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3상 중단 후유증을 앓고 있는 신라젠이 도덕적 해이 논란에도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신라젠 기자·애널리스트 간담회’에 참석한 문은상 신라젠 대표이사. 연합뉴스.
문 대표는 지난 4일 긴급 간담회를 통해 “먹튀나 발빼기 등은 없을 것”이라며 자사주 추가 매입 계획을 알렸다. 그러나 문 대표를 비롯한 신라젠 대주주와 경영진이 신라젠의 코스닥 상장 이후 총 2515억 원 규모의 주식을 매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이 거세졌다.
문 대표와 그의 친인척인 특별관계자 4인은 펙사벡에 대한 기대감으로 신라젠 주가가 치솟던 2017년 12월~2018년 1월, 지분을 대량 매도했다. 문 대표는 2017년 말~2018년 초 총 156만 2844주(1325억 원 규모)를 매도했다. 또 신현필 전무는 지난 7월 1~5일 4차례에 걸쳐 88억 원 규모(16만 7777주)의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해 논란이 일었다. 펙사벡의 3상 중단이 알려지기 직전 지분 전량을 매각한 것으로 볼 때 중단 사실을 미리 알았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신 전무의 지분 매각 이후 7월 12~15일 송명석 부사장과 박종영 감사, 양경미 부사장, 하경수 전무 등 임원들이 각 1000주씩 장내 매수했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문 대표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3상 과정에서 회사가 데이터를 알려고 시도할 수 없고, 시도하지 않았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신라젠을 둘러싼 또 다른 의혹은 지난 13일 감사원의 감사보고서를 통해 불거졌다. 감사원은 기획재정부 실장 A 씨가 고교동문인 문은상 신라젠 대표의 494억 원 규모의 조세심판 청구 사건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을 확인하고 기재부 장관에 징계를 요구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문 대표는 증여세 부과 결정에 불복,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또 기획재정부 실장 A 씨에게 세무조사가 부당하다는 내용의 전화를 했고, A 씨는 조세심판 청구 사건 부심과 담당자 등에 직접 전화해 “(나의) 고교동문 관련 사건”이라며 “사건을 잘 검토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부당하게 관여했다. 조세심판원은 A 씨의 부탁에도 불구, 문 대표의 심판청구에 대해 기각을 결정했다.
감사원 보고서에는 또 문 대표와 특수관계인 등 4인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인수자금 조달 과정에서 문제도 지적했다. 문 대표는 2014년 신라젠이 발행한 350억 원 규모의 BW를 3자간 대차거래 방식을 통해 자금 유입 없이 인수했다.
문 대표 등 4인은 신라젠이 발행한 BW를 인수하기 위해 2014년 3월 4일 크레스트파트너로부터 350억 원을 차입해 신라젠에 납부했으며, 신라젠은 2014년 3월 6일 크레스트파트너에 350억 원을 대여했다. 이후 2015년 3월 4일 신라젠은 문 대표 등 인수자들에게 BW를 상환했다. 같은날 문 대표 등 인수자들은 크레스트파트너에, 크레스트파트너는 다시 신라젠에 대여금을 상환했다.
이 과정에서 문 대표는 160억 원 규모의 신라젠 BW를 인수하고, 2015년 12월 이를 행사해 457만 주의 신라젠 주식을 받았다. 이후 신라젠이 코스닥에 상장된 지 1년여 뒤인 2017년 12월 문 대표는 신라젠 주식 156만 주를 1325억 원에 처분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문 대표는 신라젠의 최대주주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1000억 원이 넘는 차익도 실현했다. 결국 신라젠의 BW 발행이 문 대표와 특수관계자들의 지분률 상승과 차익 실현을 위해 이뤄진 셈이다.
신라젠 관계자는 “감사원의 감사보고서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공무원이 부정에 따라 징계를 받은 건으로만 파악하고 있다”며 “회사에서는 2014년 문 대표의 BW 인수와 관련해 인지하고 있는 바가 없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신라젠 현 경영진, 설립자와 갈등 새삼 주목받는 까닭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지난 4일 긴급 간담회에서 펙사벡에 대해 “간암의 결과와 무관하게 타 적응증 병용임상 효능 데이터가 우수할 경우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이 가능할 것”이라며 계획 변경을 밝혔다. 펙사벡에 대해 라이선스 아웃을 검토해오지 않던 입장을 고수하다 ‘임상 중단’ 이후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그러나 제약·바이오업계 일부에서는 펙사벡의 신약 가능성마저도 미심쩍어 한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 피해자연합 측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이민석 변호사는 “펙사벡이 이미 2상에서 실패한 바 있고, 문 대표도 이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밸류인베스트코리아의 투자를 받아 제네렉스를 인수했다”고 지적했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는 2014년부터 2015년 12월까지 신라젠의 최대주주였으나 불법자금모집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면서 신라젠 주식을 매각한 바 있다. 이 변호사가 지적한 ‘2상 실패’는 임상 2b상을 뜻한다. 2013년 종료된 펙사벡 임상 2b상은 생존율 지표를 충족하지 못해 실패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신라젠은 임상 디자인 설계 문제로 입증에 실패했다고 판단, 2014년 제네렉스를 인수해 임상 3상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신라젠 관계자는 “펙사벡 특성상 어느 정도 면역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과거 2b상 환자 모집 당시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들이 많아 실패했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또 “신라젠 창업자였던 황태호 교수는 펙사벡보다 다른 신약의 3상 가능성을 더 높게 봤지만, 문 대표를 비롯한 교체된 경영진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황 교수에 약속한 스톡옵션을 지급하지 않아 소송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황 교수와 문 대표 간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펙사벡 3상에 대한 견해 차이였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황 교수는 2016년 9월 신라젠을 상대로 주식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황 교수는 제네렉스와 공동연구를 하던 중 신라젠을 설립해 2008년 4월까지 신라젠 대표로 재직했다. 2009년 3월 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난 황 교수는 부산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도 신라젠에서 최고기술책임자로 일하며 기술개발 자문 등을 했다. 이에 신라젠은 2012년 4월 황 교수의 기여를 인정해 주식 50만 주에 관한 스톡옵션 계약을 맺었으나 2016년 1월 이사회를 열고 이를 취소했다. 당시 신라젠은 “황 교수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신약 후보물질 임상 1상 승인 결과를 보고하지 않았고, 진행 중인 항암제 펙사벡 글로벌 임상 3상에 대해 악성 유언비어를 조성했다”며 “중대한 과실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펙사벨 글로벌 임상 3상에 대해 신라젠 설립자인 황 교수와 교체된 문 대표 간 견해가 엇갈렸다고 예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라젠 관계자는 “황 교수와 스톡옵션 관련 소송 내용은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라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