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겠다”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파격 경영실험’이 실패로 끝날 조짐을 보인다. 사진은 삐에로쑈핑 매장 전경. 박정훈 기자
앞서 지난 6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노조)은 지난 6월 11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경영 실패 책임을 이마트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규탄한 바 있다. 당시 노조는 제주소주와 이마트24 등 정 부회장이 추진하는 사업마다 어마어마한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나 투자 실패를 이마트의 인력감축과 구조조정으로 전가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마트 측은 “인위적으로 인력을 줄인 사실이 없고, 투자 단계이니만큼 경영실패라 판단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근 그 결과가 숫자로 드러나고 있다. 이마트에서 특히 부진이 심각한 곳은 전문점 부문이다. 이마트 전문점 사업부는 2018년 2분기 총매출 1906억 원에서 올해 2분기 2611억 원으로 37% 급증했으나 같은 기간 영업손실이 160억 원에서 188억 원으로 적자가 심화됐다. 이마트는 “핵심브랜드(노브랜드, 일렉트로마트)를 제외한 기타 전문점 적자 확대”에 따라 하반기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문점 효율화를 가속화할 계획을 밝혔다.
지난 7월까지 부츠는 전국 33개 매장 가운데 절반 이상인 18개 매장을 폐점했고, 삐에로쑈핑은 전국 9개 매장 가운데 2개 매장을 철수했다. 이마트는 2019년 총 33개 점포를 정리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폐점할 경우 연간 영업이익으로 환산 시 136억 원이 증가한다는 것이 이마트의 설명이다.
부츠는 정용진 부회장이 2012~2015년 운영한 드럭스토어 ‘분스’의 실패를 딛고 재도전한 H&B스토어다. 2017년 세계 최대 드럭스토어 월그린부츠얼라이언스와 손잡고 ‘부츠’를 국내에 들여온 정 부회장은 타 H&B스토어와 달리 프리미엄 콘셉트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마트 자체 개발 화장품 브랜드 ‘센텐스’, ‘브릭스톤’과 화장품 사업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가능성도 점쳐졌다. 그러나 부츠는 CJ의 ‘올리브영’, 롯데의 ‘롭스’ 등과 경쟁에서 뒤처졌다.
지난해 6월 선보인 ‘삐에로쑈핑’은 정 부회장이 오픈 전부터 “1년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준비했다”고 강조한 야심작이다. 일본의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만물잡화 전문점 삐에로쑈핑의 콘셉트는 ‘파격’이다. 비누부터 명품백까지 종류와 상관없이 다양한 제품이 불규칙하게 진열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달 누적 방문객 480만 명을 돌파한 삐에로쑈핑은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매출에서는 아직 긍정적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폐점한 삐에로쑈핑 의왕점과 논현점은 각각 지난해 11월과 12월 오픈한 곳으로서 출점 6개월여 만에 문을 닫았다. 이마트 관계자는 “브랜드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좁은 매장을 철수한 것”이라며 “하반기에도 추가 출점 계획이 있다”고 강조했다. 폐점한 삐에로쑈핑 매장 2곳은 규모가 약 660㎡(200평) 내외로 평균 1320㎡(400평) 규모로 운영되는 타 매장과 달리 만물 잡화점 콘셉트를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마트는 부츠가 정리 수순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앞의 이마트 관계자는 “전문점의 경우 수익성 중심으로 운영하는 만큼 수익이 저조한 점포들을 정리하게 됐다”며 “부츠의 경우 외부 점포를 정리해나가고 있고, 대신 온라인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용진표’ 시리즈의 부진한 성적은 소주 브랜드 ‘푸른밤’과 부티크 호텔 브랜드 ‘레스케이프’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푸른밤’은 이마트가 2016년 12월 지분 100%를 인수한 제주소주의 한 브랜드다. 제주소주는 2018년 말 기준 127억 4300만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년(영업손실 59억 5850만 원) 대비 2배 늘어난 수치다. 호텔 ‘레스케이프’는 정 부회장이 지난해 7월 신성장동력으로 호텔사업을 꼽으며 내세운 첫 자체 브랜드다. 그러나 레스케이프를 운영 중인 신세계조선호텔은 2018년 76억 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러한 위기를 정면돌파할 뜻을 밝혔다. 이마트는 지난 13일 공시를 통해 949억 5000만 원(90만 주)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1조 원 규모의 자산 유동화를 알렸다.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보유 중이던 할인점 자가점포 10여 개 부동산을 매각, 이를 다시 임차해 운영할 계획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부회장의 신사업 부진에 대한 책임과 이마트의 앞날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여전하다. 정용진 부회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정유경의 ‘한국형 세포라’, 세포라 한국 진출 소식에 긴장 정 부회장의 동생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의 야심작 중 하나인 프리미엄 뷰티 편집숍 ‘시코르’는 매출 목표 대비 10%를 초과 달성하는 등 순항 중이다. 2016년 대구에 최초로 매장을 오픈한 시코르는 잇단 추가 출점으로 현재 전국 24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시코르의 성과는 종종 정용진 부회장의 사업 부진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 사장의 시코르의 앞날도 불안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는 10월 세포라의 한국 직접 진출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고급화로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는 시코르는 처음부터 세계 최대 화장품 편집매장 ‘세포라’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코르는 출점 당시 ‘한국의 세포라’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였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국내 화장품 소비자들은 외국 브랜드와 고가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며 “원조 ‘세포라’의 등장이 시코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시코르는 비록 마케팅 경쟁력은 떨어지지만 외국 브랜드와 기술제휴하는 등 품질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며 “유통망과 마케팅 차별화에 집중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여다정 기자 |
이마트 신용등급 줄줄이 하락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가 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부적격 기업으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온라인 및 모바일 쇼핑 확산으로 오프라인 중심의 할인점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가운데 공격적인 신규 투자도 성과가 불투명해서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 14일 이마트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지난 5월 9일 신용등급을 Baa2에서 Baa3로 하향한 지 불과 석 달 만이다. 부정적 등급이니만큼 한 번만 더 하향 조정되면 Ba1이 된다. 투자부적격의 첫 등급이다. 무디스의 하향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대형마트 사업부문에서 경쟁심화로 향후 1~2년간 수익성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확대되었고 ▲차입금이 2019년 말 약 6조 7000억 원으로 2018년 말 약 5조 7000억 원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며 ▲온라인 쇼핑몰 대규모 투자 등 구조조정 부담 등이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도 지난 6일 이마트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낮췄다. 현재 투자적격등급의 가장 아래다. 지난 5월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조정한 직후 역시 석 달 만이다. S&P는 추가 하향 여지도 남겼다. 다음 단계는 BB+로 투자주의 대상이다. 이마트는 올 초 신세계와 함께 온라인 사업 부문을 따로 떼어내 통합법인 SSG닷컴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어피니티 등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7000억 원의 자본을 유치했다. 추가로 3000억 원을 유치할 예정이어서 총 외부조달 자본은 1조 원이다. 2023년 말까지 총매출(GMV) 요건 또는 기업공개(IPO)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FI는 이마트에 2024년 5월 1일부터 2027년 4월 30일까지 소유주식 전부를 대주주가 매수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사업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자본으로 조달한 1조 원이 모두 빚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마트는 점포 일부를 팔고 다시 임대하는 방식으로 약 1조 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차입금 축소보다 투자를 위해서다. 신규 투자가 성공하지 못하면 재무무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