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12월 22일 박지원 의원과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국회 복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정치권에서는 평화당이 정동영 대표 1인 정당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황주홍 김광수 조배숙 의원의 추가 탈당설이 흘러나오고 있어서다. 정 대표 최측근 박주현 의원 당적은 바른미래당(비례대표)이다. 당 존립마저 위협받게 된 평화당에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정 대표는 평화당 생존전략으로 정의당과의 연대를 언급했다. 평화당과 정의당은 ‘평화와 정의 모임’이라는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한 경험이 있다. 이승한 평화당 대변인은 “당 내부적으로 ‘민주평화당’ 당명은 끝까지 지키자는 의견이 다수다. 정의당과 합당 가능성은 낮다. 선거 연대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정의당 반응은 미지근하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정 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당과 연대를 말씀하셨다는데 우리는 어떤 제의도 받지 못했다”면서 “내부적으로 평화당과 연대에 대해 어떤 논의도 없었다. 그쪽에서 정식 제의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끼리 논의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정식으로 연대 제의가 오면 연대하겠느냐는 질문에는 “평화당이 앞으로 안정화가 되는 건지, (당 정책 지향점이) 어디로 가는 건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벌써 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성급한 것 같다. 평화당이 먼저 내부적으로 정리를 한 후 논의를 해야 할 것 같다”면서 “(평화당 소속 의원) 개별 입당은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은 평화당과 선거 연대는 가능성이 낮다고 했다. 오 대변인은 “심상정 신임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도 선거 연대 안하겠다고 선언했다”면서 “현재는 평화당과 선거 연대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평화당은 정의당 외에 손을 내밀 만한 곳도 마땅히 없는 사면초가 상황이다. 정 대표는 바른미래당과의 연대도 언급했지만 바른미래당은 이미 대안정치 측과 교감하고 있다. 민주당은 평화당과 연대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평화당은 녹색당, 우리미래 등 원외 정당과 연대를 모색하고 있지만 당 내에서조차 “원외 정당과 연대한다고 해서 무슨 효과를 낼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이다.
때문에 평화당 내에서는 이합집산에 매달리지 말고 차라리 당 혁신에 몰두해야 한다는 자강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평화당 최명철 후보는 민주당 후보를 꺾고 시의원에 당선됐다. 다른 당과 연대하지 않아도 내부 혁신에 성공하면 얼마든지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평화당 관계자는 “선거 연대가 합당보다 힘들다는 말도 있다”며 “자칫 무리하게 연대를 추진하다가는 잡음만 일으켜 선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한 평화당 지역위원장은 “소속 의원 3분의 2가 탈당하면서 지역위원장이나 당원들도 대거 탈당할 거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탈당 인원이 적었다.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보는 거다. 저도 평소 제3지대론에 찬성해왔지만 이번에 나간 분들은 어떤 대의명분을 위해 나간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 그분들 주장에 동의 못해 당에 남은 사람들이 많다”고 당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비당권파 탈당 이후 평화당은 오히려 지지율이 올랐다. 아시아투데이가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 8월 9~11일(8월 2주차) 진행한 정당지지율 조사 결과 평화당 지지율은 4.5%였다. 지난달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지지율(2.3%)보다 두 배 이상 올랐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전북 지역이 소외받았다는 여론이 있는데 이를 잘 이용하면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황주홍 의원을 제외한 평화당 잔류파 의원 지역구는 모두 전북이다.
평화당은 내년 총선 전 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 도입을 위해 사활을 걸 예정이다.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되면 다른 당과 연대 없이도 생존이 가능해진다. 평화당은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위해 정의당은 물론이고 녹색당, 우리미래 등과 적극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평화당이 해체돼 탈당파가 주도하는 제3지대 정당에 흡수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관측도 나온다. 탈당파가 만든 대안정치 관계자는 “현재 평화당에 남은 분들 중에도 추가로 (대안정치에) 합류할 분들이 있다. 정동영 대표도 우리가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문은 열려 있다”고 했다.
대안정치 소속 의원들은 8월 12일 탈당을 선언했지만 탈당계는 16일부터 유효하도록 조치했다. 국고 보조금 지급일 (8월 14일) 이후 탈당해 평화당 보조금 수령액이 4억 원가량 줄어드는 것을 막았다. 정치권에선 대안정치 측이 추후 평화당과 통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이런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또 다른 평화당 지역위원장은 “정동영 대표가 지금은 당을 지키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지만 추가 탈당 의원이 생기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지역위원장은 “현재 당내에 정동영 대표가 주도하는 좌클릭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다. 당이 성공하려면 중도로 확장을 해야지 정의당보다 더 좌측으로 이동하면 어쩌자는 것이냐”면서 “1(민주당)대 다야(多野) 구도가 되면 전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도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정 대표가 대의를 위해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 내에선 대안정치 측이 정 대표에게 퇴로만 열어주면 얼마든지 재결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대철 고문 등은 평화당과 대안정치 사이를 오가며 중재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안정치 측도 평화당과의 연대가 간절하다. 평화당은 내년 총선에서 대안정치 측 지역구에 표적 공천을 하겠다고 밝혔다. 강 대 강으로 충돌하면 양쪽 모두 공멸이다. 대안정치 측이 정 대표 설득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평화당 측 관계자는 “사실 이번에 나가신 분들이 연세가 많아 내년 총선에서 개혁 대상이 되어야 할 분들 아니었나. 그런 분들과 다시 결합하는 것보다는 이번 기회에 새로운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 당에서 추가 이탈자가 생길 리 없다. 5명(당적기준 현역의원 4명)이 똘똘 뭉쳐 범개혁진보연합을 구축해 야권 정계개편의 중심축이 되겠다”고 밝혔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