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안철수다. 오는 9월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보수대통합 ‘키맨’으로 부상했다. 보수 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은 연일 안 전 대표에 대한 러브콜을 노골적으로 보내면서 안철수 띄우기에 나섰다. 그러나 안 전 대표 측근들은 “가상 복귀설을 멈추라”며 조기 등판론을 일축했다. 보수 야당과 안 전 대표 간 숨바꼭질이 시작된 셈이다. 실체가 불분명한 5인 신당설이 현실화해도 안 전 대표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9부 능선 끝에는 ‘탄핵 반성문’이 기다리고 있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 박은숙 기자
안철수 조기 등판론의 ‘정치적 애드벌룬’을 강하게 띄운 이는 나다르크(나경원+잔다르크)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8월 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우파의 가치를 같이할 수 있는 모든 분들이 함께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고 밝혔다. 특히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과 통합하지 않으면 한국당의 미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안 전 대표에 대해선 ‘우파 가치 공유’를 전제로 깔았지만, 나다르크의 발언으로 야권 발 합종연횡 열차는 출발선에 섰다.
다만 안철수 등판론 군불 때기는 ‘추석 대목’을 노린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세대와 계층이 만나는 추석은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의 1차 분수령이다. 여야는 9월부터 100일간 이어지는 국정감사와 예산정국에서 난타전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정치혐오 논란에 따른 무당파 증가는 연례행사다. 이번 추석이 차기 총선의 기선을 제압하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한국당 한 관계자도 “보수대통합 시기는 내년 초”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안철수 카드는 친박(친박근혜)계를 제어하려는 비박(비박근혜)계의 방패막이 성격이 짙다. 안철수 등판론을 띄우는 이들도 비박계다. 나 원내대표를 비롯해 김영우·홍문표 의원이 대표적이다. 나 원내대표의 안철수 띄우기도 당내 입지를 회복하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비박계 한 의원은 “당내에 보수통합의 인식을 공유하는 이들이 많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 전 대표와 비박계 간 관계 설정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안철수 발 보수통합이 ‘총선 승리→대선 점령’으로 이어질지, 불쏘시개에 그칠지는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악은 지난 대선에서 완성조차 못 했던 ‘반문(반문재인) 연대’의 재현이다.
조기 등판론을 앞세운 안 전 대표 측도 여론전을 전개했다. 최측근인 김도식 전 비서실장은 8월 12일 안 전 대표 지지 모임인 카페 ‘미래광장’을 통해 “가상의 복귀설을 만들어 계속 기웃거리는 이미지를 만드는 주장을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정치권 안팎에선 안 전 대표의 3월 복귀설, 6월 복귀설 등이 흘러나왔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안 전 대표의 ‘총선 역할론’은 부정하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본인의 쓰임새가 있어서 국민들의 부름이 있어야 올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전했다. 6·13 지방선거(서울시장)에서 낙선한 안 전 대표는 지난해 9월 1일 1년 체류 목적으로 독일행에 몸을 실었다. 안 전 대표 측이 조기 복귀론에 선을 그으면서도 보수대통합 역할론과 관련해선 ‘NCND(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호남에 대한 아디오스(작별인사)가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안철수·비박계’ 연대설은 3년 전 탄핵 정국에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6년 12월 13일 새누리당(현 한국당) 해체를 촉구한 안 전 대표는 “비박계가 앞장서라”고 압박했다. 유승민과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에 있는 한 연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치권 안팎에서 비박계와 국민의당 통합 가능성이 제기되자, 안 전 대표는 이튿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새누리당은 박근혜 게이트의 공범”이라며 “이 시간 이후에도 국민의당과 새누리당의 연대를 말한다면 이것은 악의적 음해이자 정치공작”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에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안 전 대표를 향해 “비박계와 연대한다면, 보수를 선언하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관전 포인트는 보수대통합 판이 벌어질 지형이다. 그 중심엔 한국당이 있다. 단순화하면 ‘한국당 중심의 통합이냐, 한국당 밖 새판 짜기냐’로 요약된다. 문제는 치킨게임이 불가피한 친박·비박계의 승패가 결정되기 전까지 양 진영 모두 한국당 중심의 통합을 원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최소 20%의 고정표를 가진 한국당을 먼저 깨는 행위는 양쪽 모두 명분도 실익도 없다.
