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 수원대 교수
우리가 고등학교 때는 훈민정음을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작품이라고 배웠다. 그래서인지 훈민정음이 신미라는 대사가 만든 것이라는 감독의 해석이 독특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상할 것이 없다. 사서삼경을 읽었느냐, 이해했느냐가 중요했던 조선사회에서 한자와 한문은 양반들의 권력의 원천이었다. 더구나 사대주의가 일상인 양반들이 누구나 차별 없이 배울 수 있는 쉬운 문자를 “백성들을 위해” 저항 없이 만들었을 리 없다. 유교로부터도, 양반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스님이 왕과의 교감을 통해 백성들의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세종과 신미스님의 가교역할을 한 소헌왕후는 어질고 단아한 자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언제까지 우리가 편지 한 통 쓰지 못해 친정어머니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까막눈으로 살아야 하느냐.”
세종은 대왕이다. 그는 양반과 상민뿐 아니라 노비의 삶에도 관심이 있어서 노비들이 출산을 하면 휴가로 백일을 줬던 애민(愛民)의 왕이었다. 그런 왕이었으니 “모든 백성이 문자를 읽고 쓰는 나라”의 꿈도 꿀 수 있었으리라. 신하들 몰래 신미에게 일을 시키고자 한 세종이 신미에게 말한다. “나는 공자를 내려놓고 갈 테니 넌 부처를 내려놓고 와라.”
신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신미는 왕의 부름이 감지덕지해서 예, 예, 하는 노예가 아니었다. 그는 그런 세종에 견줄 만한 인격을 가진 인물이었다. “아니오, 난 부처를 타고 가겠습니다. 주상은 공자를 타고 오십시오.”
진정한 소통은 바로 이런 인격들의 긴장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단순히 한글창제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나’와 다른 신분, ‘나’와 다른 경험, ‘나’와 다른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 함께 꿈꾸는 세상,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그런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니 신미스님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신미스님은 세종대왕이 ‘우국이세 혜각존자(祐國利世 慧覺尊者)’라는 법호를 내린 실제 인물이라 한다.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한, 지혜로운 존자란 뜻이니 ‘나랏말싸미’가 만들어질 법도 하다.
그래도 한글을 누가 만들었냐고 물으면 나는 분명히 세종이 만들었다고 할 것이다. 세부적 작업을 누가 했건 상관없이 세종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이 아름다운 한글을 쓸 수 있었겠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 뜻을 글에 실어 펴보지 못하는 백성들의 사정을 이해해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세운 세종, 그리하여 그는 대왕이다. 한반도에 그런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은 이 땅의 축복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