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하더라. 국적 이탈을 신고한다고 해서 바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추신수가 아이들의 병역을 기피하려는 목적이 있었다면 은퇴 후에 국적 이탈을 신고했어도 늦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비난은 덜했을 것이다. 추신수는 순전히 아이들이 앞으로 어디에서 살아갈지를 고민했고,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오랜 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9일 법무부 관계자와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 그는 영사관을 통해 국적 이탈 서류가 접수되면 보통 8개월에서 9개월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오래 걸리는 이유가 있었다.
“법무부에서는 국적을 이탈하는 이유를 꼼꼼히 심사한다. 영주 목적, 원정 출산 여부, 병역 기피만을 위한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두고 철저히 체크한다. 추신수 선수의 아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나 거기서 자랐고 학교에 다니고 있다. 14살, 10살이란 나이는 병역 기피를 거론할 만한 나이가 아니다. 향후 미국에서 계속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라 국적 이탈 신고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추신수와 두 아들. 사진=이영미 기자
추신수는 이전 기자와 사석에서 이뤄진 대화를 통해 자녀 교육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었다. 한 달에 절반 이상을 원정 경기로 치르는 메이저리그 특성상 자녀의 교육은 물론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함께 하기가 쉽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들, 야구를 더 잘하고 싶어 하는 둘째 아들, 원정 떠난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딸의 모습을 통해 그는 아내와 아이들한테 큰 미안함과 짐을 안고 있었다. 당시 추신수는 이런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이들이 정체성에 큰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 부모한테서 태어났으니 분명 한국인인 건 맞는데 학교 생활부터 야구 커뮤니티, 교우 관계는 모두 미국 아이들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철저히 한국말을 하게 가르치고, 사람을 대하는 예절, 인사법 등 모든 게 한국식이지만 집을 벗어나면 아이들은 미국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빠의 말에 무조건 순응했지만 무빈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아이들은 내가 은퇴 후에도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 미국식 교육에 익숙한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서 생활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도 미국에서 계속 공부하기를 원한다. 그런 점에서 국적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추신수는 무빈 군과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무빈 군은 당연히 미국에서 공부와 운동을 하고 싶어 했다. 나이가 어린 건우 군은 미국에서 야구 선수로 성공하고 싶다는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형과 같은 선택을 하기로 했다. 딸 소희 양은 국적 문제를 논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8살)였다. 이렇게 해서 추신수는 두 아들의 국적 이탈 신고 서류를 접수하게 된 것이다.
추신수의 측근은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상반된 여론을 접하며 추신수 가족들이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한다.
“선수 자신이 아닌 아이들의 미국 생활을 위해 선택한 국적 문제가 이토록 관심을 받을 줄 미처 생각지 못한 것 같다. 아이들 문제가 논란으로 확산되는 것 또한 가족들한테는 힘든 부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공인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받는 시선은 가족들한테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했다.”
추신수. 사진=연합뉴스
한편에서는 추신수의 두 아들 국적 이탈의 본질은 아이들이 아닌 추신수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즉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추신수가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국가대표 소집에 응하지 않았고 메이저리그에서만 활약하는 부분이 대중의 반감을 샀고, 이번 사태를 확산시켰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서 추신수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송재우 이사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후 두 차례 열렸던 아시안게임(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은 9월 19일 개막, 2018년 인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은 8월 18일 개막)과 올림픽(2012년 런던올림픽 7월27일 개막,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8월 5일 개막)은 메이저리그 시즌 중이라 참가 자체가 어려웠다. 2013년 WBC대회는 1년 후 FA 자격 획득 문제와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된 직후라 스프링캠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WBC대회는 선수도 적극적으로 참가 의지를 피력했지만 텍사스 레인저스 단장은 물론 구단주까지 나서 추신수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을 만류한 상황이었다(WBC대회는 4년마다 3월에 개최한다). 추신수 선수가 일부러 국가대표팀 소집을 거부하거나 회피한 적은 없었다.”
오는 11월 제2회 프리미어12대회가 열린다. 이번 프리미어12는 2020년 도쿄올림픽 본선행 티켓이 걸려 있어 1회 대회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부여됐다. 2015년에 열린 제1회 프리미어12에는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들의 프리미어12 출전이 제한됐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와 관련해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입장 변화를 나타내지 않는 중이다. 즉 류현진, 추신수가 프리미어12에 출전하고 싶다고 해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승인이 나지 않으면 출전 자체가 어려워진다.
지난 7월 김경문 감독은 2020년 도쿄올림픽 예선을 겸한 프리미어12 1차 예비 엔트리 90명의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최지만은 직접 출전 의사를 밝혀 예비 명단에 포함). 10월 3일 최종 엔트리 28명이 확정 발표될 예정이다. 김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합류할 수 있다면 코칭스태프와 의논해서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포스트시즌을 치를 것으로 보이는 LA 다저스 류현진의 합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남은 한 명은 추신수. 물론 그가 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절차와 승인이 뒤따라야 하겠지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국가대표팀 승선 기회라 그 결말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