이 과정에서 안 전 대표가 특유의 ‘간 보기 정치’로 일관할 경우 몸값을 더 높일 타이밍만 실기할 수도 있다. 바른미래당 안팎에선 안 전 대표가 붕괴 위기에 처한 당내 상황에 대한 부담으로 추석 이후로 귀국 시기를 늦췄다는 말이 나온다. 비당권파인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안 전 대표가) 귀국 시기를 늦추면 운신의 폭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철수 조기 등판론’은 친박 배제를 원하는 비박계에겐 일종의 꽃놀이패인 셈이다.
반면 안 전 대표의 주가는 올라가지만, 한때 정계개편의 상수였던 바른미래당은 분당 수순에 들어가면서 야권 재편의 주도권을 잃었다. 바른미래당 공동창업자인 ‘안철수·유승민’의 선택지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보수진영 내부 권력암투가 친박계 승리로 끝났을 때다. 이 경우 야권 발 정계개편은 ‘기승전 박근혜’로 끝날 수도 있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박근혜 사면설’과 맞물려 친박계가 득세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표로선 ‘탄핵 반성문을 쓸 것이냐, 말 것이냐’의 선택을 강요받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당시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안 전 대표는 적극적 탄핵보다는 ‘질서 있는 퇴각’에 힘을 실었지만,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에는 “탄핵 가결의 원동력은 국민의 명령”이라고 한 뒤 탄핵열차에 몸을 실었다.
5인(안철수·유승민·김무성·남경필·원희룡) 신당설에 오른 인사도 마찬가지다. 이중 유일한 한국당 소속인 김무성 의원은 당시 여권 인사 가운데 가장 먼저 ‘박근혜 탄핵’을 주장, 파장을 일으켰다. 5인방 역시 탄핵 반성문에서 자유롭지 않은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안 전 대표의 목표는 오는 2022년 대선일 텐데, 명분 없이 총선 승리만을 위해 탄핵 반성문을 쓰겠느냐”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가 중도보수 신당 창당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는 다른 시나리오인 한국당 밖 보수대통합과 맞물린다. 친박계를 제외한 인사들이 모여 중도보수 신당을 고리로 연대 전선을 형성한다는 게 핵심이다. 보수 재편 변수의 한 축인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도 연일 친박계를 ‘잔반 세력’으로 규정하며 결별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중도보수 신당은 비박계는 물론,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탈당까지도 염두에 둔 시나리오다.
국회의원 출신인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황교안·안철수·유승민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지만, 중도보수 신당이 출범해도 ‘반쪽 통합’에 그칠 수밖에 없다. 친박계와 우리공화당으로 양분한 극보수층과의 관계 설정 문제가 난제로 남아서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51 vs 49’ 싸움에서 소수파의 분열은 필패 공식이다. 현 여권이 20대 총선에 이어 또다시 보수 분열의 어부지리로 제1당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최대 180석을 자신했지만, 옥새 파동으로 자멸했다.
그간 개인기 하나로 버텼던 안 전 대표에 대한 경쟁력도 ‘박근혜 산’을 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민주평화당을 탈당한 박지원 의원은 안 전 대표를 향해 “대통령이 되려고 진보로 위장취업 했던 보수”라며 “누가 안 전 대표의 몸값이 비싸다고 하느냐”고 평가 절하했다.
안 전 대표는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7월 29일∼8월 2일(결과 공표는 8월 6일·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까지 전국 19세 이상 성인 25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안 전 대표는 2.7%로, 9위에 그쳤다.
1위인 이낙연 국무총리(25%)와 황교안 대표(19.6%)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7.8%), 박원순 서울시장(4.9%), 심상정 정의당 대표(4.6%),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4.5%),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4.5%), 김경수 경남도지사(3.8%)보다도 낮았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재기 발판을 만들지도 의문”이라고 혹평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