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서울 시내에 신규 택지가 고갈된 상황에서 주요한 신규 주택 공급원인 재건축·재개발이 위축되면 집값을 잡기는커녕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로또 분양’이 보편화되면서 현금부자들에게만 좋은 집을 싸게 분양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란 지적도 상당하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오는 10월 시행을 장담하지만, 내년 총선에서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시행 시점과 내용에 변화가 있을 여지는 남아 있다.
정부가 이르면 오는 10월부터 적용되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기준 개선 추진안’을 발표한 지난 12일 오후 철거 공사가 한창인 서울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 이 아파트의 재건축 시공사인 현대건설 등은 11∼12월께 예정돼 있던 일반분양을 10월 중으로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 왜?…집값 올려 조합·건설사 돈 버는 구조 겨냥
재건축·재개발 분양가 상승이 인근 기존 주택 가격 상승을 견인해 집값 상승을 촉발한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이른바 ‘불의 고리’다. 서울과 수도권 핵심지역은 입지가 좋아 노후 주택을 재건축·재개발할 경우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고, 이는 주변 시세를 자극해 지역 전체의 집값을 끌어올린다는 논리다. 재건축·재개발을 해도 아예 돈을 벌 수 없게 만드는 게 이번 대책의 핵심이다.
국토부는 주택법을 개정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주택에도 거주의무기간을 도입할 계획이다. 현재 수도권 공공분양주택은 거주의무기간이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100% 이상일 경우 최장 5년이다. 80% 이상이면 8년, 80% 미만이면 10년이다. 민간택지 분양은 이보다 최대 2배 이상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거주 목적이 아니면 분양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은 현재 재건축을 위한 이주, 철거 등을 사실상 마무리하고 9월 관리처분계획 변경 총회를 열 예정이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책정한 평균 분양가는 3.3㎡당 2500만∼2600만 원 수준인데 둔촌주공조합의 희망 분양가는 3600만∼3800만 원이다.
서울에서는 현재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끝낸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이 64개(약 7만 가구)에 달한다. 분양가를 시세의 20~30%가량 낮게 책정하면 조합원 1인당 추가부담금이 1억~2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재건축 아파트 기대수익률이 뚝 떨어진다.
# 서민에 유리(?)…수혜자는 40대 현금부자
현재 분양청약제도는 철저히 무주택자에 유리하다. 현재 투기과열지구 내 전용면적 85㎡ 이하 민영주택은 가점이 100% 적용된다. 전용 85㎡ 초과 민영주택은 가점과 추첨이 각 50%씩 적용되긴 하지만 추첨제 물량 75%를 무주택자에게 우선 공급하고 나머지 25%를 무주택자와 1주택자에게 공급한다.
청약가점은 만점이 84점으로 60점은 넘어야 인기지역 당첨이 가능하다. 청약통장 가입기간은 1~17점(1년에 2점), 부양가족 수 5~35점(1면당 5점), 무주택기간 2~32점(만30세 이후부터 1년에 1점)이다.
문제는 자금력이다. 지난 7월 15일 발표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민간 아파트 분양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6월 말 기준 2673만 원(㎡당 810만 원)이다. 부양가족을 감안할 때 최소 방이 3개 이상 되려면 전용면적 85㎡ 이상이다. 공급면적으로 약 30평이다. 서울 평균 분양가 기준 8억 원이 넘는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투기과열지구 담보비율(LTV)은 최대 40%다. 4억 8000만 원 이상 자기자금이 필요하다.
서울의 평균 전세가는 2019년 3월 기준 4억 6313만 원이다. 빚 한 푼 없이 서울에 전세 사는 가구가, 무주택 기간(최대 16년) 동안 1년에 3000만 원 이상씩 현금을 모으고, 빚을 최대한 내야 30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 취등록세 등 각종 부대비용도 수천만 원이다.
# 새 집값·전세 오르고, 수도권선 미분양 우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비사업 위축이 주택 공급량 장기 감소로 이어진다면 지역 내 희소성이 부각될 준공 5년차 안팎의 새 아파트 가격이 강보합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월부터 분양가상한제를 민간택지에도 적용키로 함에 따라 서울 ‘로또청약’을 기다리는 수요자들 때문에 수도권 분양 시장에 냉기가 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마침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 수도권에서는 대규모로 분양 물량이 쏟아질 예정이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전매제한을 10년으로 둘 경우 여유가 있고 주거 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상위계층을 (강남 등) 고용 중심지에 머물게 해 전세 수급이 악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분양가상한제가 10월부터 시행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국토부 시행방안 직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분양가상한제는 나름의 단점도 있다”며 “오늘 발표는 적용 요건 완화 절차에 돌입하겠다는 1단계 조치로, 부동산이나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실제 적용하는 2단계 조치는 관계부처간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당 내부에서 재개발·재건축 단지가 많은 지역구를 둔 의원뿐 아니라 수도권 의원 사이에서는 제도 시행의 후폭풍이 내년 4월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