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라 페레즈
1970년에 태어난 다니엘라 페레즈는 어릴 적부터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아버지가 엔지니어였던 루이스 페레즈. 어머니 글로리아 페레즈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TV 드라마 작가였다. 다니엘라 페레즈는 다섯 살 때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틴에이저 시절 리우데자네이루의 가장 유명한 무용단 중 하나인 ‘바실로우, 단소우’의 입단 제의를 받았을 정도다. 하지만 다니엘라의 꿈은 배우였다. 여기엔 작가였던 엄마의 영향도 컸는데, 결국 글로리아 페레즈가 대본을 쓴 드라마로 다니엘라는 1989년에 데뷔한다. 탱고 댄서 역할이었고, 이 드라마에서 만난 배우 라울 가졸라와 1990년에 결혼한다. 스무 살의 이른 결혼이었다.
단역이었지만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후 다니엘라 페레즈의 인기는 급상승한다. 두 번째 드라마인 ‘벨리 렌트’(1990)에선 카페에서 춤추는 댄서로 등장했는데 놀라운 춤 솜씨와 카리스마로 인해, 작은 역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출연 비중이 커졌고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이 역할은 결정타였고, ‘세상의 소유자’(1991)와 ‘몸과 마음’(1992)에선 여주인공의 여동생 역을 맡게 된다. 특히 ‘몸과 마음’을 통해 다니엘라 페레즈는 차세대 ‘브라질의 연인’으로 각광 받았고, 주인공보다 큰 인기를 끌었으며, 급기야 팬들은 다니엘라의 비중을 늘려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92년 크리스마스 특선 드라마에선 성모 마리아 역할을 맡았으니, 당시 다니엘라는 가장 뜨겁게 떠오르던 스타임이 분명했다.
다니엘라 페레즈
하지만 인기는 그녀에게 비극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몸과 마음’에서 그녀의 연인으로 나왔던 길레르미 드 파두아는 다니엘라 페레즈 때문에 자신의 분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파두아는 페레즈에게 자신의 분량을 늘려 달라고 부탁했다. 페레즈의 엄마가 드라마의 작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처럼 분량은 늘지 않았고, 파두아는 끊임없이 페레즈를 괴롭히며 요구했다. 페레즈는 분량을 확보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오히려 분량은 점점 줄어들었고 파두아는 자신이 드라마에서 잘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앙심을 품은 그는 행동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페레즈를 죽이기로.
한편 당시 임신 중이었던 파두아의 아내 파울라 토마즈는 드라마를 보며 질투심에 휩싸였다. 남편이 젊은 여배우와 사랑을 나누고 키스를 하는 러브신이 그녀를 분노하게 만들었던 것. 그녀 역시 페레즈에게 칼을 갈았고, 그렇게 파두아와 토마즈 부부는 의기투합을 했다. 페레즈를 죽이기로 말이다. 두 사람은 살인을 약속하며 서로의 성기에 상대방의 이름을 타투로 새기기까지 했다.
결의의 날은 1992년 12월 28일이었다. 성탄절 특선 드라마에서 마리아 역까지 맡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다니엘라 페레즈는 팬들에게 둘러싸여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가까스로 팬들에게 벗어나 차를 몰고 가던 그녀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고, 멀리서 그녀를 감시하던 파두아와 토마즈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페레즈를 따라붙었다. 그리고 저녁에, 어느 공터에서 페레즈의 차와 그 안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온몸에 자상을 입은 그녀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다니엘라 페레즈와 살인자 길레르미 드 파두아
경찰에 붙잡힌 파두아와 토마즈 부부는 순순히 자백했다. 파두아는 역할이 잘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임신 상태였던 토마즈는 예민한 심리 상태에서 생긴 질투심을 이야기하며 차에 있던 가위로 저지른 우발적 살인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시관의 의견은 달랐다. 사용된 무기는 양면이 날카로운 단검이었고, 찌른 자국이 18군데나 되는 흉악한 범죄라는 것. 목과 폐와 심장을 칼로 찔렀는데 특히 심장에만 8차례 찌른 것으로 보아 죽이려는 목적이 매우 강했다고 검시관은 증언했다. 그리고 페레즈의 차에 혈흔이 거의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두 살인자는 차가 아닌 다른 곳에서 페레즈를 죽인 후 시신을 차에 태우고 공터까지 몰고 와 범행은 은폐하려 했다.
법원은 직접 칼을 휘두른 파두아에게 19년형을 선고했고 아내인 토마즈는 석방했다. 하지만 이후 감형되어 파두아는 6년 만에 교도소에서 나왔다. 이러한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한, 죽은 다니엘라 페레즈의 엄마인 글로리아와 남편인 가졸라는 서명 운동을 벌이며 브라질 형법의 모순을 지적하고 법정 투쟁을 벌였다. 그들의 활동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강력 범죄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페레즈가 죽은 지 10년이 되는 2002년 브라질 법정은 파두아와 토마즈, 두 범죄자가 유족인 엄마와 남편에게 각각 44만 헤알(약 1억 3600만 원)을 주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페레즈의 남편인 가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돈으로 보상 받을 순 없다. 나에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다. 살인자들은 감옥에 있어야 한다. 난 그 어떤 돈도 필요하지 않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