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에서 열린 2019 K리그 U18&17 챔피언십.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일요신문] 역대 최고 성과를 거둔 지난 2019 폴란드 U-20 월드컵에 나선 대표팀은 ‘출신 성분’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이번 대회에 나선 대표팀 엔트리 21명 중 K리그 유스팀 출신 선수가 12명(57%)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K리그 유스팀 출신 선수의 비율은 최근 3개 대회에서 점차 확대(33%→52%→57%)돼 왔다. 10여년 넘게 이어져 온 K리그 유스 정책이 결실을 맺고 있는 모양새다.
이처럼 한국 축구 근간을 이루고 있는 K리그1, K리그2 22개 구단 U-18팀이 경북 포항에 집결했다. 이곳에선 지난 7일부터 2019 K리그 U18&17 챔피언십이 열리고 있다. K리그 유스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에 ‘일요신문’이 직접 다녀와 현장 분위기를 전한다.
연령별 대표팀 재목을 찾아 나선 정정용 U-20 대표팀 감독(왼쪽)과 김정수 U-17 대표팀 감독(가운데)도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이번 대회는 많은 유럽 스카우터들이 현장을 찾아 관심을 더하기도 했다. 이들의 소속은 아우크스부르크, 묀헨글라트바흐, 프랑크푸르트, 프라이부르크, 쾰른, 레버쿠젠, 볼프스부르크(이상 독일),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였다. 지난 12일 포항 북구 양덕구장을 찾은 이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전반과 후반, 경기장을 이동하며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확인하려 노력했다. 경기를 보면서도 연신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국내 고교 축구 대회에 등장한 장신의 독일인 10여명은 이채로운 풍경을 자아냈다. 이들이 관중석으로 들어서자 자녀를 응원하던 학부모들은 ‘유럽진출의 꿈’에 부풀어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앞서 고교생 신분으로 독일에 진출한 천성훈(인천 대건고→FC 아우크스부르크)의 사례가 이 같은 상황을 만들어 냈다. 한국내 에이전트는 “천성훈이 지난해 이 대회 활약으로 독일 진출에 성공했다. 2년 전 정우영(프라이부르크) 또한 이 대회가 발판이 됐다”면서 “국내 에이전시와 구자철, 지동원, 홍정호, 서영재 등의 이적 작업을 함께한 독일 현지 에이전트가 독일, 오스트리아 8개 구단 스카우터들을 데리고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카우터들이 포항(포철고), 서울(오산고), 수원(매탄고), 울산(현대고), 광주(금호고)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고 귀띔했다. 다만 정우영, 천성훈과 같은 즉각적인 성과가 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했다. “물론 이번 대회에서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어린 선수가 있다면 바로 데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대회를 지켜보면서 주요 유망주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겠다는 목적도 있다”고 전했다.
제2의 정우영, 천성훈을 찾아 나선 이들은 대회를 개최한 한국프로축구연맹이나 특정 에이전시의 초청이 아닌 자발적으로 방한했다. 당연히 체재비 등도 각자가 부담했다. 일부 국내 에이전트들이 나서 포항 시내 이동이나 식사 등에 안내만을 도왔다.
한 여름에 열리는 U18&17 챔피언십은 전 경기가 야간에 치러진다.
약 8000km 떨어진 곳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대회가 된 U18 챔피언십은 ‘국내 최고의 유소년 축구대회를 만들겠다’는 연맹의 의지가 담겼다. 이날 대회장을 찾은 것은 유럽 스카우터뿐만이 아니었다. U-20 대표팀 신화를 만든 정정용 감독도 현장에서 다음 대회에 나설 후보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의 옆에는 U-17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정수 감독도 함께였다.
그는 대회에 나서는 선수들의 경기력에 좋은 평가를 내렸다. 정 감독은 “고3 아이들에겐 마지막 대회다. 대학 진학이 걸린 이들에겐 간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대회 수준이 높다”고 평가했다. 그는 인접 구장에서 열리는 2경기를 각각 전후반을 나눠 관찰했다.
정 감독의 평가처럼 연맹은 U18&17 챔피언십을 두고 ‘최고의 대회’라 자부한다. 각 연령별 대표팀 엔트리의 상당 부분을 이들이 차지하듯 K리그 유스팀은 일반 고교 축구부에 비해 탄탄한 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연스레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어린 선수들 간의 맞대결이 성사되는 것이다.
대회 창설 전에는 이 기간 동안 K리그 유스팀들이 일반 고교와 함께 토너먼트 대회들을 치렀다. 프로 구단의 지원과 함께 강한 전력을 갖췄기에 대회 상위권은 대부분 이들의 차지였다. 성적을 내야하는 일반 고교로선 K리그 유스팀이 대회에 함께 나서는 것이 때론 부담스럽기도 했다. 내심 K리그 유스팀은 ‘빠져줬으면’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이는 U18&17 챔피언십이 탄생한 계기이기도 했다.
이 대회가 U18&17 챔피언십으로 불리는 이유는 17세 이하 선수간의 맞대결도 별도로 열리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고교 축구대회에서 저학년 선수들은 출전 기회를 잡기가 힘들다. 중고교 1학년 선수의 경우 1년 내내 실전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이에 연맹에서는 3학년이 나설 수 없는 U17 부문을 추가했다.
혹서기라 할 수 있는 8월 7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대회는 전 경기를 야간에 치른다. 연맹 관계자는 “수업 결손을 막기 위해 방학 기간 대회를 치른다. 그런데 더운 날씨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경기를 18시 이후로 조정했다”면서 “어린 선수들에게 야간 경기를 경험하게 해주는 차원도 있다. 햇빛이 내리쬐는 한낮에는 경기력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또 결승전은 포항 스틸러스의 홈 경기장인 스틸야드에서 열린다. 어린 선수들에게 국내 최고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며 선수로서 꿈을 키우게 하려는 의도”고 말했다. 더위를 피해 늦은 시간 경기가 열렸지만 12일 저녁 포항 일대 기온은 30℃ 이상이었다. 이에 모든 경기 전후반 30분 언저리에는 선수들에게 수분 섭취를 하도록 2~3분간 ‘쿨링 브레이크’가 적용되기도 했다.
