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많지만, 인사청문회에서 충분히 답하겠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여야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국가 전복을 꿈꾸던 사람이 법무부 장관에 기용될 수 있느냐”며 조국 후보자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사건을 꺼내 들었다. 과거 조국 후보자(당시 울산대 전임강사)가 당시 연루됐던 것은 사노맹 사건으로, 사회주의 체제 개혁과 노동자 정당 건설을 목표로 1980년대 말 결성된 지하 조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의 조국 후보자 공세에 대해 “공안검사적 시각이다. 시대착오적 구태정치”라며 조 후보자 엄호에 나섰는데, 조 후보자 역시 “할 말이 많지만 인사 청문회에서 말씀드리겠다. 인사 청문회를 앞둔 후보자로서 모든 문제에서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그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조국 후보자의 당시 사노맹 사건 판결문을 입수했다. 1994년 대법원은 최 선생, 고 선생 그리고 정성민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한 조국 후보자가 활동한 사노맹에 대해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헌법의 대전제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단체”라며 유죄를 판단했다. 조국 후보자는 함께 기소된 황 아무개 씨 등 4명 중 대법원에 상고한 유일한 피고인이었는데, 대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조국 법무부장관 내정자가 서울 종로구 적선동 현대빌딩에서 장관 내정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엘리베이터로 이동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 대법원, 엄격 판단 하면서도 “‘반국가단체’ 아니다”
무장봉기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목표로 1980년대 말 만들어진 조직 사노맹.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한 박노해(필명)와 백태웅 씨가 의기투합했는데, 1989년 11월 사노맹 결성을 공개 선언했다.
그리고 조국 후보자는 울산대 교수로 재직하던 1993년 사노맹 산하 기구인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 설립에 참여한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른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1990년대 초 사노맹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해 아지트 습격 등 적극적인 수사를 벌였는데, 당시 조 후보자도 6개월 동안 구속 수감 됐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판결문과 과거 기사 등에 따르면, 조 후보자는 1991년 반국가단체인 사노맹 활동에 동조하는 ‘남한사회주의과학원’에서 운영위원 겸 강령연구실장을 맡았다. 단체의 설립 제안문과 임시강령, 임시규약을 읽어 보고 동참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 그는 각 진보정당의 강령을 정리해 운영위원들에게 전달하는 등 이론적 작업을 하는 동시에, 기관지에 해당하는 ‘우리사상’도 제작, 판매했다.
특히 잡지 2호에는 ‘남한 사회에서의 혁명은 무장봉기에 대한 고려 없이 승리를 기약할 수 없다. 1994년 봄까지는 기필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을 건설하자’는 표현도 포함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과 2심을 거쳐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은 조 후보자. 이에 함께 기소된 4명 가운데 상고장을 제출하며 홀로 검찰과 첨예하게 다퉜다. 검찰은 “조 후보자가 소속됐던 사과원은 ‘반국가단체’”라며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조 후보자는 “국가보안법에 관한 법리오해가 있다, 헌법이 보장한 양심·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의 범위에 속한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심리를 맡은 대법원 형사2부(재판장 이용훈 대법관, 주심 박준서 대법관)의 판단은 둘 다가 아닌, 원심의 손을 들어줬다. 사노맹 산하 기구인 ‘남한사회주의과학원’이 반국가단체는 아니지만 이적단체에 해당한다면서도, 당시 조 후보자가 한 행위는 헌법이 보장한 양심·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해당할 수 없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사노맹은 국가의 존립, 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헌법의 대전제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단체”라며 “피고인 조국은 ‘사과원’이 반동적 파쇼권력을 타도하고 민중권력에 의한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는 데 목적을 두고 설립됐고, ‘사노맹’의 활동에 동조할 목적을 가진 단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가입했다”고 판단했다.
또 기관지 격인 “우리사상 제2호를 제작, 판매하는 등 반국가단체인 사노맹의 활동에 동조할 목적으로 표현물을 제작, 판매했다”며 “학술 및 연구단체가 아니라 반제반독점민중민주주의혁명을 통한 노동자계급 주도의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주장하는 정치적 단체로서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와는 서로 용납되지 아니하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3항 소정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목적의 소위 이적단체”라고 유죄를 판단한 원심이 옳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도 사과원에 대해서는 ‘반국가단체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법원은 “1차적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 이론을 연구하여 이를 선전, 전파하고 장차 성립하게 될 사회주의 정당의 강령을 기초함으로써 전체 사회주의운동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면서도 “사과원이 그 자체로서 폭력적 방법으로 정부를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국가변란을 직접적인 1차적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1990년 10월 30일 김영수 당시 안기부 제1차장이 정부종합청사에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1심에서는 달랐던 판단, 재판장들 누군지 보니
조국 후보자가 활동한 사과원에 대해서 1심부터 판단이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재판의 재판장들은 차후 요직을 맡게 된다.
조국 후보자 1심을 맡았던 것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 당시 1심 재판장이었던 그는 조 후보자의 활동에 대해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국가단체 활동”이라며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해 “사과원은 사노맹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을 뿐이라며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이적단체”라고 보고 1심보다 감형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그리고 2심을 존중한, 대법원 형사2부 재판장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법원장을 역임한 이용훈 당시 대법관이었다. 법원 내 엘리트 코스를 밟고 대법관이 된 그는 추후 노무현 정부 때 대법원장(2005~2011년 재임)이 된 뒤 공판중심주의 강화, 국민참여재판 도입해 법원에 적지 않은 변화를 줬다. 재판장이었던 이용훈 전 대법원장과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고(故) 곽윤직 서울대 법대 교수가 판사 제자들을 중심으로 꾸린 민사판례연구회(민판연)의 회원으로, 보수 계열 엘리트 판사였지만 서로 다른 판단을 한 셈이다.
# 정치권 빠르게 조국 분석 시작
정치권도 비상에 걸렸다. 특히 보수 계열 야당들은 조국 후보자의 국보법 위반 혐의 당시에 대한 분석 및 자료 수집에 나섰다. 일부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실 보좌진들은 조 후보자를 어떻게 검증할지 긴급회의를 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야당 관계자는 “황교안 대표가 사노맹 등 국보법 위반 얘기를 한 뒤 판결문 및 당시 사건 관련 자료를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재산 형성 과정 등 여러 이슈가 있겠지만, 국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국가관’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냐, 국보법 이슈는 청문회에서 많이 언급될 키워드”라고 평가했다.
다만 사노맹 사건이 이미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재평가됐다는 점이 야당 입장에선 걸림돌이다. 이미 1990년 3월 1일 사노맹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특별사면 및 복권 조치를 받았으며 2008년 국무총리 산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보상심의위원회’는 사노맹 사건의 박노해(필명)와 백태웅 씨를 ‘민주화 운동 인사’로 인정했다.
게다가 사노맹 사건 재판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등 공안 당국의 고문 수사가 드러나기도 했다. 세계인권감시기구인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는 1994년 7월 ‘94년 연례보고서’를 통해 사노맹 사건 관련자들을 양심수에 포함시켰으며 조 후보자는 국제앰네스티에서 정하는 ‘올해의 양심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