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견된 추락
이마트는 2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4조 5810억 원, 영업손실 299억 원을 기록했다고 최근 잠정 공시했다. 이마트가 적자를 낸 건 1993년 11월 회사 창립 이후 처음이다.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4.8% 늘었지만 당기순손실이 266억 원으로 집계되며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2분기까지만해도 558억 원의 이익을 냈던 할인점이 올해 43억 원의 손실을 냈다. 쓱닷컴(-113억 원), 이마트24(-64억 원), 조선호텔(-56억 원) 등 자회사들도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2분기가 전통적 비수기고,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늘어 ‘적자 전환’ 원인이 됐다”며 “일시적으로 실적이 부진했던 것일 뿐, 하반기에는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마트의 이번 적자는 예견된 일이었다. 증권사들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오프라인 할인점들의 손실로 인해 “이마트가 적자를 낼 것”이라고 시장에 경고해 왔다. 문제는 적자 폭이 예상보다 훨씬 컸다는 점이다. 당초 증권업계에선 이마트의 올해 2분기 영업적자 규모를 50~100억 원 안팎으로 추정했다. 이번 적자 수준인 300억 원 대를 예상한 곳은 없었다. 사실상 이번 적자가 ‘어닝쇼크’ 수준인 셈이다.
이마트 적자가 가지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마트는 국내 유통업계를 이끄는 1위 업체다. 대형마트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점포수부터 매출 규모, 영업이익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경쟁업체들보다 앞서 있다. 이마트는 유통업계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및 오프라인 사업장 침체 우려 목소리에도 선방하던 이마트가 결국 무너지면서 먹구름이 더욱 짙어졌다”고 말했다.
신세계 그룹 차원에서도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이마트는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현금창출원)였다. 그동안 분기별로 1500~200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안겨줬지만 앞으로는 이를 담보할 수 없게 됐다. 후계구도에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현재 창립자인 이명희 신세계 그룹 회장이 장남 정용진 부회장에게 이마트를 넘기고, 딸 정유경 총괄사장에게는 백화점을 넘겨주는 작업을 점진적으로 진행 중이다. 당초 아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넘기려 했지만 이마트가 흔들리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신세계 백화점은 올해 2분기 매출 1조 5060억 원, 영업이익 681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늘고 영업이익은 14.7% 줄었지만 흑자다.
이마트가 올해 2분기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사진=고성준 기자
이마트가 추락하면서 시장이 곧바로 반응했다. 지난 9일 올해 2분기 적자를 공시한 직후부터 아마트 주가는 꾸준히 떨어져 12일엔 장중 10만 4500원까지 내리며 사상 최저가를 기록했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마트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강등했다. 10개 투자적격 등급 중 최하위 등급이다. 실적 악화에 더해 투자를 통한 돌파구를 마련하기도 더 힘들어졌진 셈이다.
이마트는 곧바로 방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규모 자사주 매입이 첫 번째다. 지난 13일 이마트는 임시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90만 주(발행주식 총수의 3.23%)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약 950억 원 규모다. 8월 14일부터 11월 13일까지 장내 매수를 통해 취득하기로 했다. 이마트의 자사주 취득은 2011년 6월 신세계에서 분할 상장된 이후 처음이다. 시장에 과도하게 풀린 주식을 회사가 사들여 사상 최저가로 떨어진 주가를 안정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점포를 매각하는 게 두 번째다. 사실상 점포 구조조정인데, 역시 이마트 창립 이래 첫 시도다. 점포 건물을 매각한 뒤 재임차해 운영하면서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세일 앤 리스백, sale & leaseback)이다. 소유권은 다른 투자자에게 넘겨 주지만, 자산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현금을 조달할 수 있다. 재무건전성은 높이고 실탄을 확보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마트는 총 10곳 안팎의 점포를 이 방식으로 정리하고 총 1조 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투자자 모집 등 모든 과정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이마트 관계자는 “일렉트로마트와 노브랜드 등 경쟁력 있는 전문점은 출점을 늘리고 실적이 부진한 전문점은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성 중심의 운영을 강화할 것”이라며 “수익성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밖에 내놓은 대안은 가격 할인 정책이다. 가격을 지금보다 더 낮춰 오프라인 매장으로 고객들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반짝 세일에 그치지 않고 낮은 가격에 팔아도 이익을 내는 게 목표다. 한꺼번에 대규모 수량을 구입하는 조건으로 단가를 크게 낮추는 방식이다. 이마트는 최근 일부 품목에서 가능성을 확인했고, 이를 다른 품목들로 확대해 적용할 방침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이마트가 비교적 발빠르게 대응책을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실적이 잠깐 회복될 순 있어도, 완전한 부활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 시장이 급성장하고, 오프라인 사업은 하락세에 접어든 시장 판도의 변화 탓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2분기 실적 악화 원인 중 하나였던 재산세 부담이 하반기에는 없겠지만, 오프라인 사업장의 침체는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이마트 주가는 14일 종가 기준 11만 1000원으로, 여전히 최저가 수준을 맴돌고 있다. 자사주 매입 공시 이후 반등했지만 그 이상을 끌어올리진 못했다. 점포 구조조정을 통한 실탄 확보 역시 일시적인 처방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초저가 전략은 실효성이 발목을 잡는다. 이미 온라인에서 오래 전부터 진행 중인 전략이다. 오히려 인건비와 임대료 등 고정비용을 감안하면 초저가 전략은 팔면 팔수록 손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프라인 사업장이 온라인에 맞설 수 있었던 사실상 유일한 무기인 신선 식품 등 식료품도 영역을 뺐기고 있다. 식료품만은 직접 보고 고를 수밖에 없다는 전략이었는데, 최근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당일배송과 품질보증 등의 마케팅으로 사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이마트가 SSG닷컴에 힘을 싣고 있지만, 온라인 시장에선 후발주자에 불과한데다 경쟁도 치열해 전망도 불투명하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오프라인 사업장 전반이 침체되는 흐름이라 이마트가 이를 홀로 막긴 어려울 것”이라며 “지금까지 이마트가 내놓은 대응책들도 매출이나 수익성을 구조적으로 높이는 방식은 아니다. 실적 개선 가능성보다 어닝쇼크가 반복될 가능성이 보다 큰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