오산고 학부모들의 열띤 응원. 규모는 달랐지만 형식은 프로팀 응원과 흡사했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말처럼 대회는 선수들만의 무대가 아니었다. 선수들을 따라 나선 응원단의 열기도 뜨거웠다. 선수 부모는 물론 형제, 조부모까지 현장을 찾기도 했다.
특히 서울 오산고 학부모들은 프로팀 FC 서울 경기 못지않은 응원전으로 눈길을 끌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미니 확성기를 타고 전해졌다. 경기 중에는 프로 경기와 같이 북, 부부젤라 소리와 함께 선수콜, 응원가 등이 이어졌다.
오산고 수비수 임도훈의 아버지 임정욱씨는 “이렇게나마 체계적으로 하는 것은 이번 대회가 두 번째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좋아해줘서 쑥스럽지만 부모님들이 용기를 내 하고 있다(웃음).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힘을 낼까 고민하다가 이런 계획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임도훈의 여동생들인 소율, 세율 양은 쿨링 브레이크와 하프타임을 이용한 댄스 공연으로 응원단의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유럽 스카우터들도 이 같은 응원전이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지었고 때론 함께 박수를 보냈다.
현장을 찾은 학부모들은 경기 응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회비를 모아 아침저녁으로 선수들 숙소에 간식을 넣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경기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는 선수들의 손에도 간식을 쥐어 주느라 바쁘다.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려 아들의 팔다리를 주무르는 학부모들의 손에서는 간절함이 묻어나왔다. 경기 후 가벼운 부상으로 절뚝 거리는 아들을 보며 눈물 짓는 학부모도 있었다.
이들 사이에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이 되기도 했다. 12일 저녁 팀이 패배한 이후 한 학부모가 불같이 화를 냈다. 경기에 진 학생이 감독의 강한 질책에 눈물을 보이자 이를 본 부모가 화를 참지 못한 것이다. 그는 “패배의 책임을 한 명의 선수에게 물었다”며 분개했고 이미 숙소로 돌아가는 구단 버스에 올라있던 감독을 끌어 내리고 짧은 ‘면담’ 시간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다른 학부모들이 그를 말리며 작은 소란도 벌어졌다.
경기장에는 선수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돌 가수 팬들 사이에서나 보인다는 ‘대포 카메라’가 등장하기도 했다. 친인척이 아닌 순수 팬들도 유스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보기위해 나선 것이다. 아산 팬 나경 씨는 “아산 무궁화 프로팀을 좋아하다 자연스레 유스팀까지 응원하게 됐다”면서 “바쁘지만 선수들을 직접 보고 응원하기 위해 시간 내서 왔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생인 그의 집은 경남 진주였다. 버스 운행 시간 탓에 아산 경기는 전반 45분만을 지켜보고 자리를 떠야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경기를 보는 내내 함께한 친구와 김한비, 정건우 등 선수들의 이름을 연신 외쳐댔다. 이외에 일부 선수들의 여자친구 또한 경기장 한편을 지켜 다양한 광경을 연출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어쩌면 마지막’ 더욱 간절했던 아산 무궁화 유스팀 지난해 11월, 청와대 인근에 때 아닌 축구인들이 몰려들었다. 경찰청의 축구단 해체 발표에 ‘아산무궁화축구단 존속을 위한 축구인 결의대회’가 열린 것이다. 허정무, 홍명보, 최용수, 박동혁 등 많은 인사들이 모인 끝에 아산 무궁화는 해체를 면했지만 이는 한시적인 것이었다. 의경 선수들이 활동하는 2019 시즌까지 ‘시한부 팀 운영’이 결정됐다. 일부에서 염원하는 시민구단 창단은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해체 위기에 몰린 아산 무궁화 유스팀. 선수들은 이번 대회 16강 토너먼트 탈락이 확정되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하지만 이번 시즌의 절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시한부’ 아산의 상황에는 변화가 없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아산이 그대로 해체된다면 산하 유스팀 운영 또한 이어갈 수 없게 된다. 지난 12일 2019 K리그 U18&17 챔피언십 현장을 찾은 아산 무궁화 유스팀 학부모 총무 국승호 씨는 현재 상황에 대해 “시민구단 전환이 쉽지 않아 보인다. 아산시에서 큰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의 표정은 팀이 위기에 몰렸던 지난해 11월보다도 어두웠다. “아이들도, 학부모님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전학이라는 선택도 쉽지 않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면 일정 기간 경기에 나설 수 없는 규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산이라는 이름을 달고 뛰는 마지막 챔피언십이 될 수도 있었기에 이날 경기에 나선 선수들은 더욱 집중력 있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창단돼 1, 2학년으로만 이뤄진 이들은 전북 현대 산하 영생고를 상대로 전반에만 2골을 먼저 넣으며 신바람을 냈다. 비록 추격 골을 내줬지만 그대로 경기가 마무리된다면 16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후반 추가시간을 견뎌내지 못했다. 영생고에 동점골을 허용하며 무승부를 거뒀다. 경기 후 일부 선수들은 탈락의 아쉬움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경기 내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미드필더 최수혁은 “팀이 해체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라도 좋은 결과를 냈어야 했는데 아쉽다. 우리가 잘하면 팀 존속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후반기 리그에서 발전하는 모습 보이도록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김상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